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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경 Dec 28. 2018

#49.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노스페이스와 파타고니아 사이에서

지난 10월 한국에 출장차 나가면서 아들에게 물었다. 뭐 필요한 거 없어? 아들의 대답은 gum. 한국의 껌은 너무 물러서 맛이 없단다. 코스코에서 파는 껌 세트를 하나 샀고, 먹기 좋은 비타민도 한 병 챙겼다. 한국에 없는 거 없이 다 있어서 (대부분 더 좋은 것들), 미국에서 사서 나갈 물건이 별로 없다. 그래도 빈손으로 가는 게 아쉬워 껌 외에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애를 위해 굳이 겨울 코트를 하나 장만해 갔다. 한국의 겨울이 시애틀보다 몇 배는 더 춥고 매서운지라, 든든한 패딩 파카 하나 정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남편의 조언이었다. 시애틀 전주민의 교복이 돼버린 North Face 파카를 살까 하다가 한국에서 이미 North Face 가짜가 한 때 유행을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다른 브랜드를 찾아 나섰다. 이왕이면 좋은 브랜드의 상품을 사다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추위도 추위지만 명품과 브랜드 파워를 중시하는 한국에서 미국 촌뜨기로 행여나 아들이 기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의기투합한 남편이 먼저 아크테릭스 (Arc’teryx) 상점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워낙 각종 브랜드에 눈이 어둔인지라, 아크테릭스가 무슨 상점인지, 뭘 파는 곳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상점 이름에 찍힌 아포스트로피 때문에 발음하기도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상표를 한 번도 들어 본 적도 없었으며 이름의 뜻도 몰랐다. 나중이 돼서야 아크테릭스는 캐나다 브랜드에 1억 5천만 전에 살았다는 아주 오래된 새 (시조새 Archeoteryx)의 이름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상표 옆에 붙은 로고가 구석기시대 공룡 화석을 생각나게 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게다. 상점을 돌아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상점을 나와야 했다. 가격이 예상 밖으로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패딩 잠바 하나가 천 불을 웃돌았다. 아무리 전 세계 아웃도어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브랜드라고 하지만, 모피 코트도 아닌 겨울 파카가 천 불에 이른다는 것은 아웃도어에 문외한이었던 내게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다. 남편은 조금 더 저렴하다는 미국 브랜드 Patagonia를 다음으로 추천했다. 이 이름도 처음 들어보기는 마찬가지. 파타고니아는 남미의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거치는 광활한 대자연의 지역을 지칭한다고 한다. North Face가 최고인 줄로밖에 몰랐던 내게 아웃도어의 브랜드는 광활한 파타고니아와 같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상점에 들어갔고, 아크테릭스보단 좀 더 착한 가격의 겨울 파카를 골라서 한국에 있는 아들에게 선사했었다. 아들의 옷을 내 손으로 골라서 입혀 주기는 아주 어렸을 적 이후로 오래간만에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참고로 아들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나이부터 자신의 모든 옷은 혼자 인터넷에서 구입해 왔다. 한국에서 인증샷을 위해 옷을 입혀 놓고 사진을 찍는데 사이즈가 귀신같이 잘 맞아서 흐뭇했던 게 지난 초가을의 일이다. 아마 단벌 값으로 아들에게 썼던 옷값 중에서 가장 비싼 옷이 아니었나 싶다. 파타고니아 정도면 한국에서 기죽지 않고 지낼 수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한국에 있는 아들 녀석에게 비싼 겨울 외투를 사 주고 나니, 미국 동부에 있는 쌍둥이 다른 아들의 외투가 마음에 걸린다. 방학 때 집에 온 아들에게 다짜고짜 겨울 외투를 사주겠다며 다운타운 상점을 누빈 게 그 이유였다. 아들을 데리고 먼저 Nordstrom 백화점에 갔다. 거기 가면 한꺼번에 여러 브랜드를 볼 수 있어서였다. 아들이 가장 먼저 손에 잡은 것은 Canada Goose. 말로만 들어봤던 브랜드. 특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캐나다 구스였다. 이건, 부잣집으로 시집간, 잘 나가는 내 고등학교 동창이 알려줘서 예전에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추운 지역이 많은 캐나다에서 만든 아웃도어 상품이 유명한가 보다. 가격을 보니 천 불 아래의 옷은 전무하다. 마음속으로는 이 비싼 가격의 옷을 지불할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만지작거리는 아들에게 입어 보라고 영혼 없는 말을 건넸다. 아무리 비싸도 입어 보는 거야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비싼 재킷이 의외로 아들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을 수 있으니까. 절도 방지를 위해 케이블로 줄줄이 엮여 있어 쉽게 재킷을 꺼내 입을 수도 없었는데,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재킷을 입어 보긴 했지만, 기능성을 따져볼 때 가격에 비해서 그다지 메리트가 있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건 내 알뜰한 생각이었고, 아들은 그 잘난 룩 (look)이 중요한지 마음이 많이 쏠리는 모습이다. 너무 비싸지 않냐는 내 말에 대뜸 내 예산이 얼마냐고 아들은 묻는다. 예산을 알아들은 아들이 재킷을 내려놓길래, 예산에 못 미치는 액수는 네가 보태서 사라는 말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서는 파타고니아 상점에 가 보자고 아들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파타고니아에 가서 이것저것 입어 봐도 전에 입었던 캐나다 구스만 못한 지 아들은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맘에 안 든다고 하더니,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재킷을 놓고 마지못해 마음을 먹는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 재킷은 내가 지난가을에 한국에 있는 다른 아들을 위해 사 갖고 나갔던 재킷이었는데, 쌍둥이의 외투 취향이 이렇게 딱 맞아 드는 게 나로서는 무척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려선 양말 한 짝도 같으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서로 다른 옷을 입고자 애쓰더니만, 둘이 떨어뜨려 놨더니 같은 옷을 고르다니. (엄밀히 말해 하나는 내가 고른 거지만). 아무튼, 드디어 쇼핑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다른 아들 녀석에게 사 준 똑같은 브랜드에 동등한 가격의 옷을 골라 아들 간 형평성을 유지했다는 기쁨에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을 때였다. 안타깝게도 찾는 사이즈가 이미 다 팔리고 없다. 심지어 뉴욕과 시카고 매장에까지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해 봤지만, 이 상품은 올해 완전 품절이란다. 여기서 아들과 나는 재킷 구매를 일단 포기하고, 아침 내내 쇼핑하느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먼저 점심을 먹으러 가는 데 합의를 봤다. 점심을 먹으며, 아들은 캐나다 구스의 웹사이트를 뒤졌고, 식사가 끝나자 자신이 돈을 더 보탤 테니 아까 그 재킷을 구입하겠단다. 내가 먼저 제안한 협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과소비하는 것에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그러겠다는 아들을 North Face를 한번 구경하고 가자는 말로 꾀어냈다. 평소에 North Face도 비싸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크테릭스와 캐나다 구스에 파타고니아를 돌고 나니 노스페이스는 그야말로 서민적인 가격처럼 보인다. 옷을 두 벌 사도 괜찮겠다며 굳이 비싼 네 돈을 들여서까지 그 재킷을 사야겠냐며 나는 옆에서 아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열심히 노력했고, 아들은 처음엔 별로 듣는 척하지 않더니 고분고분하게 주는 옷을 받아 입어보다 결국은 노스페이스 브랜드로 마음을 정했다. 사실 따져보면 파타고니아보다 월등히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여전히 노스페이스도 아웃도어 명품 중의 명품이니까. 


아들에게 겨울 외투를 안기고 나니 두 달간 미뤄두었던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지난 10월부터 쌍둥이 아들 한 명에게만 선사했던 외투가 내 맘을 편치 않게 했다. 자로 잰 듯 두 아들에게 모든 걸 공평하게 나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일부러 한 아이에게 치우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내게는 늘 존재해 왔다. 쌍둥이 아들이 태어나서 이제껏 자랄 때까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둘에게 똑같이 분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을 중심으로 각각 삶의 터전이 바뀌고 나니 더 그렇게 되기는 힘들었다. 등록금의 액수도 다르고 생활비도 천지 차이고, 기본 물가가 달라 돈의 필요 정도도 각각 다르니까. 


그래서 아들에게도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 있던 말 한마디를 선심 쓰듯 던졌다. 크리스마스도 되고 했으니, 원하는 게 있으면 엄마가 사줄게. 아들은 대뜸 한국에 있는 쌍둥이 브라더도 사 줄 거냐고 묻는다. 난 이 질문이 왜 나와야 하는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특이한 우리 쌍둥이 아드님은 이 대목에서 그 질문을 퍼부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또 아무 생각 없이 심지어 당당하고 당연하게 걔는 한국에 있으니까 사줄 필요 없다고 대답하자, 아들은 버럭 화를 낸다. 엄마가 돼서 아들에게 최대한 똑같이 나눠 주려고 노력해야지 그러면 안 된다며 나를 나무라면서. 나는 저 생각해서 한 말인데, 아들에게 핀잔만 먹었다. 공평하지 못한 엄마라고. 허 참… 내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세 남매 중에 나에게만 뭔가를 사주면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같아 마냥 좋았었는데, 까다로운 쌍둥이 아들들은 달라도 많이 다르다. 


Fair와 공평이라는 단어가 저들 사이엔 그 어떤 단어보다 중요한 단어이다. 아들은 20세 성인이 다 된 나이에까지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걸 이 엄마에게 따끔하게 가르쳐 준다. 생각해 보니 이 말을 한 첫째 녀석은 무슨 건수만 있으면 나에게 fairness를 요구했었다. 다른 아들에게 대하는 식으로 자신을 대해 달라고 했던 게 (절대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고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맹세한다), 녀석의 단골 불평이었다. 아들이 예민해서 그런가 쌍둥이 만의 촉이 따로 있는지, 아들은 브라더와 비교하기를 좋아했고 비교해서 조금이라도 동일하게 취급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여지없이 나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런 아들에게 융통성 없고 답답한 녀석이라고 나도 종종 맞받아치기도 했지만 나는 두 아들 사이에서 레퍼리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무능한 심판인 적이 자주 있었다. 




한 달 전 친정아버지의 팔순 생신이셔서 한국에 다녀왔어야 했다. 위로 언니와 오빠 이렇게 삼 남매 중에 나는 막낸데, 아버지 생신을 맞이해서 삼 남매가 동등하게 아버지에게 선물하기로 결정을 봤다. 처음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물질적 여유가 좀 더 있는 자녀가 더 큰 선물을 하는 거고, 그렇지 않은 자녀는 형편에 맞게 하는 게 공평하다고 나는 생각했었는데, 오빠의 생각은 달랐다. 너도 나도 똑같은 엄마 아빠의 자녀이니 동등하게 하는 게 좋다는 거였다. 처음엔 가장 형편이 넉넉한 오빠가 자기보다 낮은 내 기준에 맞춰 꼼수를 부리려나 보다 라고 생각해 얄밉고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도 일리가 없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 상했다. 동등해야 한다는 이유로 약간 처지는 내 형편에 맞춰 오빠까지 하향 조정한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좀 힘들더라도 오빠와 언니에 맞춰 상향 조정해야 자존심이 덜 상할 것 같았다. 엄마 아빠에게 드릴 때는 내 형편대로 내 편리대로 하고, 받을 때는 공평하게 받는 게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전히 좀 치사한 마음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같은 형제인 오빠에게도 내 할 도리를 다해서 당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부모님께도 아들 딸, 첫째와 막내 간에 차이를 느끼게 해 드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 이치는 부모님께 거는 기대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는데, 부모로부터 아주 동일한 사랑을 받을 순 없다고 해도 적어도 차별받았다는 느낌은 받고 싶지 않은 심리가 깔려 있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니, 아들이 내게 충고해 준 말이 비로소 맞았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는 최대한 공평하게 나와 내 브라더를 대하려고 노력(!) 해야 한다고”했던 말에 백배 공감한다. 아들이 나보다 훨씬 더 현명한 걸까? 노스페이스의 외투가 파타고니아보다 150불 정도 저렴했던 것 같은데 치사하게 그 차액을 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현명을 넘어 훌륭한 아들이라고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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