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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Jul 23. 2018

#43.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널 웃기기 위해서라면

아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환하게 피는 걸 오래간만에 보았다. 전혀 바뀔 것 같지 않던 굳은 표정에 웃음이 삐져나왔다. 웃을까 말까 0.5초 사이를 두고 바람에 촛불이 파르르 떨리듯 그렇게 고민하며. 그 순간을 포착할 때 나는 개그 콘서트라도 나가서 사람들을 호탕하게 웃긴 것만큼 기분이 상쾌했다. 나 때문에 아들이 웃음을 터뜨리다니. 밥 먹었니? 지금 배고파? 저녁 해 줄까? 어디 갔다 왔어? 이런 평범한 대화로는 아들의 하얀 이빨이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녀석은 나를 볼 때 입을 꼭 다문 채 긴장을 풀지 않은 모습으로 마치 적군을 대하듯 일관하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웃음이 녀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터져 나오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 매우 드문 일이다. 나야말로 전장에 깃발을 꽂고 승리의 함성을 외쳐도 될 만큼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웃음 생포 성공! 녀석의 웃음을 기습적으로 훔치는 일은 언제나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장님의 눈을 뜨게 한 것처럼, 절름발이의 다리를 낫게 해 걷게 한 것만큼 예상치 않았는데 기적처럼 일어난 일이라서 그렇다. 그 웃는 모습이란 얼마나 또 천진스러운가? 한 사람의 얼굴에서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이 생길 수 있는 것도 신기하지만, 녀석의 얼굴에 둥근달처럼 떠오른 미소가 본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바라보는 내 마음마저 환하게 밝히니 웃음이란 정말 만물의 영장에게만 있는 놀라운 조물주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녀석의 굳게 닫힌 입술의 문을 열고 하얀 이빨이 가지런히 하나둘 낄낄거리며 깨알 같은 얼굴을 서로 먼저 밖으로 드러내려 한다. 속살처럼 하얀 이빨은 못 이기는 척 백기를 든다. 에이, 더 이상 근엄 떨지 못하겠네. 이미 좌우로 벌어진 입가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던 윗집 눈동자도 웃음에 전염되어 어느새 꿈찔꿈찔대기 시작한다. 눈동자는 애써 나의 시선을 피하려 하지만, 눈가에 밀려오는 주름이 ‘에구, 웃겨 못 살겠다 이제 그만 무거운 근엄의 옷은 벗어버리자’ 하며 눈을 찔끔 감고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눈과 입이 이렇게 합동작업에 들어가고 나면 입안 깊숙이 참고 있던 외침이 이제 터져 나올 차례다. 푸하하. 크크큭. 낄낄낄… 나는 그 소리가 은쟁반의 옥구슬 소리보다도 더 듣기 좋다. 계속 웃음을 끌어올리기 위해 펌프질을 한다. 펌프질? 여기서 펌프질이란 아들 녀석의 웃음을 끌어올린 일등 공신인데, 웃지 않고는 볼 수 없는 나의 막춤 때문이다. 사실 막춤을 추려고 해서 춘 게 아니다. 어디선가 본 춤을 춰 보려고 했는데 몸치인 내게로 와 막춤이 된 거다. 발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 놔둔 채 왼쪽과 오른쪽 팔을 앞뒤로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언젠가 영상에서 본 춤인데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가 순간 아들 앞에서 추게 되었다. 뜬금없이 왜 춤이었냐고? 나도 모르겠다. 아들에게 저녁을 먹으라는 말을 하러 방에 들어갔다가 이어폰 때문에 엄마 목소리를 잘 못 듣는 (아니 이어폰을 꼈다는 이유로 버젓이 못 들은 척하며 엄마를 무시하고 있는) 아들 앞에서, 보란 듯이 그냥 막춤을 흔들었다. 이래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을 거야? 하는 마음으로. 그랬더니 유전에서 기름이 솟듯 웃음이 분출되어 나온다. 아들의 웃음을 뽑고 나니 순식간에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막춤을 계속 췄다. 기름아 웃음아 좔좔 솟아라. 그런 마음으로 주책인 줄도 모르고 아들 앞에서 막춤을 추는데 아들은 재빠르게 뇌에 명령을 내리며 어느새 정신을 가다듬고 있다. 엄마의 막춤을 보고 놀란 것보다 자신이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어 보여주지 말았어야 할 것을 무참히 보여준 것을 창피해하는 모습이 틀림없었다. 웃음을 참고 진정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녀석의 두꺼운 면피 밑에 깔린 말랑말랑한 내면을 보는 것 같아 내겐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한 판 더 막춤으로 녀석을 웃겨 보려던 찰나, 녀석은 계속 그러면 밥을 아예 먹지 않겠다는 엄포로 자신의 웃음을 (그리고 내 웃음을) 싸늘하게 거두어들였다. 나는 얼른, 오케이 알았어. 그만할게. 그럼 밥 먹으러 나와. 하고는 녀석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고자 방에서 냉큼 나왔다. 여기서 더 나가면 아들은 화를 낼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막춤을 춰서 자신을 웃기게 한 엄마에 대한 화라기보단, 그런 엄마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려 자신의 속을 보여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안다. 복잡하게 꼬인 녀석의 마음을. 아무리 웃겨도 엄마 앞에서라면 맘껏 웃을 수 없는 녀석의 근엄하게 삐딱한 마음을.  

 

그렇게 방을 나왔다. 그 정도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다. 오늘은 아들의 웃음을 오래간만에 보기 좋게 훔쳐낸 기쁜 날이다.  


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아들의 아기 때 사진이 한 장 있다. 첫 돌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 혼자 앉아서 몸을 가누지도 못할 시기였는데, 아기를 마치 장난감 인형처럼 벽에 기대어 앉혀 놓고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은 뭐가 그리 웃기는지 얼굴이 온통 다 일그러질 정도로 갓난아기가 환하게 웃는다. 아기는 벽에 기대어 앉아 비록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킬킬거리며 웃겨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기는 뭔가 웃긴 모습을 보고 웃었던 것이 틀림없는데, 그 웃음이 어찌나 보는 이의 기분을 상쾌하게 하고 다시 웃음 짓게 했던지. 지금도 그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던 아기를 생각하면 그당시 아기의 자지러지듯 키득거리며 웃던 웃음소리가 바로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쌍둥이지만 다른 녀석에겐 그렇게 찐하게 웃는 모습을 아기 때에도 본 기억이 없다.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오늘 내가 웃음을 터뜨려 울린 이 녀석인 이유가 달리 있지 않다는 증거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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