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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27. 2018

#48.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Lenient & Liberal? 

간만에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게 될 때면, 그전까지 글쓰기 않고 지냈던 나를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려는 강박이다. 내가 글 쓰는 걸 즐기는 사람 맞아? 하는 질문은 늘 쓰지 않는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읽거나 쓰거나 둘 중의 하나라도 해야 나 자신에게 체면이 서기 때문이다. 왜 체면이 서야 하는지 묻는다면,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고상한 사람인 척? 하기 좋아하는 작가 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작가가 되고 싶은 병적 증상이 더 정확할 표현이겠다. 아무래도 좋다. 이런 병적 증상이 나를 아직 떠나지 않고 내 주변에 서성거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감사할 일이다. 그런 허세와 허영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그리고 과거에 그랬으니까) 공포감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찾아온다. 그때의 나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체면을 종용당하고 있는 지금이 백배 낫다. 그만큼 나는 작가가 되기를 욕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써 보려 한다.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갈망하는 정체성에 알량한 자존심을 받쳐주기 위해. 없던 정체성도 이렇게 쓰다 보면 생기겠거니 작가적 상상력을 총동원해 가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의욕은 줄어 드는데 뻔뻔함은 늘어간다. 인생 후반전을 살다보니, 앞으로 그리 잘나가지 못해도 괜찮다는 뻔뻔함이 어느새 내 든든한 친구가 되었다. 다행이도 최선은 다 해보자는 성실함이 아직 완전 소멸하지는 않았다. 그것마저 바닥이 나면 글쓰기를 아예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남에게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것도 한 몫을 했다. 남편 왈, 요새는 통 글을 쓰지 않는다며 글 좀 쓰라며 최근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던 나를 각성시켜 주었다. 이 남편이란 작자도 아내가 진짜 작가라도 되는 줄 알고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닌지 난 그것이 살짝 더 걱정되었지만, 따가운 질책에 아무 반응하지 않으면 정말 작가라는 이름을 잃어버릴 것 같아 허겁지겁 이렇게 종이를 펴고 글자를 두드린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습긴 하다.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다시 종이를 꺼내 드는 모습이.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다시 성실로 나를 치장한다.


무슨 서두가 이리 긴가 하겠지만, 모든 글에는 그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서론이 있는 법이다. 그걸 쏙 빼놓고 본론부터 시작하는 건 나를 낳아 준 부모를 무시하고 무참하게 버리는 일과 상응하는 것이라 생각돼, 누가 뭐래도 나는 이 부분을 적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독자의 시간을 낭비한다고 욕을 먹을지언정 이런 긴 서두를 지저분하게 앞에 다는 일을 앞으로도 쉽게 양보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만큼 누구에게든 정체성의 유지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몸을 부지런히 돌고 있는 혈액처럼 작가의 생명에 치명적이니까. 정작 쓰고자 한 글의 내용보다 어쩌다 글을 쓰도록 발동이 걸렸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차마 내 입으로 전하지 말자.




오늘 육아일기에서 쓰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이냐고? 20년 만에 깨진 아들의 도발적인 무신론자 선언이라고 해야 할까? 20년 육아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충격 속에 핀 꽃 한 송이?


얘기인즉슨 이렇다. 쌍둥이 첫째 아들이 크리스마스 주일 예배를 가기 전날, 남편과 나에게 자신은 내일부터 교회에 가지 않겠다며 무신론자의 길을 선언했다. 아들은 모태 신앙으로 태어났고 (물론 내 신앙도 신앙이지만, 쌍둥이 순산을 위해 아이들이 배 속에 있는 동안 기도 정말 많이 했었다), 아빠는 교회 장로이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크리스천에게도 적절하다니), 엄마 아빠가 다른 인연이 아닌 교회에서 만나 믿음으로 이룬 가정에서 자랐고, 그렇게 지난 18년은 집에서 나머지 2년은 대학에서 교회 생활이라는 것을 했는데, 이제껏 붙이고 살아온 자신의 크리스천 레이블을 마치 무슨 거추장스런 딱지인냥 가차없이 떼어 버리겠단다. 마치 필요없는 것을 몸에 귀찮게 달고 다녔던 것처럼. 그걸 붙여 준 엄마 아빠를 원망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치 부모에게 속고 살아온 것 같은, 그래서 이제는 그 딱지를 내 손으로 떼어 내겠다는 의기양양함으로 가득해서 말이다. 


처음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던 아들이었다면 충격이 덜했을까? 20년 씩이나 되는 믿음 생활을 하고 난 뒤, 믿음의 줄기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을 때, 줄기는커녕 믿음의 씨앗조차 싹도 못 트고 있었던 것을 직시 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성경의 창조론보다 더 믿을 만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를 버리고 다윈의 이론을 신봉하는 것으로 삼겠단다. 내 머릿속에 든 첫 번째 생각은 “누가 대학생 아니랄까 봐” 였다. 나도 한 때 아들과 비슷한 나이에 교회 다니는 것을 천박하고 무식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으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했었고. 


아들이 믿겠다는 적자생존론은 초등학생도 아는 이론이 아닌가? 이제 와서 진화론을 핑계 대며 크리스쳔에 반감을 갖다니 호떡 뒤집듯 홱 하고 돌아서는 아들의 알량한 지식이 젊은 나이의 치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한 아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려고 하며 대화를 이끌어 갔다. 사실 대학에 가서도 교회를 빠지지 않고 다녔고 부흥회도 찾아다닌 거로 아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짜 믿음을 갖기도 힘든 것을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순간 지난주 공항에서 만났을 때 이 녀석 손에 들려 있던 Dan Brown의 신간 Origin이 생각나, “너 그 책 읽고 그러는구나?” 했더니 어이없다는 웃음만 짓는다. 이 책을 읽다가 든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 느닷없이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엄마, 무신론자가 지옥에 가면 그게 무신론자 책임이냐?”고 아들은 내게 물었었다. 마치 내가 무슨 하나님이라도 돼서 정답을 말 해 줄 수 있는 것처럼 내 답을 기다리면서. 미안하게도 난 녀석의 질문에 제대로 답해 주지 못했다. 다만, “음… 엄마 생각에 그건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크리스천이 복음을 더 열심히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믿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겠지.”라고 머뭇거리자, 아들은 비난의 눈초리로 “그럼 왜 이 (여기에 아들은 상당히 강한 악센트를 넣었다) 집안 사람들은 도무지 아무도 전도를 하지 않는 거야?” 하며 짜증스럽게 되받았아 쳤다. “그렇지. 그건 참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만, 엄마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상적인 크리스천이 못 돼서 그래. 머리로는 알지만 예수의 도를 다 못 따르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아마 장담하건대 앞으로도 그럴꺼야.” 하며 내 부족한 믿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나보단 믿음이 좀 더 깊은 (그렇다고 전도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닌) 아빠랑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때하며 아들의 마음을 유도해 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얻어야 할 답을 다 얻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아들이 더 반박하지 않고 거기서 멈추자, 역시 솔직한 대답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내 답이 그럴싸했다고 믿고 살짝 우쭐해했던 것도 사실이다. 오늘 아들이 무신론자이기를 선포하기 전까지는.  


아들은 모태 신앙에 유아 세례를 받았고, 어려서는 여름 성경학교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거의 일 년 열 두 달 주일 성수를 하며 신앙의 가정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며 자랐다고 생각했기에, 아들 녀석이 종교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될 줄은 살면서 별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자라면 그렇지 않은 가정에 비해 믿음을 가질 확률이 높을 거라고만 생각했으니까. 거기다, 특히 쌍둥이 중에서 이 녀석이야말로 신앙이 바로 서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 또 그런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교회를 빠지지 않고 나갔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자신의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으니까. 물론 나의 남들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종종 비난하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아들의 믿음 없음이 나와 남편의 부족한 믿음 탓일까 싶어 자책감이 밀려온다. 한편 무모한 믿음보단 신앙이란 것에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한번은 인생에서 치러야 할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아들에게 무작정 실망스러운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대학생 때 한 번쯤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고민하는 것은 좋다고 말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사실 나도 아들 나이 때 잘 나가던 교회를 스스로 졸업하고, 세상의 철학과 지식에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있었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 그 당시 얼마나 당차고 패기있게 들렸던지, 신에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상을 젊은 나이에 좋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니체도, 아들도, 나도 매한가지 였다. 


그렇게 내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래 네가 내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면 나가지 않아도 좋다”고 말하고 나니, 아들은 안도의 얼굴과 함께 심지어 흐믓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엄마가 꽉 막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싫지 않은 얼굴이다. 의외로 엄마 잔소리를 듣지 않게 되어 속으로 행운을 외치고 있는 듯한 얼굴이기도 하다. 


아들과 대화의 물꼬가 터졌고 아들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길래 궁금했던 질문을 이어서 던졌다. 신앙에 대한 너의 고민을 교회의 목사님이나 선배들과 나눠봤냐고 했더니, 교회엔 다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밖에 없다고 단번에 냉소적인 눈빛이 되어 실망함과 답답함을 호소해 왔다. 아들이 다녔던 교회에 다들 완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한창때의 청년들이라 자신에게 맘껏 솔직해지지 못해서 그랬으리라. 하긴 목사도, 전도사도, 믿음의 선배도 타인에게 자신의 신앙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교회 생활만 수십 년인 내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교회에는 믿음이 신실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다고 아들에게 일러 주었다. 믿음이란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예수를 만나지 않고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려주면서. 그래서 종교는 믿음이지 네가 좋아하는 논리적인 과학과는 다르다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 믿기지 않아도 믿으려고 하는 것. 논리로 이해하기 힘든 것을 믿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아들은 물론 이런 비논리적인 사고를 받아들일 나이도 자세도 아니었지만. 다만 나는 아들에게 “네가 어느 날 믿음이 생기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만 전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시고 네게 믿음을 선물로 주실 거라고 하면서. 그래서 네가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일을 없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그랬더니 아들은 고맙다고 한다. 녀석의 말에 진심이 담겨 있어, 아들의 믿음은 잃었지만, 내 마음은 전보다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오늘의 육아일기는 아들의 무신론 충격 선언 정도가 적합할 것이다. 근데 사실은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스토리라인이 있다. 아들의 무신론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아들이 남편과 내게 가지고 있던 부모 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들은 신앙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또래 친구들 가정을 빗대어 이야기하다가 우리 부부를 두고 “관대하며 진보적인 부모”라는 표현을 썼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엄마랑 아빠가 다른 부모에 비해 관대하고 진보적이라는 건 알아.” 순간, 아들의 무신론에 대한 걱정과 염려는 어느새 날아가고, 어깨에 날개가 달린 듯 기분이 하늘로 향했다. 아들이 우리를 썩 괜찮은 부모로 인정해 왔다는 고백을 듣고 나니 지난 20년간의 애증의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 든 것이다. 우리를 살갑게 대하지 않고 늘 무뚝뚝하고 땍땍거리며 불평불만만 얘기해서 아들 눈에 보일 부모의 모습에 자신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저 녀석의 눈에 우리가 꽤 괜찮은 부모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들의 신앙이 20년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 사라져 버렸다해도 20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아들로부터의 긍정적 평가라서 그 기쁨이 말로 못 하게 크다. 신앙과 맞바꿀만큼 거대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게 내 초라한 신앙의 현주소이고 그에 따른 응당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들에게 좋은 점수를 딴 지난 20년의 노고에서 오는 기쁨으로 자축했다. 그 기쁨은 오랫동안 잃었던 것을 탈환한 기쁨과도 같았다. 언제나 자신은 보수주의자라면서 늘 꼴통 보수를 주장하던 남편도 아들에게 그 반대의 관대한 점수를 받고 나니 어린아이처럼 마냥 좋아한다. 내 감동은 아들이 엄마의 육아 방식을 드디어 이해했다는 기쁨에 근거한다. 그래, 인제야 네가 머리가 좀 자라고 나니 엄마가 얼마나 널 존중해 왔으며, 너에게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했으며, 꼰대처럼 부모로서 군림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양육해 왔는지, 드디어 네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격의 눈물이 날 것도 같다. 그것을 인정받는 게 왜 그리 내게 중요했는지는 그동안 내가 아들을 키워 온 방식이 잘못되었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늘 따라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아들을 리버럴하게 키웠나? 하는. 


아들의 생각과 발언이 뭐라고 이렇게 기뻐하는 부모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게 자식을 사랑하는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어쩌면 아들도 자신의 신앙을 버리는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마음속 저변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좋은 점수를 주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 보면서. 지금은 반항하고 있지만, 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올 탕자처럼 말이다.  


오늘은 참 아이러니한 날이다. 아들의 20년 걸려 지니고 다니던 신앙이 무참하게 떨어져 나가서 슬프기도 하지만, 그 대신 20년간 걸려 한 번도 보상받지 못했던 내 육아에 대한 아들의 믿음을 찾으니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게 세상사는 이치인지 모르겠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를 어이없게 잃고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하나를 대신 얻었다. 비록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무게와 가치는 너무 차이나는 것이긴 하지만. 하늘의 일보다 이 땅의 일이 내게는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나는 엄마인 내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일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육아 일기에 간만에 햇살이 비쳤다고 써도 좋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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