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미 Sep 11. 2023

이직이 어려워서 선택한 것

이직 대신 N잡


회사의 방향과 내가 원하는 방향이 다르다면 떠나는 것이 맞다. 이직을 결심하고 10년 간의 시간을 돌아본 후 찬찬히 이력서를 채워나갔다. 한달어스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노션 포트폴리오 페이지도 다듬었다. 준비를 마쳤으니 실행할 차례다. 매일 취업 포털 사이트에 출석도장을 찍으며 갈 만한 회사를 알아보았다. 가고 싶은 곳이 몇 군데 보였다. 하지만 입사 지원서를 한 통도 내지 못했다.


'경력 10년 이상, UI 디자인 팀장을 구합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 팀장 급 구인'
'프로젝트를 이끌어 본 경험 있는 디자이너 모십니다.'


경력 이직은 신입 이직과는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경력 이직은 가능성보다는 뚜렷하게 보이는 성과로 판단한다. 한두 명이라도 팀의 리더로서의 경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본 경험,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결과물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 특히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가 가장 중요하다. 아직도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그대로 드러났다. 특색 없고 무난하여 이목을 끌만한 매력이 없는 문서 쪼가리에 불과했다. 손바닥만 한 자신감은 손톱만치 줄어들고 두부처럼 약해빠진 마음은 순두부처럼 물렁거렸다. 그런 틈을 비집고 다시 또 부정적인 생각이 들이친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기 전인데 이직하는 게 맞을까?'

'아이들이 아직 엄마 손길이 필요한 시기인데, 새 직장에 적응하면서 애들 케어가 가능할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적당한 곳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지금보다 낮은 연봉으로 이직하게 되면 어쩌지?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은데...'


불안함으로 갈팡질팡하는 동안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 둘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났다. 원하는 곳으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새로운 곳에 자리 잡았다. 아끼는 사람들이기에 마음을 다해 축하하고 기뻐해주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질투심을 느끼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시리고 아프고 서글펐다. 나도 저들처럼 빨리 이직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휘둘려 괴로웠다. 부정적인 감정을 쌓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직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었다.


처음 이직을 미뤘을 때만 해도 결과가 이렇게 흐를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년 정도 연애하다가 그 안에 더 나은 환경으로 이직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 3개월 만에 아이가 생길 줄은 그래서 결혼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눈을 감았다 뜨니 결혼식이 끝났고, 아이가 태어나고 애 키우다 보니 이직을 포기하면서 그렇게 10년을 넘게 이직을 미루게 된 꼴이다. 어떻게 다시 품은 이직인데 다시 또 미뤄야 한다니, 그렇다고 당장 이직하기는 내가 진짜 너무 부족해 보이고 환장할 노릇이다. 


답답한 마음은 불안으로 이어지고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계속 글을 썼다. 글을 써서 뭐 하나 싶다가도 이거라도 해야지 싶은 생각으로 말이다. 뭐라도 해야 나의 쓸모가 증명되는 것 같아서. 그래도 다행인 건 글은 안 쓰는 것보단 뭐라도 쓰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거다. 일단 불안의 감정을 해소하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글쓰기를 시작한 건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근데 또 이렇게 자기만족 글쓰기만 하다 보면 다른 답답함과 불안이 생긴다.


'커리어가 되는 글쓰기'란 문구에 솔깃해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시작할 땐 진짜 글만 쓰면 커리어에 꽃길에 열릴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동안 내가 쓴 글을 훑어봐도 커리어로 연결될만한 글은 보기가 어렵다. 무작정 글만 쓴다고 뭐든 다 되는 건 아니란 거다. 현실은 냉정하니까.


자기만족 글쓰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글쓰기로 나만의 콘텐츠로 돈을 벌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N잡인지 뭔지 나도 하고 싶다. 어차피 당장 이직이 어려운데 이직 보류한 기간 동안 생산적이고 성장에 도움 되는 부업을 찾거나 만들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이직 보류 2회 차에 N잡러가 돼 보자고 결심하게 된다.




사진: UnsplashJordan McQueen

매거진의 이전글 미우나 고우나 나의 커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