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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몬드 Mar 08. 2022

[ep2] 그들의 안정적인 무능에 대하여

비정규직 욕받이 자리

나는 비정규직이었다. 입사 서류를 접수하면서 '기한의 정함이 있는 근로자'라는 글귀가 마음에 걸렸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평생 직장은 없다. 일정 경력을 쌓아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비정규직의 경우 계약이 종료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보통 2-3년의 텀으로 이직해 연봉을 올려온 나로썬,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고 휴식기를 가진  금전적 지원까지 받으면서 이직하는 플랜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정규직의 전환 가능성 역시 버리기 아까운 카드였다.


입사 첫날, 업무 인계를 받기 위해 전임자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선하고 차분한 인상의 그녀가 자신의 옆자리에 나를 앉히고 메뉴를 하나씩 클릭하며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아마 정신 없을 거에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거고. 저도 사실 이 업무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몰라요. 아는 만큼만 알려드리고 갈게요."


그녀가 설명해주는 업무들(정확하게는 그녀가 '아는' 업무 방식)을 두어시간 들었을 뿐인데, 듣자마자 왜 이토록 비효율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샘솟았다. 달리 말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따라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각 부서의 불만들을 그때그때 눈가리고 아웅하는 방법을 인계 받는 중이었다.


"근데.. 얼마 되지 않으셨는데 왜 그만두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준 전임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커피타임을 제안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그렇잖아요. 5시반 칼퇴에.. 직책상 업무 책임감이나 부담도 크지 않을텐데.. 다른 이유라도 있으세요?"

그녀가 잠시 생각지 못한 내 질문에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사실 제가 작년에 결혼을 했거든요. 저희 부부가 둘다 애를 너무 좋아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애가 안생기네요. 병원에서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렇다더라구요."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커요?"

"...네. 이런 말 조심스럽지만.. 중간에서 여기저기 욕 먹는 일이거든요. 온 데서 난리가 나요.. 내 잘못도 아닌데."


다섯시반 칼퇴, 방학기간에는 3시 퇴근. 교육기관은 그래도 일반 사기업보다는 책임과 업무 강도가 덜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나?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래. 이 사람은 예민하고 소심한 타입인가보다. 별일 아닌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연약한 영혼인가봐. 편한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는 정확히 6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기도 쉽지 않을텐데. 스트레스를 받아 병원에도 다닌다고 했다. 병원에선 불안해서 애가 안 생기는 것 같다고 일을 그만둘 것을 권했다고 한다.


중간에서 욕 먹는 일.


잘해도 잘못해도 욕 먹는 일. 출근하기 전부터 그 말이 가시처럼 걸렸다. 그녀의 체념한 듯 핏기 없는 얼굴이 몇 번이나 떠올랐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처럼 멘탈이 강한 사람은 끄덕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려구. 퇴근하는 즉시 일과 이별해 본연의 나로 돌아와 저녁과 주말에는 취미를 즐기며 살테다. 그러니 나는 걱정없다. 그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첫 출근 날,  자리에 앉은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그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 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직장생활하며 그렇게 많은 전화를 한꺼번에 받은 건 처음이었다. 여기가 상담 안내 콜센터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계속해서 무언가 안되니 해결해달라는 나를 향한 전화벨소리가 계속해서 소란스레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가이드가 없었다. 요청은 각각, 처리해야하는 방식도 제 각각이다. 사수도 없고 인계받은 내용이 없어 막막해하다가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이러한 건으로 이 부서에서 요청을 받았는데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그저 맹하게 사람 좋은 얼굴로 싱긋 미소를 짓는 팀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어 글쎼요. 나도 잘 모르는데 허허허 나도 온지 얼마 안되어가지고 아무것도 몰라. 허허허 어떻게 할까. 하몬드 션생님은 어떻게 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를 손으로 움켜잡을 뻔 했다. 입을 열때마다 지독한 구취를 풍기는 팀장은 한달 전 다른 부서에서 전근을 왔다고 했다. 말끝마다 '나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도 하선생이랑 똑같이 신입이야 허허허' 그 말은 정말이었다. 전 부서에서 재무 관련 일을 해 홍보 관련 일은 하나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는 앞으로도 나는 모를거야 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출근해 그가 하는 일은 인터넷 서핑, 지인들 안부묻기가 전부였다. 타자소리만 울리는 사무실에서 안하무인격의 그의 당당한 통화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수준이었다.


"어어 진식이냐? 하하하 오랜만이다. 우리 쏘주 한잔해야지 어어 거기 아직 그 음식점 있을려나? 그래 오늘? 그래야지 오랜만에 목소리 들으니까 좋녜 허허허"

그토록 당당하고 멋지게 사적인 통화 내용을 사무실 직원 모두와 공유하는 그의 솔직함에 질려버렸다. 처음엔 그럴수도 있지. 급한 건인 가보다. 밖에 나가 통화할 겨를이 없었나보다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백짓장 같은 천진난만한 솔직함은 매일 매 시간 지속됐다.

"아 핸드폰 좀 바꿀려고 하는데요. 아 네네 그게 얼마죠? 아하 그렇습니까 그걸로 하는게 좋겠녜요."

"어머니 제가 그 부동산 말씀드렸잖아요. 거기 납부해야하는게 20만원인데 그거는 구청에서 공사를 하기 때문에.."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그의 오늘 저녁 소주 번개, 일주일 뒤 가족모임 장소, 핸드폰 교체, 지방에 계시는 어머니의 고충, 그의 어머니 집 옆에 난 도로 공사 허가 상황까지 알게 됐다. 그의 후안무치에 혀를 내둘렀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무능과 무책임. 그는 늘 자리에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친구를 만나러, 병원에 온 지인을 만나러, 약속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다. 알아서 하라고 했다. 담당자인 실무자들이 제일 잘 알테니 알아서들 처리하라..


이 교육기관의 70프로 이상은 비정규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팀장급 책임자를 정규직으로, 나머지 팀원들은 기간의 정함이 있는 비정규직으로 직원 및 조교들을 고용해 작금의 취업난을 이용해 싼 값으로 인력을 조달해 수십년을 연명해왔다. 기관 특성상 2년 마다 팀장의 직무는 로테이션 되고 팀원들은 또 새로운 인력으로 교체될 것이기에 업무에 연속성이 없는 것은 물론 모두들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

팀장은 내가 입사한 첫날 부터 이미 나는 떠날 사람이라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허허실실 웃으며 대강 자리 보전하다보면 새로운 팀으로 발령이 날테니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알아서들 해요 난 잘 모르니까. 허허."

왜 모르세요? 이 말이 목구멍 앞까지 넘어왔다. 모르고 싶은 거겠지. 일하기 싫은 거겠지.

전자결재가 꾸역꾸역 차다못해 급건으로 타부서에서 요청이 올때면 그는 일괄결재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것이었다.

내용이 무엇인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천진하게 웃어버리고 자리를 비우면 그만이었다.


중간에서 욕 먹는 일.


내가 앉은 자리는 바로 십수년간 그러한 정규직 상급자의 자리보전을 위해 각 부서에서 조달되는 불만을 대신 수용하는 욕받이 자리였던 것이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을 골치아픈 프로젝트는 20년을 두고 2년마다 비정규직 담당자를 새로 채용한 뒤 눈가림용으로 업체 재선정을 이어오는 방식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정규직 팀장과 보직을 맡은 임원급 인사들의 밥줄을 책임졌다. 그간 예산 부족으로 싼 값에 체결했던 계약은 미이행되고 업체는 도산했다. 노조의 태동과 엮인 정치적 인사발탁 이후 홈페이지 문제는 늘 정치공약 남발하듯 입방아에 오르는 이슈였다. 기관은 해결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만듦으로써 이목을 돌리는 식으로 책임을 면했다. 각 부서와 학과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얽힐대로 얽힌 갈등과 불만, 사내 정치의 폭발점 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잘 몰라도 비정규직이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자리. 이제 입사해 잘 모르는다고 하면 일단 면피할 수 있는 자리. 그런 자리이니 프로젝트 운영에 대한 권한이 있을 리 없었다. 의사결정은 모두 팀장과 임원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난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모든 것은 (비정규직이지만 프로젝트 담당자인, 물론 해당 업무의 전공자도 아니지만, 이제 입사한 지 한 달밖에 안되었지만, 정확히 무슨 업무를 맡겼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가 했다라는 스탠스를 취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으로 버무려 면피용으로 수십년간 기가 막히게 설계된 자리. 바로 나였다.


수십년을 두고 고용해온 비정규직 욕받이 뒤로 숨은 그들의 안정적인 무능에 현기증이 났다.


옆팀 팀장은 그 흔한 전자결재 한번 올려본 적이 없다고 웃었다. 수십년간 조교들이 그 일을 대신했다고 했다. 직원들이 퇴사해 더이상 시킬 사람이 없어진 어느날 부랴부랴 전자결재방법을 물었다. 비정규직 동료가 그에게 방법을 가르쳐줬다.


참을 수 없는 부조리에 신음하던 어느 날, 기분 나쁜 예감의 전화가 걸려왔다. A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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