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대하는 임팩트 투자의 모습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공과 위험 가능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성공을 통해 기대되는 재무적 수익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위험을 감수한 만큼 그 수익은 큽니다. 초기 벤처가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의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지 꼼꼼히 분석하고 평가하여 미래 가치를 판단하고, 그 미래 가치에 베팅을 하는 것이죠. 또한 재무적 수익뿐 아니라, 해당 비즈니스가 해결하려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한다면, 이 역시 투자를 통해 얻게 되는 정성적인 수익이 아닐까 싶습니다.
투자 과정을 생각해보면, ‘어떤’ 성공을 이끌어내는 벤처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벤처인지에 따라 투자자들마다 다른 평가를 내리게 되고, 그 평가에 의해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도에 따라 평가를 합니다.
임팩트 투자와 소셜벤처 역시 동일합니다. ‘임팩트’와 ‘소셜’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나 기본 속성은 위에서 서술한 투자와 벤처의 접근 방법과 동일합니다. 다만, 사회, 환경적 ‘의도 (Intention)’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벤처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사회, 환경적으로 의미가 있고, 벤처가 성공했을 때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과 변화가 시민사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시장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여 발생한 실패의 영역을 비즈니스와 이에 투자하는 자본으로, 즉, 다시 시장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죠.
2016년 아산나눔재단 펠로우 자격으로 근무했던 임팩트 투자기관 D3Jubilee (디쓰리쥬빌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격차’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교육 격차, 정보 격차, 금융 및 에너지 접근성 격차 등 여러 분야에 나타나는 격차를 줄이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술 기반의 벤처들을 발굴하여 투자합니다.
투자자가 투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재무적 그리고 사회적 수익의 목표 수준 역시 의도가 중요합니다. 임팩트 투자 산업에 있어 항상 대두되었던 논쟁은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수익 사이에 트레이드오프 (trade-off: 한쪽을 추구하면 다른 쪽을 희생해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관계)가 있는지였습니다. 임팩트 투자는 돈을 벌면 안 되는 투자인지 부터 얼마나 수익을 희생해야 임팩트 투자라고 할 수 있는지 등 재무적 수익을 희생한다는 관점으로만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투자자가 얼만큼의 재무적, 사회적 수익을 기대하느냐, 그 의도에 따라 다릅니다. 시장 수준의 수익률을 얻고 싶다면 그 기준으로 피투자사를 검토하면 되며, 시장 수준의 수익률보다 조금은 낮더라도 이 회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 발생하는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그 기준으로 검토하면 됩니다.
임팩트 투자는 올해 들어 규모와 속도 측면에서 큰 성장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출자하는 200억 원 규모의 사회투자펀드 (임팩트 투자 부문)의 위탁운용사가 선정되었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한국벤처투자도 연내 1,000억 원 규모의 임팩트 투자 펀드를 조성한다고 합니다. 우수 소셜벤처 육성을 위한 팁스 (TIPS)* 운영사도 선정될 예정입니다.
(*TIPS: 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으로 성공벤처인 등 민간 (운영사)을 활용하여 창업팀 선별, 민간투자-정부 R&D를 연계하여 고급 기술인력의 창업을 촉진하는 프로그램. 운영사에게 소셜벤처 등 연간 5~10개 내외의 창업팀 추천권 TO를 배정하고 최종 선정된 창업팀은 정부 R&D 자금 (5억 원), 사업화 마케팅 (2억 원) 등 최대 10억 원 지원.)
사회적 기업의 확산은 2007년 7월 시행된 [사회적기업 육성법]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에서는 사회적 기업을 취약계층에게 사회복지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이자,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의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일자리 창출과 사회복지 서비스의 대체가 주목적이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증가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의 수요를 만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을 확대하고 육성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목적을 넘어 환경, 교육, 의료, 식품, 주거, 장애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세상의 다양한 사회문제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해결하는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의 법적 형태 역시 비영리 단체, 협동조합, 스타트업 등으로 다양해지다 보니, 정부 인증 제도 안에서만 이들을 바라보기 어렵고, 제한된 인증 기준을 넘어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소셜벤처, 임팩트 벤처,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는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을 넘어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사회변화를 창출해야 하고 벤처의 자금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성공과 가치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투자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벤처에 자신의 자본을 투여하고 그 가치를 실현하여 투자 수익,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과 변화를 기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투자와 벤처들이 수익과 가치 측면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내 1등 카셰어링 업체 쏘카는 소셜벤처 전문 엑셀러레이터인 sopoong에 이어 2015년 Bain Capital, SK 등으로부터 총 650억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받았습니다. 쏘카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차량 증가로 인한 교통 체증과 환경 및 대기오염입니다. 10분 단위의 예약 기반 카셰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며, 2017년 6월, 보유 차량 7,000대, 회원 수 260만 명에 도달했습니다. 카셰어링 1대 당 도로 위 일반차량 15대를 대체하는 효과를 발휘, 이로 인해 10만 톤의 CO2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미아방지 스마트밴드로 유명한 커넥티드 웨어러블 스타트업, 리니어블 역시 올 3월 미국 IT기업인 Semtech로부터 200만 달러 (한화 약 21억 원)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2016년 유니세프의 ‘The Wearables for Good Challenge (웨어러블 포 굿 챌린지)’에 선정되었고, 2017년에는 치매노인 실종 방지 밴드를 개발해 노인 실종 예방에 기여했습니다. 앞으로도 리니어블은 가족 구성원의 안전을 책임지는 웨어러블 후속 제품 개발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투자와 비즈니스라는 수단에 시민사회적 가치를 투영하는 이러한 변화는 임팩트 투자와 소셜벤처라는 분야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습니다. 조금씩 여러 영역에서 발견되고 있는 변화들, 그리고 임팩트 투자와 소셜벤처와 관련된 일을 하는 제가 바라는 앞으로의 기대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3월 19일 정부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통해 재정배분, 성과평가, 조직관리, 인사운영 전반에 걸쳐 ‘사회적 가치 중심의 정부’로서의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효율과 성장 중심의 국정운영으로 경제 규모는 커졌지만, 양극화와 불평등이 발생하여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인식한 결과입니다. 정부는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기업들도 사회공헌사업뿐 아니라 환경, 지배구조, 스튜어드십코드, 사회책임투자, 상생 등을 고려하는 지속가능 경영에 눈뜨고 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가치’ 창출을 그룹 최우선 경영 실천 과제로 선정하고, 올해 초 16곳 계열사에 사회적 가치 전담기구를 설치했습니다. 또한 올 상반기 내에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연구하는 재단 ‘사회적 기업 연구원’을 설립한다고 합니다.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의 활동 안에서 사회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더 많은 주체들이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지한 주체들이 각자의 특성에 따라 관련 활동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임팩트 투자 생태계, 사회적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점점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에 더해 2017년 10월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고 기업들은 임팩트 투자에 직접 뛰어들거나 소셜벤처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서로의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있습니다.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들은 사회적 경제, Social Entrepreneurship (사회적 기업가정신)과 관련된 과목 또는 과정을 설치하여 교육 현장에서 사회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리더들을 양성합니다. 소비자들은 조금 더 의미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소비행위에 투영하고 있습니다.
각 주체들이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며 활동하고, 서로의 자원과 네트워크를 주고받아 상생과 시너지를 내는 것이 생태계가 갖는 역할이자 의미일 것입니다. 이 생태계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벤처들이 건강하게 성공하는 발판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상상력에 기반한 다양한 실험이 용인되고 그 결과물들을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민사회적 속성을 가진 투자자와 창업가의 의도를 이루어내려면 상상력에 기반한 투자 모델, 창업 모델이 나오고 실패하더라도 시도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정부와 기업, 중간지원기관, 후원자, 멘토/프로보노 등 생태계 내 다른 주체들도 실패를 최소화하는 지지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고요.
한 예로 제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루트임팩트에서는 상환면제 가능 대출 (Forgivable Loan)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피투자사가 투자기관, 제3의 평가기관과 함께 합의한 사회성과 지표의 연간 목표를 달성하면, 매년 원리금의 일정 금액을 면제받는 대출 구조입니다. 피투자사 입장에서는 비즈니스를 잘 수행하면 자연스레 사회성과 지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이는 대출 부담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니, 비즈니스를 잘 수행해야 하는 큰 동기가 됩니다. 투자기관 입장에서도 피투자사의 채무불이행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투자 시 기대한 사회성과까지 달성하게 되니 나쁠 것이 없습니다. 물론, 펀드의 자금 출처, 펀더의 성향과 기준에 따라 대출과 투자가 섞인 실험적인 투자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의 성장 주기와 특성에 맞게 투자 자금을 다양한 방식으로 투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투자의 다양한 모델을 기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소셜벤처 창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보면 구매력이 없는 고객군을 설정하였거나, 시장성이 없는 상품 또는 서비스를 만들어 과연 이 소셜벤처의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할 것이냐, 시장 경쟁력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가능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쉽게 일할 수 있는 직무를 재구성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베어베터의 경우, 현재 인쇄, 커피, 쿠키, 꽃, 카페 사업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장애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한 고객들의 걱정이나 부담을 해소하며 이렇게 확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근거한 연계고용 제도를 활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연계고용 제도란 장애인 고용부담금 납부 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연계고용 대상 사업장(장애인 직업재활시설 또는 장애인 표준사업장)에 도급을 주어 그 생산품을 납품받는 경우 장애인 근로자를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여 부담금을 감면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즉, 베어베터가 생산한 제품을 이용하면 기업들의 부담금이 줄어드는 제도를 활용하여 사업의 확장과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죠. 정부의 제도와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결합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The investments we make today are shaping the world we live in
(우리가 오늘 수행하는 투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만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본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과 세계는 바뀔 수 있습니다. 소셜벤처와 임팩트 투자가 자본의 가치와 사용의 방향을 바꾸는 시장의 툴로서 작동할 것이며, 현재 작동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주체들의 변화도 그 과정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계 안에서 성공사례, 롤모델이 나온다면, 일자리 창출과 같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으로서 자본을 투여하고 벤처를 활성하는 것을 넘어, 결국 내 삶의 가치와 자본, 비즈니스의 가치를 일치시키는 형태로 사회 전반이 변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시장의 영역에서 사회문제가 해결되고, 이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Written by 강보라
Edited by 조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