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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음 Sep 08. 2023

고음이 온다

4. 소리 질러~

지난 6월부터 '고음이 온다'로 글을 쓰다 번번이 실패했다. 글 보관함에 네 가지 버전의 초안이 있고, 이 글은 다섯 번째 초안이다. 왜 이렇게 안 써질까 고민하다가 왜 이렇게 안 올라갈까 고민했던 날들을 이야기하려 한다.


(과거 순)

1. 내 글은 왜 다음 전형으로 안 올라갈까

언론사 입사 시험 중 필기 전형은 8부 능선으로 불린다. 문턱이 높다. 대학 졸업하고 1년 동안 평일 오전에는 신문을 정독하고, 오후에는 책 읽기 최소 1시간, 글 하나 완성, 어제 쓴 글 퇴고, 시사상식 외우기를 다 해야 집에 갔다. 밤에는 울면서 일기를 썼다. 이렇게 해도 번번이 떨어졌다. 언론인 지망생이 많이 듣는 사설 학원 수업도 듣고, 선배들이랑 스터디를 하면서 합격 글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좋은 글은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글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망생 기간을 딱 1년 채웠을 때 처음으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시험 주제는 ‘세대 갈등‘이었다. 나는 묵 장사를 하다가 막걸리 한 잔으로 기분을 내던 친할머니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바닐라 라떼로 기분을 내는 나를 나란히 썼다. 시험 보기 몇 주 전 몸살이 나 누워계신 할머니를 뵈러 갔다가 들은 얘기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진지도 제대로 못 잡수면서 막걸리 한 잔만 먹게 해달라고 하셨다. 아빠가 못 이기는 척 종이컵에 잣막걸리를 따라 드렸다. 할머니는 막걸리를 마시며 30년 전 겨울을 추억했다. 겨울에 거리에서 묵을 팔면 너무 춥고 배가 고픈데 대포 한 잔(큰 바가지에 막걸리를 따라 팔았다고 한다)을 사 먹으면 배도 부르고 몸에 열도 올라 끼니대신 자주 사 먹었다고, 그게 당신의 낙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 시절 막걸리가 주던 기운을 원했던 거였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대폿잔이 뭔지도 몰랐지만 그 맛은 알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시험 공부하다 마시는 바닐라 라떼의 맛. 노인의 경험과 나의 경험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한 계기였다. 요즘엔 술 마실 때 바가지 잘 안 써요, 이제 대포 파는 곳은 다 사라졌어요는 세대 갈등을 부르는 반응. 노인의 경험을 쉬이 삭제하고 요즘 시대에 올라타라고 강요하는 태도. 할머니도 고단할 때 마시던 최애 음료가 있구나, 그 기분 뭔지 알지는 세대 갈등을 줄이는 반응. 키오스크 앞에서 헤매는 노인을 볼 때 못하면 쓰질 말지는 세대 갈등형 반응. 키오스크 처음 할 때 나도 당황스러웠는데, 노인 분도 그렇겠다는 갈등 해결형 반응. 그러니까 우리 노인의 경험을 함부로 삭제하고 배제하지 말고 노인을 고려한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자, 우리는 모두 늙는다, 노인을 위하는 나라에 미래가 있다, 저 좀 뽑아주세요!! 이런 취지의 글이었다.


논리적인 비약도 있고 구성도 촘촘하지 않은 글이었는데, ‘이 지원자는 일상 경험을 사회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들었군’이 담긴 것 같다. 언론인의 기초체력을 기르고 있던 내 모습이 담긴 글이었다. 면접을 똥망해서 최종 탈락했지만, 글이란 무엇인지 배우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2. 내 소리는 왜 안 올라갈까

노래를 왜 배우려고 했더라. 연습해도 연습해도 고음이 도무지 안 나서 생각했다. 대학교 3학년 때 혼자 사는 백발노인이 된 나를 자주 상상했다. ‘내년에 졸업인데 어쩌지?’라는 고민에서 시작된 그림이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느지막한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떠나간 외로운 나날에, 밤 사이 죽지 않고 무사히 눈을 뜬 아침에, 나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면 30대쯤을 상상하는 게 더 도움이 됐을 테지만) 멀리간 상상 덕에 만든 예명이 글음이다. 1) 중학생 때부터 썼던 일기를 시간 순으로 읽으면 하루도 금방 가고 킥킥거리면서 재밌게 읽을 듯 2) 좋아하던/좋아하는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덜 외로울 듯. 결론) 글이랑 음악만 있으면 견디면서 살 수 있을 듯. 그렇게 남몰래 ‘글음’이라는 부캐를 만들어 음원 사이트 벅스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위로를 준 음악을 기록하는 용도였다. 나중에 늙으면 잘 생각이 안 날 테니까.


내 플레이리스트에 선정된 곡들은 주로 당시 겪고 있던 일상에 위로를 준 음악이었다. (나는 짝사랑과 우울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리스트에 잘 없는 곡을 발굴해 넣는 것도 나에게 중요했다. 침대나 벤치에 누워서 멀뚱멀뚱 천장이나 하늘을 보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뮤지션의 좋은 음악을 찾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였다.


버리는 경험은 없다더니, 벅스 메인 페이지에 내 플레이리스트가 소개됐다. 좋아요가 무려 100개! 늙은 나를 위해 만들다가 대중을 상대해야 하는 그 고통을 아는가. 다음 플레이리스트를 내놓기 꽤나 부담스러워졌다. 멀뚱멀뚱 음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거 플레이리스트 감인가? 머리를 굴리며 음악을 들었다. 이러다 평생 멍하니 음악을 듣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때 나의 전부였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를 그만두었다. 순수했다. 지금 돌아가면 예진아 벅스 메인 노출 그 정도 아니다라고 말해줘야지.


졸업하고 글공부를 하면서도 같은 불안을 겪었다. 이러다 시험용 글만 잘 쓰는 기계가 되는 거 아닌가 두려웠다. 벅스 플레이리스트 시절과 다른 점은 계속 글을 썼다는 거였다. 이 내용을 시험에 써먹을지 말지 생각하며 글을 읽는 시절을 지나, 언론계 중년의 취향을 저격할 글 스타일이 뭘까 꾸며내던 작문을 지나, 글 속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내 글에 나를 담는 시기가 왔다.


이번에 고음 위기를 겪을 때 벅스와 글이 떠올랐다. 그래, 벅스처럼 도망치지 말자. 글 공부할 때처럼 꾸준히 해보자.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우선 계속 소리를 내보자. 되뇌며 연습했다. 주 2회 정도 연습해서 실력이 더디 늘긴 했는데 나, 이제 고음 낸다~ 여전히 5번 중 2번은 음이탈이 나고 부들부들 떠는 고음이지만 올라가고 있다. 잘하고 싶은 일을 잘하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 새기는 과정이었다.


와, 초안 네 개를 합쳐서 썼더니 글이 너무 길다. 거의 ebookㅋㅋ (3번은 짧다.)


3. 조회수가 왜 이렇게 안 올라갈까

유튜브 채널에서 일하면서 매일 아침 통계를 본다. 11만 구독자 채널에서 동영상을 올리고 24시간 동안 조회수가 500회? 망했다. 9천 회? 망했다. 4~6만 회는 나와야 선방이다. 조회수가 안 나오면 영상이 재미없었구나, 허허. 하면서 다음 영상을 만든다. 상황이 어찌 되든 꾸준히 하면 된다는 걸 앞에서 배운 덕이다. 꾸준히 하면 발전 방향을 저절로 생각한다. 그래서 잘하는 일이 된다. 사람들이 무엇을 누구한테 듣고 싶을까, 어떤 각도로 봐야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까, 어떻게 편집해야 보는 재미를 더할까 조금 더 고민한다. 이번 편은 재밌다고 확신했던 영상의 조회수가 안 나오면 재미란 무엇인가부터 되짚는다. 조회수가 왜 안 오를까 고민하면 콘텐츠 제작 역량이 쌓인다. 앞으로는 지금 직장과 다른 환경에서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려 한다. 이번 달 말에 퇴사! 소리 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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