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교사 고백 일기 1
우리 집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게임 좀 그만하라고 했지 공부를 하라고 닦달하지 않았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듣고 공부한 학생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어른이 된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나도 모르게 잔소리한다. 물론 나는 게임을 그만두지 않았다. 지금도 즐기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난 수학을 좋아했다. 곧잘 90점을 넘었으니까. 별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딱히 사회 과목같이 외우지(노력하지) 않아도 '수'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과목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60점을 받았다. 처음으로 시험이라는 것으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점수가 낮아서가 아니고 단위를 쓰지 않았다고 4문제나 빨간 색연필로 사선을 그어버린 담임선생님과 단위를 깜빡한 나 자신이 미워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교외 경시대회 대표로 선발이 되었다. 아마 많은 동점자 중에서 단위를 빼먹었다는 것을 봐줘서 일 것이다.(60점 맞은 친구가 여러 명 있었다.) 방과 후에 5시까지 남아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따로 수업을 해주시는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같이 모여서 문제를 풀고 답을 맞히고를 반복했다. 좀 지겨웠지만 학교 대표라는 훈장이 지겨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줬다.
물론 학교 대표로 교외 수학경시대회를 나간 적은 없다. 처음에는 4-50명을 뽑고 시험을 봐서 다달이 인원을 줄여 최종 4명까지 줄이는데 마지막 즈음 4~10명 사이로 줄일 때 꼭 떨어진다. 그렇게 4, 5, 6학년까지 3년 동안 수학경시대회 준비반에 있었지만 대회를 나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것 때문인지 수학이 좋아하는 과목임에는 확실했다. 아주 잘하지는 못해도 그나마 잘하는 과목이니까. 중학교에 들어와도 뭐 성적은 항상 그럭저럭이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영어 100점을 맞았다는 게 내가 제일 공부를 잘했던 기억이다. 그 이후는 뭐 소소~ 한 성적이다. 그래도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는데 부족하지는 않았다.
수학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첫 번째 계기가 중학교 3학년 때 생긴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수학선생님이셨는데, 너무 멋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살짝 벗어진 젊은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위트 있는 말솜씨와 잔 개그, 그리고 교사다운 선생님이셨다. 아직도 존경하고 있고 대학생 이후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하다.
언제부턴가 장래희망이 교사가 되었다. 딱히 다른 이유가 없다. 남들 앞에서 잘난 척을 해도 허용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을 모아놓고 재밌는 이야기 해주는 게 정말 좋았다. 잘난 척을 해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꼭 들어줄 누군가가 있고 그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교사이기 때문에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대학교에 진학한 형이 나에게 질문했다.
"너 선생님 할 거야?"
"응."
"무슨 과목?"
"지구과학이나 윤리가 재미있는데. 이런 과목 어때?"
"야. 너 학교에 지구과학이랑 윤리 샘 몇 명이나 있어?"
"음... 한... 두 명씩 있지?"
"야. 국영수 중에 골라. 국영수 선생님 몇 명 있는지 잘 생각해보라고!"
"아..."
'국어... 책 읽기를 너무 싫어하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과목이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반항(?)으로 포기했던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지. 결국 그나마 수학이 낫네.'
이렇게 결국 나는 수학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고1 중간고사 수학 시험 점수는 38점이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점수 자체에 충격을 먹었다. 고등학교에 적응을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말고사도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30점대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냥 내 점수가 그랬다. 그래도 난 초등학교 때 '경시대회 준비반'에 있던 적이 있다. 근자감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학은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학 공부를 할 때,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감정이다. 나는 문제를 풀 수 있다. 지금은 못 풀었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풀 것이다. 뭐 이런 감정들이 문제에 부딪히게 하고 도전하게 한다. 힘들어도 포기할 수 없다. 왜? 난 할 수 있는 놈이니까.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너 소질이고 적성이고 모르겠으면, 수학선생님 해라. 나도 했는데 너라고 못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