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살타
어제는 우유니 일출 투어 때문에 새벽 2시 반에 오늘은 볼리비아 국경도시에 가기 위에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이러다 아침형 아니, 새벽형 인간 되는 거 아냐? 갑자기 자기계발 책 마구 읽으며 노력, 성공, 최선, 인내 등의 단어를 내뱉으며! 졸린 눈을 비비며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나와 기차역으로 갔다. 그만 짖어대! 개들아! 어디서 늑대 코스프레야! 블리비아 국경도시인 '비아손'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버스와 기차인데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다들 비추천해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비포장 도로는 아마존에서 라파즈로 돌아올 때 충분히 경험했기에! 기차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거의 10시간 만에 비아손에 도착했다. 곧바로 숙소를 찾았다.
"네에?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요?"
치명적이었다. 우린 지금 땅바닥에서 자는 한이 있어도 와이파이가 있어야 했다.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으려면 인터넷에서 알아봐야 할 정보가 많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숙소도 가봤지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은 없었다. 이곳에서 느긋하게 1박 하면서 볼리비아와 작별 준비도 하고 아르헨티나 여행에 대해서 굵직굵직한 계획들을 세우려고 했는데... 아무튼, 여행은 계획대로 되는 꼴을 못 본다! 물론 그래서 우리가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이긴 하지만.
고심 끝에 계획을 변경했다. 이곳에서 1박 하는 대신 오늘 아르헨티나-살타까지 논스톱으로 가는 걸로. 인생 뭐 있어? 그냥 가는 거야 직진! 택시 타고 국경을 넘을까 하다가 튼튼한 두 다리를 믿고 걸었다. 드디어 국경 앞. 홀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심사 직원이 여권을 보며 '꼬레아?!' 하더니 잠시 후 도장을 쾅! 찍어줬다. 여권을 받고 다시 뙤약볕을 걷기 시작하는데 두 달 간의 볼리비아 여행이 눈 앞에서 휙휙 지나갔다.
PC방에서 아이폰 잠깐 충전했는데 전기세 내라고 했던 야박한 코파카바나 PC방 아저씨, 다른 곳보다 조금 비싸다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쿨하게 안 판다고 했던 라파즈 시장 아주머니, 하루하루 새로웠던 아마존 투어, 야마 고기와(그 귀여운 야마 맞다. 볼리비아에서는 챠르께깐이라 부른다) 삶은 소혀 음식을 먹고 임신한 사람처럼 연신 헛구역질했던 아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예수상이 있는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코차밤바, 화투를 가르치며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카우치서핑 호스트 알레한드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한글 쓰기, 황홀했던 우유니까지. 남들은 한 달 비자도 길다고 했는데 우린 돈까지 추가로 내가며 비자를 연장했었다.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춥고 더웠지만 결국 기억 속에 남는 것은 무뚝뚝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속정 깊고 수줍음 많은 볼리비아 '사람들'이었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있겠지?
15분 남짓 걷자 터미널이 보였다. 그곳에는 살타, 멘도사,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버스들이 있었다. 삐끼들은 살타행 표를 사라고 파리처럼 딱 붙어 유혹했지만 새벽 2시부터 지금까지 주스와 물 한잔 먹은 것이 전부인 우린, 배가 몹시 고팠다.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켰다. 빵이 먼저 나왔다. 무심코 잡고 뜯은 빵. 헉! 빵이. 빵이. 종이처럼 부스러지지 않고 식감이 있는 게 쫄깃하다. 잊고 있던 빵의 질감이다. 아련했던 빵의 고소함이다! 잠시 후 닭다리 한 개가 중앙에 떡하니 올라간 스파게티가 나왔다. 후루룩! 맛있다. 면도 맛있지만 닭다리가 더 맛있다! 특유의 닭 냄새도 없고 고기가 부들부들한 게 우리나라 백숙이 생각난다. 아르헨티나 국경에만 왔을 뿐인데 볼리비아와 먹거리가 천지 차이다. 예감이 좋다.
빵빵하게 부른 배를 툭툭 치며 표를 사러 갔다. 아쉽게도 살타까지 가는 직행은 없었다. 5시간 반 만에 후후이에 도착해 살타행 버스 앞에서 두 번째 표를 내밀자 직원은 표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보더니 이 표는 내일 새벽 1시 20분에 출발하는 표라고 했다.
아~~ 망했다. 갑자기 피로가 밀려왔지만 멍하니 저리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실에 가서 표를 바꿔달라고 때를 써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현지인도 같은 처지였는지 우리를 측은하게 쳐다봤다. 어제는 우유니에서 일출 투어 하느라 새벽 2시 반에 일어났고, 오늘은 볼리비아 국경도시 가느라 새벽 2시에 일어났는데 몇 시간 남지 않은 내일도 날 새게 생겼구나! 아침형 인간 되는 거! 여행할 때는 이렇게 쉬운 거였다.
버스는 10분 늦은 새벽 1시 반에 도착했다. 비몽사몽간에 차에 올라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는데 살타였다. 2시간도 안 걸리는 이곳을 오려고 3시간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괜히 억울했지만 화낼 힘도 없었다. 터미널 안은 이미 자는 사람들도 만실. 대충 졸다가 일어나 보니 붉은 해가 떠 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삐걱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배낭을 메고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그러던 중에 한 낯선 남자가 슬며시 접근하더니 사진을 보여줬다. 아이! 깜짝이야! 삐끼였어? 그런데 왜 이렇게 세련되게 설명해. 집 파는 사람인 줄 알았잖아. 택시비 요금 지불, 1인당 80페소(5600원), 곧바로 체크인 가능, 체크인 후 조식 가능.
하하. 너 혹시? 독 심술하니? 어떻게 우리 마음을 이리도 잘 알아? 좌판 깔아도 되겠다. 그런데 택시비 지불이라니? 볼리비아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제안인걸? 물론 택시 타봤자 한국돈으로 2~3천 원 하는 수준이지만 이런 옵션을 제공한다고 하니 참 기분 좋네. 사실 택시비 제공보다 더 끌렸던 것은 1인당 도미토리 숙박요금이 80페소밖에 안 한다는 점이었다. 설마 아르헨티나 첫날부터 곰팡이 방에 들어가는 건가? 아. 맞다. 와이파이는? 삐끼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는 셈 치고 일단 가자!
호스텔에 도착하니 정말로 직원이 대신 택시비를 지불해줬다. 너무나 싼 가격 때문에 곰팡이 방을 연상했는데 깔끔하고 세련된 게 한마디로 끝내줬다. 이게 1인당 80페소라고? 아침 제공까지? 대박이다! 체크인하고 진한 커피에 빵을 씹으며 꿈인가 잠시 동안 생각했다. 다행히 꿈은 아니었다. 새벽 2시 기상. 기차로 10시간 만에 볼리비아 국경 도착. 걸어서 볼리비아-아르헨티나 국경 통과.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5시간 반 동안 버스 타고 후후이 도착. 터미널에서 3시간 기다림. 다시 버스 타고 살타 도착. 터미널 노숙.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호텔 부럽지 않은 2층 도미토리 침대. 이틀 같았던 하루. 아르헨티나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