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바아, 라파즈
당신의 이름을 써달라! 그럼 우리가 이름으로 써주겠다!
한적한 광장에서 좌판을 깔고 현지인을 기다리는 모습을 한국 떠나기 전에 상상이라도 했을까? 페루에서 국경을 넘어 코파카바나 섬에서 여자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서로 오랜 친구였고, 아내보다 한 살 많았다. 그들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A는 20대 중반에 노점상을 했을 정도로 야무진 사람이었다. 그러다 툭 튀어나온 '한글 쓰기'. 그들도 우리처럼 볼리비아에 오기 전, 페루를 여행했는데 특이하게도 페루 수도인 리마에서 현지인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는 일(?)을 했다. 작업은 간단했다. 좌판을 깐다.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그러다 관심을 보이는 현지인을 보면 뜨겁게 쳐다본다. 이때 그들이 쭈뼛거리며 오면 50% 성공. 빈 공책에 스페인 이름을 써달라고 요청한다. 공책에 쓰인 스페인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정성스럽게 쓴다. 다 쓴 A4용지를 돌돌 만다. 준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350원 정도를 받고 고맙다고 인사한다.
처음에 이런 일을 했다고 들으면 에이! 말도 안 돼! 무슨 한국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에콰도르 키토에서 2개월간 스페언어 배우면서 이게 가능하다고 확신한 날이 있었다.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위해 학원 밖으로 나갔다. 마침 길가에 현지인이 숯불에 구운 1달러짜리 똥집을 팔고 있었다. 날마다 오는 아저씨가 아니었기에 서둘러 샀다. 껌처럼 똥집을 씹으며 아내와 함께 시내를 걷다 보니 우연히 각종 액세서리를 파는 히피 거리에 들어섰다. 히피들은 자신들이 만든 팔찌와 그림 따위를 소박하게 길가에 펼쳐놓았는데 우리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좌판 하나가 보였다. 그는 동양인이었고 깡 말랐고 얼굴이 길쭉한 것이 까무잡잡했으며 어깨까지 오는 드래드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눈에 봐도 일본인이었다. 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붓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는데 설마 했는데 맞았다. 그는 바닥에 흰 종이를 깔고 일본어를 쓰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해외에서는 돈 버는 '영어'를 해야 살 수 있다고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었다. 그런데 저 일본 히피는 일본어를 정성스럽게 쓴 종이를 거금 2달러에 팔고 있다. 키토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한 끼가 2달러가 안되는데 말이다.
우리는 번개를 맞은 사람처럼 전율했다. 저게 가능해? 정말 저게 가능한 거야? 그렇다면...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한국어는 네이티브잖아! 우하하.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으며 술을 먹으며 각자만의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저거 해볼까? 그래 해보자! 일본 히피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지! 그러나 생각과 달리 여행 초기라 그만한 베짱이 없었다. 결국 우린 스페인어를 잘하지 못하면 좌판을 할 수 없을 거야!라는 핑계에 몸을 숨기고 기억 저편에 그 불씨를 던져버렸다.
그런데 고(故)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것처럼 과거 경험 또는 사건이 미래와 연결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에콰도르에서 기억 저편에 던진 불씨가 다 꺼질 때쯤 우린 페루에서 한글 쓰기를 했던 두 여자를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서 한번, 호스텔이 수십 개인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 다시 한번 만났다. 그 인연은 꺼져가는 불씨에 불을 지폈고 그들을 만난 첫날밤 '한글 쓰기'하러 광장에 나갔다. 광장 중앙에서는 일본 히피 커플이 불쑈를 하고 있었고 퇴근시간이라 길가는 복잡하고 북적거렸다. 그들이 횡당보도 옆에 자리를 펴자 현지인들이 뭐지? 하는 표정을 하고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A는 글을 쓰고 B는 A4용지를 말았고 아내는 돈을 받았고 난 스페인어로 "당신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써달라! 그럼 우리가 한글 이름을 써주겠다고!" 길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얼마나 시간을 지났을까? 현지들은 한글 쓰는 모습을 보고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화악! 몰렸다. 호스텔에서 나가기 전 A가 잘될 것 같다고 했던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바빠졌다. A는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B와 아내는 공책에 스페인 이름을 받고 돈을 계산하고 난 끊임없이 스페인어로 재잘거렸다.
에콰도르에서 2개월간 배운 스페인어가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이야! 오늘처럼 신나고 재밌게 스페인어를 한 적은 처음이다.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스페인 이름이 한국어로 쓰인 종이를 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자 볼리비아 사람들을 성급하게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야박하지 않았고 친절했으며 수줍어했다.
한참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경찰 세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들은 철수해달라고 했다. 혹시라도 군중이 모였을 때 범죄가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해주면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가슴이 벅차오르고 내일이 기다려졌다.
총 이틀간 그녀들과 한글 쓰기를 했다. 그사이 20대 청년 세 명이 합류했고 경찰에 쫓기기도 했지만 무사히 한글 쓰기를 마쳤다. 그들과 헤어지지 전날 밤 그 날 번 돈으로 호스텔에서 라면을 끓여먹는데 그냥 다 고마웠다.한글 쓰기로 이어진 인연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그리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라면 국물까지. 모두 다! 고마웠다. 이후 우린 아마존 투어를 하러 그들과 작별했고 며칠 후 나와 아내 둘이서 좌판을 깔고 한글 쓰기를 기다리고 있다.
광장의 큰 축제 때문인지 사람들은 금세 몰렸다. 아내는 글을 쓰고 난 입을 풀었다. 중국어 아니냐? 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상철입니다."를 한국어로 한번 중국어로 한 번씩 말하며 차이점을 설명해줬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쪽으로는 내 말에 귀 기울이면서 두 눈으로는 아내가 쓰는 한글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수지가 짱이라며 수지 얼굴이 들어가 있는 열쇠고리를 보여주는 사람, 모든 가족의 이름을 써달라는 사람, 남자 친구 이름과 함께 '사랑해요'를 써달라는 사람,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 사람, 그 와중에 한국과 북한의 역사를 물어보는 사람까지. 한글 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볼리비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이렇게 많은 관심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을까?
이후 볼리비아를 두 달간 여행하면서 시간이 날 때면 좌판을 깔고 여러 도시에서 '한글 쓰기'를 했다. 덕분에 방탄소년단 열혈 소녀팬들에게 한글 이름을 써줬고, 볼리비아 각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다녔고, 구걸하는 사람들로 오인받아 어린 꼬마에게 푼돈을 받은 적도 있었고, 식사초대를 받았고, 심지어 방송 출연도 했다. 숙박비와 식비를 번 것은 덤! 지금은 볼리비아를 떠났지만 A4용지와 매직펜을 보면 종종 '한글 쓰기'가 생각난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다. 당신의 이름을 써달라! 그럼 우리가 한글 이름으로 써주겠다! 는 그 기분 좋은 외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