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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Nov 04. 2018

#46.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한류, 슈퍼주니어 최시원 그리고 아들

뜬금없이 시애틀로 돌아오는 산호세 공항에서 육아일기를 쓰고 싶다는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가방이라면 질색인 내가 굳이 노트북을 캐리언 가방에 넣지 않고 백팩에 짊어진 이유다. 공항 대기실에서 오랜만에 46번째의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라고 제목을 달고 보니, 육아일기가 아이들 어릴 적만큼 낯설고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육아일기를 쓰지 않은 지 어느새 2달 반이 흘렀다. 


어제오늘 연속해서 슈퍼주니어의 최시원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에 열광하는 내 아들 또래의 젊은이들을 많이 만난 부작용일까? 재미 삼아 아이돌 스타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메시지로 두 아들에게 보냈다. 무슨 응답이 올까 기대하면서. 


명문 스탠퍼드 대학에서 북미 해외 한국학의 미래의 방향을 설정해 보자고 이틀간 학회가 열렸다. 한국 문학, 언어, 역사, 사회학, 그리고 한국학 도서관의 역할까지 모두 다섯 패널을 중심으로 각계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각자의 분야에서 앞으로 한국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는 열띤 논의를 나눴다. 한국학 사서로 나도 패널에 참석해 대학도서관의 최근 트렌드를 전하고 한국학을 위한 연구 정보에 대한 과제를 함께 모색해 보았다. 


그런데 컨퍼런스가 열리기 불과 한 달 전쯤 갑자기 한류에 대한 패널이 추가로 생기더니, 패널리스트의 이름에는 SM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의 한 분과 가수 겸 연기자라는 타이틀로 최시원의 이름이 들어왔다. 덕분에 최시원이라는 슈퍼주니어 멤버 중의 하나인 아이돌을 만나는 유쾌한 경험을 가졌다. 방탄소년단이 아니었던 게 조금 아쉬웠지만. 참고로 대학 교수님들과 사서들이 모인 컨퍼런스에 아이돌 멤버가 패널리스트로 직접 등장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긴 하다. 한류가 해외 한국학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상의 일부라고 보면 된다. 나처럼 해외에서 한국학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한류의 인기란 그야말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인식을 최고조로 높이는 일등 공신이요 효자상품이라 말할 수 있다. 한류 덕분에 해외에서는 한국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한류 스타가 미국 대학 컨퍼런스에 나타나 자신의 견해를 전하며 학회와 연예가 함께 웃고 즐기며 공부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최시원이 패널에 나오자 K-POP 팬들이 대거 컨퍼런스 장소로 몰려들었다. 팬들은 다소 학문적일 수 있는 한류 관련 패널을 지루한 줄 모르고 끝까지 잘 경청해 듣고 제법 훌륭한 질문들도 던져가며 화기애애한 컨퍼런스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시원 얼굴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흐뭇해 보였다. 사실 나도 최시원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걸 느꼈는데, 교수님을 비롯한 참석자들 모두가 오래간만에 들뜬 모습이었다. 


수업을 빼먹고 왔다는 16살 고등학생 소녀에서부터 보스턴, 토론토, LA 각 도시에서 최시원이 등장하는 컨퍼런스를 찾아 모여들었다. 공연을 보러 오는 것도 아닌데 그들의 열정이 학문의 열정만큼이나 뜨거웠다고 해야 할까? 이런 일은 내 20년 넘은 사서 경력에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아이돌과 현장에서 같이 숨을 쉬다니. 말로만 듣던 한류의 인기와 우리 연예인들의 활약에 감탄과 자랑스러움이 밀려들면서 해외에서 한국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런 자긍심을 누릴 수 있다는 기쁨이 무엇보다도 컸던 시간이었다. 


최시원을 만나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는 영광을 얻은 배경을 설명하다 보니 해외 한국학을 운운하며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사실 이 육아일기의 지면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해외 한국학의 미래가 아니다. 한류가 좋아 한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래서 한국과 무척 밀접한 관계에 있는 내 아들 녀석이다. 최시원에게 감사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와 같은 아이돌로 인해 한류를 국제화한 한류 문화 덕분에 미국에서 나고 자란 내 아들이 한국을 좇아 현재 한국에서 대학 공부를 하고 있고, 앞으로 한국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찾아 한평생 살아보겠다고 떠났으니, 그의 공로에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달해야 하나? 최시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들이 한국어의 철자나 의미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성 들여 그림을 그리듯 K-POP 제목을 한글로 적었던 그 깨알 같은 리스트들도 노래처럼 떠다녔다. 한류의 미래는 이제까지 보아오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될 엄청난 현상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SM 기획사의 한 대표는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내 자식의 미래도 한류의 장래처럼 밝을 것이라 예상해도 좋을까? 



지난가을 한국에 출장을 갔을 때 아들과 나는 총 3번의 만남을 가졌다. 한 번은 친정 오빠이자 아들의 삼촌 그렇게 셋이서였다. 고깃집에 앉아 삼촌과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국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이 아이가 내가 미국 땅에서 낳은 아들인가 싶어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애매한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없으리라. 이 아들 내 아들 맞아? 하는 낯섦? 미국 같으면 술에 입을 대서도 안 되는 나이에 한국에 와서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켜는 아들을 보다니. 내 자식이지만 볼수록 신기하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언니(아들에게는 이모)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아들과 단둘이 백화점 쇼핑을 했다. 아들의 옷가지를 한국에서 사 주면서 한 번도 같이 가 본 적이 없는 강남의 한 복판을 거닐었다. 중학교 때부터 옷 쇼핑은 일체 인터넷을 통해 했던 아들이라 한국에서 아들과 백화점을 다니며 쇼핑을 하는 게 무슨 어려운 태스크를 아들과 함께 체험하듯 생소했다. 한국어로 아이에게 허리둘레가 뭐냐고 묻는 점원도 낯설었고, 거기에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아들을 보는 것도 안타까웠다. 점원이 바짓단을 친절히 만져주며 길이를 재는 것을 보고, 점원 앞에서 앞뒤로 자신의 옷 태를 검열받아야 하는 아들의 멋쩍은 상황을 지켜보는 일도 미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다. 남들에겐 숨 쉬듯 자유로운 일들이 한국이라는 땅이기에, 그 땅에 어쩌다 가게 된 내 아들이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신기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만남은 내가 시애틀로 돌아오기 전에 오빠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였다. 저녁 식사 후 아들을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지하철을 타고 학교 앞에 내려 안암동 길을 함께 걸었다. 아들을 따라 아들이 사는 동네 안내를 받으며 골목을 걸었다. 어느새 아들은 나보다 더 한국적이 된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을 보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을 느꼈다. 갑자기 발밑의 지구가 빠르게 회전을 해서 아들과 함께 낯선 도시에 와 있는 기분? 길거리 작은 점포를 지날 때 채소를 담은 작은 바구니들이 바닥에 즐비하게 있었는데, 마치 내 어릴 적 (아니 아들의 나이 정도에) 봤을 법한 약간은 촌스럽고 지극한 한국적인 노점상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 속에 아들과 내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함께 떠나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들과 나의 자리가 바뀌어도 한참은 바뀌었다는 생각과 함께. 아들과 내가 걷던 거리와 길을 걸으며 함께 나누었던 대화가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 보니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 영화 내가 본 영화 맞아? 하는 의심처럼. 또는 이거 실화냐?라는 외마디 질문처럼. 


안암동 지하철역 앞에서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을 그 황량한 서울 바닥에 두고 나는 호텔로 돌아오며 영화의 주인공들조차도 연기하기 힘든 어려운 장면을 마무리하며 우리 둘은 그 낯선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어울리지도 않는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며. 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엄마랑 지금 이렇게 안암골에서 작별을 하고 있는 이 상황이 실화냐? 하면서. 


때로는 삶을 이렇게 마음대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걸으며, 뜻하는 바대로 자유롭게 살아도 좋을까 하는 생각을 아들 덕분에 자주 하게 된다. 40 후반에 들어선 중년의 내게는 지향해도 좋을 삶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20대 아들에게는 어찌 보면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적절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내 인생이 아니라 아들의 인생이기에 그런가 싶다. 역시 부모란 자식보다 자식의 삶을 더 걱정하며 살아가는 운명이다. 


훈남 슈퍼주니어 최시원의 달달한 얼굴을 보며, 커 갈수록 날 더 닮아가는 아들의 얼굴이 지금 무척이나 보고 싶다. 아들아, 한국에서 안녕하신가? 날씨가 추워졌다는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기는 하는지? 햇반과 컵밥에 질리지는 않았는지? 중간고사와 학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이런 질문에 이어, 이 엄마가 가장 궁금한 것은 (아니 네가 떠났을 올 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궁금한 것은) 네가 결정한 한국에서의 길에 아직도, 충분히, 결연히, 만족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묻기가 조심스럽다. K-POP과 한류만으로 해외 한국학의 미래를 몰방하기에는 뭔가 불안해지는 것처럼. 팬들의 사랑만큼 쉽게 식는 것도 없는데 아들의 한국 사랑이 쉽게 식어 버리진 않을까 엄마는 걱정이 된다. 아마도 해외 한국학이 한류로 인해 시들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아, 한국에 대한 너의 사랑과 관심이 깊어질 수 있기를 이 엄마는 시애틀에서 빈다. 네 사랑이 행여 언젠가 식는다 해도, 또 그 사랑이 설사 변한다 해도, 그 부분마저도 네가 널 사랑할 수 있기를 엄마는 바랄 뿐이다. 어차피 인생은 너 자신을 알아가는 귀한 과정이니까. 너 자신을 알고자 기꺼이 온몸을 던져 너를 시험하며 네 인생을 용기 있게 보내고 있는 너에게 슈퍼주니어 최시원에게 보냈던 박수보다 더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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