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유니
포토시에서 4시간 만에 우유니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을씨년스럽다. 비수기 때라 그런가? 거리로 불어오는 먼지바람이 이곳이 사막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몇 군데 숙소를 헤매다 들어간 곳은 개미 발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했다. 체크인하고 방문을 열자 곰팡이 냄새가 가장 먼저 반겼다. 와이파이에 접속하기 위해 직원에게 패스워드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스페인어로 또박또박 물어봤는데 처음과 답변은 같았다. 싫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그래서 그런가? 신선하다. 물음표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직원을 쳐다보고 있자 직원은 아이폰을 달라고 하더니 빠른 속도로 와이파이 패스워드를 입력한 후 다시 돌려줬다. 그런 거였구나! 인터넷이 느려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패스워드를 일일이 입력해주는 거구나! 저 사막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직원도 좀 힘들겠는걸.
사막에서 사진 찍고 일몰 보고 돌아오는, 일명 '데이투어'를 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로컬 식당에서 김치볶음밥과 한국 컵라면을 팔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격을 봤는데 각각 우리나라 돈으로 8000원, 7000원. 볼리비아 물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지만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겠지?라고 중얼거리며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 날씨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매우 좋았다. 하늘은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새파랬고 공기는 건조기에서 방금 나온 것처럼 가볍고 달달했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여행사로 달려가 데이투어를 신청했다. 투어 인원은 총 7명 중에 한국인은 우리뿐. 어떤 모습일까? 과연! 역시! 최고! 를 남발하게 되는 곳일까? 아니면 우기 때 왔어야 했는데... 라며 애써 실망스러운 감정을 감추며 투어를 마치게 될까? 지금은 저 가이드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뭐, 사막을 제대로 보여주고 밥만 잘 준다면 난, 괜찮다.
차가 끝없는 사막을 달리 때 내 생각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우유니 사막은 물이 없어도 경이로웠다. 사막 표면은 거북이 등껍질을 닮아있었고 지평선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래전 이곳이 모두 바다였다니! 햇빛에 빛나는 저 하얀 것들이 모두 소금이라니!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상상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 앞에 난 고작 '언빌리버블'만 간신히 내뱉은 하루살이 같은 인간 일 뿐이었다.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거북이 등껍질을 보며 생각에 빠져있는데 가이드가 자그마한 장난감들을 가지고 내렸다. 오호라! 여기서 그 유명한 윈근감 사진을 찍을 모양이군. 몇 장 찍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웨딩촬영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린 점프하고 또 점프하고 손잡고 춤추고 눕고 만세 하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처음엔 뭘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포즈를 취했는데 찍다 보니 입가에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고 나중에는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최선을 다해 포즈를 취했다
길쭉길쭉한 선인장들이 있는 물고기 섬 앞에서 우린 입장 대신 사막을 바라보는 것을 택했다. 강렬한 햇볕을 피해 정자에 앉아 있는데 '포토시'에서 여행 온 볼리비아 초등학생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무슨 꿍꿍이지? 볼리비아 아이 들치고는 질문이 너무 많은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축구해요. 축구!"
"뭐라고?"
"축구요. 축구!"
황당해서 두 눈을 껌벅거리며 아이들을 봤는데 그들은 진심이었다. 한라산, 지리산 1900미터. 백두산 2700 미터. 우유니 소금사막 고도는 무려 3700미터. 소금사막에 비하면 다들 난쟁이들이다. 그런데 이 꼬마들은 이곳에서 빠르게 공을 따라가면서 골대를 향해 골을 넣는 축구를 하자고 한다.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피할 수 없어 그 어렵게 보이는 '축구'를 했다. 예상대로 몇 분만에 '심장'은 과부하를 일으키며 온몸에 경고를 보냈고 나중에는 심장이 귀에 대고 분 단위로 쌍욕 하는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 이 꼬마들! 심장이 2개, 아니 4개라도 되는 건가? 정말 잘 뛰네. 아! 맞다. 포토시에 왔다고 했었지. 그 도시의 고도는 4000미터였고. 축구가 끝날 때쯤 물고기 섬에 들어갔던 사람들이 차로 돌아왔다. 아이들과 작별을 하고 일몰을 보러 떠났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표면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하늘 위에 유유히 떠 있는 구름도, 아무 말 없이 일몰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도 서서히 붉게 물들어갔다. 자연 앞에 한 없이 겸손해지는 하루다.
다음날 새벽 2시 반. 평소 같으면 꿈나라에 있을 시간에 턱이 빠져라 하품을 하며 터벅터벅 여행사로 걸어갔다. 그나저나 한중일 사람들 대단하다. 아무리 우유니에서 별 보고 일출 보는 게 좋다지만 이 새벽에 투어를 하다니! 그러고 여행사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투어를 만들다니!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아닐걸?) 장갑에 핫팩까지 준비해서 그런지 생각만큼 춥지 않았다. 잠시 후 자신을 '조니'라고 소개한 가이드의 차를 탔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자신을 '조니'라고 소개한 건가? 조니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사진 잘 찍는 가이드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우유니 사진'하면 '조니'가 떠오르는 것은 '밥', '김치'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얼굴이다. 봉고차에 탄 사람들 중에 조니 얼굴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뭐 조니면 어떻고 조커면 어떠하리! 별 보고 일출 보면 충분하다. 어서 별 보러 가자!
물이 자작하게 깔린 사막 한가운데 차가 섰다. 조니가 나눠 준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봤는데... 와아! 온통 별천지네! 머리 위에도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지평선 끝에도 별이 쏟아질 듯 많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별들을 사진이 아닌 두 눈으로 본 적이 있던가? 저기! 별똥별이다. 저기도!
황홀하다.
아름답다.
장엄하다.
신비롭다.
어마어마하다.
지구 밖에서 별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글로는 설명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 지구는 하나의 별일뿐일 텐데 우린 이 별도 아직 다 보지 못했다. 이 작은 지구를. 일출이 시작되자 봉고차에 말없이 앉아있던 조니가 말년 병장처럼 슬금슬금 나오더니 우리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뭐지? 기대 1% 안 했는데 사진 기가 막히네. 당신 설마 진짜 조니인 거니?
가슴 뜨거운 일출을 보고 여행사로 돌아와 정산을 하기 위해 책상 위에 돈을 올려놨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약 2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었다. 사무실 안에 6명이 눈이 시퍼렇게 떠 있었는데 돈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것도 마술처럼! 30분 넘게 조니와 여행자 5명이 각자의 주장을 반복했다. 결국 조니가 반, 우리가 반을 부담한 후 여행사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나 기억의 필름을 되돌려봤지만 돈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바닥을 청소하고 있던 직원이었을까? 아니면 조니? 그것도 아니면 우리 중에 한 명? 우유니 일출 투어는 다큐와 예능으로 시작해 스릴러로 끝났다.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