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라파즈
14시간 만에 라파즈에 도착했다. 무릎은 한동안 기름칠하지 않은 로봇다리처럼 삐걱거렸고, 쪼리를 신고 있는 발이 시렸다. 할아버지처럼 어기적거리며 버스에 내려 끄응~ 하며 힘겹게 배낭을 메고 하늘을 봤는데 강렬한 햇빛이 포크처럼 두 눈을 쿡쿡 찔렀다. 10년 만에 교도소를 출감하면 이런 기분 일까?
볼리비아에서 아마존 투어를 하게 된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한 맺힌 듯 하루에 4시간씩 스페인어를 배울 때 아마존 투어를 알게 됐다. 브라질 아마존 투어, 에콰도르 아마존 투어, 볼리비아 아마존 투어까지. 남미에 오기 전에는 브라질 아마존 투어만 생각했는데 아마존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브라질 투어는 비싸서 패스, 에콰도르 아마존 투어는 무언가 확 끌리지 않아서 패스. 그렇게 아마존 투어를 폭탄 돌리기 하듯 패스! 패스! 하고 있는 중에 볼리아바 아마존 투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다는 말을 들었다. 우린 이미 갔다 온 여행자들의 아마존 투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속에 '저장' 버튼을 눌렀다. 볼리비아에 가면 꼭 아마존 투어를 하기로 결심하며.
아마존 투어를 하기 위해 아마존 마을 근처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버스, 다른 하나는 비행기다. 우린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갈 때는 비행기,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실 경비를 제대로! 아끼기 위해서는 왕복 모두 버스로 타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미 갔다 온 여행자가 웬만하면 버스 타고 가지 말라고 특히 마을로 들어갈 때는 더더욱 타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저도 뭐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버스를 타자마자 누군가 버스 안에서 무릎 끓고 기도하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그것도 진지하게. 전 처음에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몇 시간 버스를 타보고 나니 알겠더군요. 버스가 아마존 마을로 들어가는 내내 절벽에 딱 붙어 가더라고요. 죽기 직전까지. 나중에 유튜브를 찾아보니 그 절벽에서 버스가 떨어지는 것을 봤어요. 가는 내내 수 차례 기도했다니까요.
그 여행자 말로는 아마존 마을로 들어갈 때는 버스가 절벽에 붙어가니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는 길 안쪽으로 붙어 가니 버스를 타라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었고 교통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해서 그 여행자의 충고대로 갈 때는 비행기, 돌아올 때는 버스를 타기로 하고 아마존에 갔다. 아마존 투어는 매시간이 즐겁고 신선했다. 머드팩을 하고 태양을 향해 입을 쫘악 벌리고 있는 악어들, 일렬종대로 줄을 서서 광합성을 하고 있는 거북이들, 음식을 먹기 위해 보트 안으로 들어오는 원숭이들, 어둠이 깔리면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들과 수많은 별들, 홍시보다 더 빨갛던 석양, 줄낚시로 잡아 튀겨먹은 피라냐까지. 시간에 색깔이 있다면 투어 기간은 아마도 무지개 색이었을 것이다. 라파즈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직전까지는.
탈만했어요.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자고 나니 라파즈에 와 있더라고요.
기존 여행자들의 말을 믿고 탈 말한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버스가 비행기보다 훨씬 쌌기에. 그런데 아니었다. 우당탕!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난 줄곳 고통과 고문에 대해서 생각했다. 버스는 쉬지 않고 온몸을 때렸고 비정기적으로 철로 만들어진 앞 의자에 내 양 무릎을 무참히 짓이겼다. 처음으로 다리가 긴 것을 후회했다. 올 때처럼 비행기를 타고 왔어야 했나? 돈 좀 아껴보겠다고 로컬버스를 탄 것뿐인데 새벽까지 줄기차게 비포장 도로를 달릴 줄은 몰랐다. 그리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도시로 수학여행을 가는 중학생들과 버스를 같이 탈 줄은 더더욱 물랐다. 중학생들이 뿜어내는 열기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와 많이 닮아있었다. 정신없었고 덜컹거렸으며 결정적으로 시끄러웠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절벽 반대편으로 버스가 달려 절벽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살짝이라도 기뻐해야 하는데 우리 얼굴은 새벽어둠보다 어두웠다. 버스 탄지 9시간 만에 버스는 바퀴에 버터를 발라놓은 것처럼 도로에 딱 붙어 미끄러져 나갔다. 귀에는 우당탕, 덜컹거리는 소리 대신 큰 방귀소리 같은 부웅~ 하는 경쾌한 버스 엔진 소리가 들렸다. 끝났구나! 9시간 만에 비포장 도로가 끝났구나! 이제 딱딱한 철 의자에 앉아 잠을 청할 수 있겠구나! 이제 앞자리에 무릎을 짓이기듯 비비지 않아도 되겠구나! 행복했고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우와 싸우며 울부짖던 내 모습은 어느덧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클래식을 들으며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침대를 보자 비로소 모든 긴장이 풀렸다. 아마존 투어는 인상적이었고 14시간의 로컬버스는 고문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다. 누군가 아마존 투어 할 때 버스 탈만해요?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힘들었어요. 전 다시 타고 싶지 않아요. 웬만하면 비행기 타고 가세요!라고 말할까? 아니면 탈만해요. 버스가 거기서 거기죠!라고 말하며 입가에 회심에 미소를 지을까? 닥쳐 보면 알겠지. 내가 어떤 사람이란 것을. 무심코 본 손톱에 까맣고 두껍게 때가 끼어 있었다. 버스 타기 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때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이란 말인가? 설마? 내 몸에서? 오랜만에 더렵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살짝살짝 전기가 감전되는, 그래서 샤워가 살짝 두려운 샤워꼭지를 잡고 돌렸다. 잠시 후 기다렸던 뜨거운 물이 세지 않은 수압으로 나오며 내 발가락을 젹셨다. 난 눈을 감고 그 물을 맞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서서히 재부팅을 시작했다. 흐리멍덩한 눈빛에 생기가 돌고 뱃속에 늑대들이 EXO처럼 으르렁거렸다. 긴 하루였고 아득한 하루였다. 오늘은 한인마트에서 비싸게 산 너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