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끄고 신경 쓰기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의 연재를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아들은 내일 필라델피아로 2년 차 대학 생활을 위해 떠난다. 작년 이맘때에 가방을 싸지 않고 미적거리던 아들을 불평했던 내 기억이 떠오른다. 아들은 놀랍게도 어제부터 가방을 주섬주섬 싸고 있다. 방에 늘어놓은 물건을 보면 아직 반도 정리가 안 된 모양이긴 하지만, 많이 달라진 걸까? 아들에게 혹시 마지막으로 빨래할 옷이 있으면 내놓으라고 물었더니, 대뜸 나에게 신경 쓰지 말란다.
1년 전에 비하면 엄마인 나도 많이 달라졌다. 아들이 신경 쓰지 말라면 재깍 알았다고 하고 잽싸게 신경을 끊는다. 전에는 못 미더워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이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미덥든 못 미덥든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어느새 내 잔소리도 현저히 줄었다. 자기 일인데 하며 쉽게 잔소리를 버린다. 아무리 잔소리해도 아들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 힘을 빼지 않는다. 경험하고 체험한 학습만이 아들의 사고와 머리를 깨우칠 수 있다는 데 올인하기로 했다.
아들이 머물었던 지난 두 달 내내 나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그것이 아들이 원한 일이었다. 아들이 고작 내게 원한 건 겨우 하루에 한 끼 정도의 식사나 조금의 용돈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아들이 같은 집에 있는 듯 마는 듯 여름을 보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식사 때가 되어서 집에 오면 아들과 부딪히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방에 들어가서 거의 나오지 않는 아들이 그나마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는 경우가 전부였는데, 밥을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0분에서 15분을 넘기기 힘들다. 그것도 아들이 식사 때에 맞춰서 배가 고파줘야 밥상에 마주 앉지, 행여라도 아들의 배꼽시계가 제멋대로 왔다 갔다 한 날이면 아들과 마주 대할 식사 시간마저도 하루 일과에서 사라지게 된다. 어제가 그랬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이틀 전인데 맛있는 거라도 만들어 줄까 싶은 마음에 집에 와 보니, 아들은 이미 셰프 보야디의 깡통 음식을 따서 먹기 시작한 뒤였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혼자 주변 맛집을 잘 돌아다니더니 이제는 그것마저 귀찮아졌는지 캔 음식과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대신한다. 하루에 세 끼도 모자랄 청년의 때에 아들은 겨우 한 끼에서 두 끼로 하루를 보내는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워낙 먹는 것을 즐기지 않는 아이이긴 했지만, 대학 가서도 기숙사 식권을 거의 생으로 날리다시피 하더니 마치 대학에서 하루 1식으로 생존하는 법만 배워온 것 같이 끼니를 자주 거른다. 밥에 대해 갖는 ‘엄마 콤플렉스’를 아들은 전보다 더 깊이 내게 심어 놓았다. 그렇게 엄마로서 아들에게 신경 쓸 일을 서서히 죽여가면서.
아들을 기숙사로 다시 보낼 날을 겨우 이틀 앞둬서 그런지 어제만큼은 쉽게 신경이 꺼지지 않았다. 캔 음식을 먹여 아들을 기숙사로 보내기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당장 음식을 만들어 이미 배가 찬 아들에게 들이밀 수도 없었다. 여간해서 배가 꺼지지 않고는 절대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는 아이인 줄 알기 때문에. 녀석의 까탈스러운 배는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는 일상 때문에 분명 한밤중은 돼서야 배가 슬슬 고파질 것이다. 평소 같으면 한밤중에 아들이 배가 고프든 말든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정 배가 고프면 가끔 밤에 나와 냉동실에 있는 베이글을 토스트해 먹는다던가 그날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찾아 먹으니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는 차마 그렇게 아들을 놔둘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깡통 때문이었으리라. 하필 다른 음식도 아니고 1달러도 채 못 되는 깡통 음식을 먹는 아들을 본 어미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30분만 더 일찍 집에 도착했더라면 시간 맞춰 아들에게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줄 수 있었을 텐데, 깡통에 담긴 파스타를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이 잠자리에 들기까지 내 신경을 건드렸다. 취침 준비를 다 마치고 방문을 닫고 자리에 들려다가, 부엌 불을 켰다. 도마를 꺼내고, 양파를 썰어 볶고, 다진 고기에 양념을 하고, 소스를 만들고, 기름에 고기를 구웠다. 11시가 다 되었으니 아들의 배가 슬슬 고파지기를 잔뜩 기대하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하나 뚝딱 만들어 냈다. 잠옷을 입고 부엌에 들어선 것도, 한밤중에 부엌 불을 밝힌 것도 내 생에 거의 없던 일이 아니었나 싶다. 남편은 이미 잠에 곯아떨어졌고, 나는 깜깜한 창밖에 가끔 시선을 던지며 창 문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한밤에 도마 위로 칼질을 바삐 휘두르고, 프라이팬을 뜨겁게 달구며 고기를 굽고 있는 멋진 셰프가 그곳에 있었다.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제법 흥이 났다.
그렇게 만든 햄버거를 접시에 담아 조용히 아들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들이 배가 안 고프면 어쩌나, 이제 막 컴퓨터 게임을 시작해서 따뜻할 때 햄버거를 먹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접시를 들고 들어가는 내게 신경 끄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바쁘게 두드리고 있었고, 나는 먹으라 말라 아무 말하지 않고 햄버거가 담긴 접시를 조용히 두고 방에서 나왔다. 먹든 말든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마음으로. 침실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얼마 뒤에 아들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게임이 벌써 끝났나? 아들이 햄버거를 먹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빈 접시가 부엌 탁자에 돌아와 있었다. 아들은 물론 자고 있었다. 햄버거를 먹고 든든한 배로 잠이 들었을 아들의 얼굴을 보니, 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생겼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을 했는데 아들이 원했던 일이었구나 싶어 그저 기뻤다. 신경은 이렇게 말없이 쓰는 것이었던가? 신경을 쓴다고 하고 잔소리하기 시작하면, 아들은 금방 나에게 신경 끄라고 소리칠지 모른다. 아들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신경이 아닌 물처럼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그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들을 위한 최고의 신경 쓰기가 아닌가 싶다. 신경 씀에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할 줄이야. 신경 쓰고 있음을 절대 티 내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아들로 하여금 신경 끄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신경 끄고 신경 쓰기에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