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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세부부 Oct 23. 2021

무슨 고민 있어요?

무슨 고민 있어요?

아뇨.

그런데 얼굴이 평소보다 어두운데요.

그게…그러니까…


우리 팀에는 입사 4개월 된 c인턴이 있다.

대학 졸업반이고 그녀의 부모님은 나보다 3살이 많다.

그렇다. 30살 아니고 3살이다.

혹시 누군가 나에게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다고 말하는 수밖에...


c는 착하다. 그리고 모범생이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회사 인턴 생활 이외에 뜻 맞는 사람들과 그룹을 만들어 앱을 개발하고 있다.

그것도 3개 프로젝트나!

당연히 주말에도 노트북을 켜고 개발 회의에 참여하고 개발을 한다.


2개 프로젝트는 재미있어요. 문제는 1개 프로젝트(p 프로젝트)인데요.

이 프로젝트는 재밌기는커녕 매주 미팅 날짜가 가까워질 때마다 기분이 다운돼요.

왜요?

개발에 사용되는 기술이 제가 처음 해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주말에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예요.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에 기여도가 점점 낮아지고 

미팅은 피하고 싶고 미팅 날짜가 가까워지면 우울해져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죠.

같이 프로젝트하는 친구들에게는 이야기해 봤어요? 

친구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은 p 프로젝트에서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7년 차 개발자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는 게 부럽다고.

조금만 참으며 힘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때 그러면 네가 해보라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그 친구들은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렇게 힘들면 p 프로젝트에서 나오세요.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오면 되잖아요. 

이럴 때는 도망치는 게 오히려 좋아요.

그러고 싶긴 한지만 처음에 제가 하고 싶어서 프로젝트에 들어갔고

프로젝트 초기 때부터 7년 차 개발자 k가 매우 잘해줬기 때문에 

차마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c인턴 나이에 그만하겠다고 말하는 게 힘든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이렇게 프로젝트에 질질 끌려다니면 나중에는 p 프로젝트 구성원들과 악연을 만들 수도 있어요.

특히 본인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잘해준 k와는 더더욱이요.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k가 잘해준 것이 고맙긴 하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아무리 미안해도 자신을 감정과 인생을 매주 낭비하면서까지 프로젝트를 유지하는 것은 오버죠.

그거 정말 큰 인생 과소비예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일을 그만두는 일도 그와 비슷한 크기의 용기가 필요해요.

c는 지금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고요.

네에.


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네에~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을.

거절을 못 하는 성격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c가

대기업 7년 차 개발자인 k에게 그만둔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신입사원이 과장 말년 차에게 이 프로젝트는 재미없어서 빠지겠다고 말하는 것이며

노오란 병아리가 어른 수탉에게 재미없다고 덤비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c는 프로젝트 구성원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했을 때 

그들에게 비난받을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실 c는 이 부분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착하니까, 모범생이었으니까,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니까!


이렇게 생각해 봐요.

3개 프로젝트 다하지 않아도

우리가 회사에서 최근에 열심히 집중해서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회사 밖에서 보면

그리고 몇 년 후에 돌이켜보면 대부분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거 아니라는 거예요.

맞아요. c말대로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하면서 끝까지 갈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본인 감정과 소중한 인생은 

프로젝트 구성원들의 시선과 욕망에 부단히 부흥하기 위해

프로젝트 끝날 때까지 질질 끌려다녀야 할 겁니다.

c가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중간에 빠지면서 구성원들에게 '비난'받지 않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어요.

물론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저를 팔면 되죠.

우리 팀장에게 최근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서 깨졌다고.

하지만 본질은 이게 아니잖아요.

본인은 프로젝트를 나오고 싶고 그런데 구성원들의 비난은 두렵고.

이런 걸 저는 거대한 욕심이라고 해요. 거대한 욕심!

남들의 시선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 가요.


이건 선택의 문제예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선택할지

남들의 시선 또는 기대에 부흥하는 가짜 나를 선택할지

그런데 선택은 어려울 거예요. 

저도 20대에는 거절하는 것이 어려웠거든요.

그때는 지금보다 더, 더, 더! 동방 예의지국이었고 

뼛속까지 유교사상이 각인되어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난 여기까지만 하고 말을 마쳤다.

결국 선택은 내가 아니라 c인턴이 하는 것이기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감정에 작년보다, 어제보다 솔직해진다는 것임을 c인턴을 통해 깨닫는다.

환갑을 넘은, 칠순을 넘은 어르신들은 보통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남들 시선 의식해 봤자 자신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들 시선은 개나 줘버리고 그것들 신경 쓸 시간에

나를 위해 뭐라도 하자!

그게 싫으면... 뭐, 별수 있나? 

계속 남들 시선 신경 쓰면서 내 감정, 내 인생의 악취를 감내하며 사는 수밖에~

해답은 이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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