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달이었다. 그가 이번에도 조직 적응에 실패했다고 느끼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한달에 불과했다. 신입 직원이 입사해 관심을 가져주던 주변 동료의 인내심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말도 걸고 했었다. '어머, 희찬 대리님. 얼굴 엄청 빨개지셨어요.' 그랬다. 조금만 신경이 쓰여도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그의 얼굴이 문제였다. 심지어 귀에까지 빨간 불이 들어왔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 탓인지 금방 후끈해져서 속마음을 감추기 힘들었고, 그때마다 희찬은 무심한 척을 하였고, 사람들은 더이상 다가오지 못하였다. 그는 관심받고 싶을수록 시크한 척을 했다. 오죽하면 그의 대학교때 짝사랑녀가 '희찬이는 좀 무서워'라는 말을 했을까.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고, 여러 사람들이 모인 조직 생활에서 언제나 그는 홀로 당당히 있었다. 그때 그는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독야청청. 하지만 그는 위태로웠고, 첫번째 직장생활에서의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 이후로도 몇차례 조직 이동을 했다. 어느새 그의 목표는 조직에서의 성장과 인정이 아니라, 조직에서의 생존과 연장이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번번히 그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어렵사리 잡은 일자리, 출근하는 길에 그는 유투브를 통해 직장생활에서의 처세술을 공부했다. '직장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 3가지 유형', '이런 선배 만나면 망합니다' 와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고, 그 영상들엔 '암적인 존재네 ㅋㅋㅋ', '개무시해야할 상종못할 것들'이라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그는 버스 안에서도 자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지네들은 얼마나 잘났다고 그래?' 그가 출근해서 하는 일은 스스로가 암적인 존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누가 얼마만큼 전화를 유쾌하게 받는지, 누가 얼마나 자신감 있게 키보드를 치는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고 항상 본인과 비교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머리카락 수 만큼이나 많은 더듬이를 가동해야 했고, 일하는 내내 뒷목이 뻐근했다. 수시로 상기된 얼굴은 덤이었다.
회사 내 희찬의 옆자리에는 그의 파트장인 하태영 과장이 앉았다. 그녀는 또각 구두 소리로 조용한 사무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발걸음이 당당했다. 굵은 컬의 웨이브 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짙은 향기가 남았다. 책상위에는 2, 3개의 거울이 있었고, 그 거울을 통해 화장을 점검하다 괜시리 희찬을 의식하고는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때마다 또 다시 자극적인 향기가 떨어졌다. 희찬이 이번에 취직한 직장은 여초 회사였다. 항상 남초 조직만 겪어왔던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 과제였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사람에게는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조직 내에 있었고, 순둥순둥 말 잘듣게 생긴 젊은 남자 직원은 그 먹이사슬에서 최하위에 있었다. 애초에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희찬의 성격도 한몫 했음도 자명했다. 희찬은 항상 그들에게 무해한 사람임을 증명해보였고, 그 대가로 우스움을 얻었다. 처음에 경계하던 조심성은 잠시, 그렇게 그는 먹기 좋은 에피타이저가,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이 되었다. 처음에는 정수기에 물통 교체를 부탁하던 그녀들이 사무실 화분의 물을 주는 것을 요청했고, 나중에는 가습기 물을 교체하러 가던 찬희에게 자신들의 것도 맡겼다. 여자화장실의 수도가 고장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세면대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사내 남녀 화장실은 입구가 마주보게 되어있었는데,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오던 여후배와 찬희는 눈이 마주쳤다. 후배는 기분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후로 희찬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여초 조직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것은 숨이 막혔지만 그럴때마다 옆 팀의 도 과장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다. 가끔 그를 따라 1층 흡연장에 다녀오며 바람을 쐬는 것이었는데, 찬희는 비흡연자였지만 도 과장같은 상사와 마음 편히 어울릴 수 있다면 담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할 정도였다. 도 과장은 가끔 도가 지나치고 과장이 지나치는 사람이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허튼 소리들도 종종 하곤 했다. '하태영 저 여자는 너무 핫태 핫태, 그지 않냐?' 라든가 '하 과장 숨넘어가며 웃는 소리가 뭔가 침대에서 내는 소리같아 묘해' 같은 이야기를 했다. 희찬은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렸지만, 도과장은 그런 대화 후엔 항상 희찬과의 동지애를 과시하듯 어깨동무를 했다. 그러면서 항상 그 말을 덧붙였다.
"하과장 그 여자, 독사야. 물리지 않게 조심해."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 아무 이유가 없을 수 있다지만,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와 같은 이유로도 싫어할 수 있다는 게 희찬은 이해가 안 갔다. 눈빛때문에 싫다는 것은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싫다는 뜻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난 너가 일을 못해서 싫어', '너가 커피를 안 쏴서 싫어'와 같은 피드백은 차라리 개선의 여지라도 있다. 그런데 그냥 눈빛이 싫다는 것은 그 상대방의 눈빛을 바꾸지 않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다. 특히 요즘과 같이 마스크 때문에 보여줄게 눈 밖에 없는 시기에는 더욱더. 그런 피드백을 받고 나서 희찬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동료들과 대화할 때도 마주보지 않았고 허공을 응시하거나 눈 앞에 물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바알갛게 상기된 얼굴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람을 본다면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보이긴 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뭔가 잘못된 사람으로 서서히 낙인찍혀지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을때 희찬은 처음에는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크게 실수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아직 본인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빨리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좋은 첫인상 때문인지 자신의 인상이 이제 나빠지는 일만 있다고 매번 생각했던 그였다. 그래도 그게 하강일변도로 한달만에 이렇게 된 것은 이것도 역량이라고 평가해야 싶었다.
특히 항상 발그레한 얼굴로 남자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는데 하 과장이 그 소문의 진원지였다. 눈이 마주치고는 급히 뭔가를 숨기는 걸 봤다는 얘기도 있었다. 희찬이 하 과장에게 뭔가 잘못한 건 없었다. 물론 그녀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끼어들거나 호응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주말에 출근하는 하 과장의 스케쥴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주말 내내 집에서만 보낸 것도 그의 센스없음을 탓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희찬이 정인아 미안해와 같은 사회적 운동에 열불내는 하 과장의 오지랖에 침묵한건, 정작 옆자리에서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부하직원을 돌보지 않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그녀가 이해가지 않았기 때문이고, 주말에 출근해서 주말 수당을 올려놓고 2,3시간씩 점심시간을 즐기는 그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리님, 안녕하세요.'
인사팀에서 메신저가 온 건 직원식당에서 급하게 점심을 먹은 직후였다. 희찬의 얼굴은 다시금 빨개졌다. 소문의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면담이 잡혔다. 조그마한 회의실에 인사팀장과 감사팀 사람이 앉아있었다. 인사팀장은 기자출신으로 알고 있다. 회의실에 입장한 순간부터 희찬은 직원이 아닌 취재원이 되었다. 인사팀장은 희찬이 경력직으로 입사했지만 3개월의 수습기간에 있고, 근태 및 업무태도 등 여러가지 요소가 전환 평가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감사팀 소속 직원은 이 자리가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절차임을 언급했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질의를 시작했다. 찬희는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얼굴은 뜨거웠다. 살면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은 회의실을 나온 후에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희찬은 바로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1층 흡연장에 내려가 잠시 바람을 쐬다 들어갔다. 파트장은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희찬을 보고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진행된 것이라 모를리가 없는데도.
면담 이후 희찬은 새로운 업무를 받지 못했다. 원래 하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업무에 배제된 것인지 그저 부서 예산 관리, 영수증 처리 등의 업무만 계속 하였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5년차 대리가 초대졸사원 혹은 서무가 할 만한 일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희찬은 매일 매 순간 무너져 내리는 자신을 다잡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다. 아침에만 해도 괜찮다가도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되면 비참해져버리는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가 정말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죄값을 받는다고 할 것이었다. 아니,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도 주변에 사람이 있는데, 왜 그에게는 아무도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안의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 이따금씩 옆부서 도 과장이 커피를 사주며 지난밤 유흥 이야기를 자랑스레 꺼내놓았다. 그는 희찬이 그런 수모를 겪는지도 모르는 듯 했다. 나중에 성과급 나오면 좋은데 같이 가자고 했고, 희찬은 과연 그때까지 본인이 회사에 있을지 의문이 들어 대답을 못했다.
부서 예산 편성을 위해 차후년도 예산 계획을 옆팀 취합부서에 전달했다. 의자를 구매해서 집기 비품으로 할 요량으로 구매 계획을 전달했다. 취합을 하는 주임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대리님, 의자 이거 저희 부서는 렌트로 진행할건데 렌트로 수정할게요 ㅋㅋ
희찬은 회신한 내용으로 취합할 것을 말했다.
대리님 부서별로 통일해야져 ㅋㅋㅋ
희찬은 화를 억누르며 주임의 자리로 찾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건 주임님 맘대로 바꾸는 거 아니에요. 렌트하면 발주 내고 이런건 누가 담당하나요?”
주임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공격적이세요? 제가 할게요. 이미 견적도 다 받아놨어요.”
공격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경직된 표정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얘기하니. 게다가 지금은 표정을 전달할 수 없는 코로나 시대이지 않은가.
하지만 희찬은 그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옆에 있던 도 과장이 파트원을 챙기며 ‘어허, 이 친구 실수하는구만’라는 얘기를 들었던거 같기도 하고, 실랭이가 끝나고 난 후에 헝클어진 옷가지에서 하 과장의 향수 냄새가 배여있던 것 같기도 하다.
횡설수설 하고 흥분해 말까지 더듬었지만, 그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조퇴를 하는 그의 목이 완전히 쉬어버린걸 보면 말이다. 마치 소설 이방인 속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신을 변호하는 열변을 토하는 과정이었다. 얼마나 사람을 우습게 보면, 이러는 거 아니다, 시발 도 과장 저새끼가 더 더러운 새끼다, 왜 나한테만 지랄이냐 등등의 얘기를 했던 것들이 기억에 났다.
희찬은 퇴근하기 전 컴퓨터 파일 정리를 했다. 그동안 회사가 했던 여러가지, 정말 수많은 파일과 폴더들이 있었다. 여러가지 사건들과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희찬의 마음과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뿐이었다. 파일이 열려있으면 닫으면 그만인 것처럼, 마음의 부정적 감정과 기억도 내가 닫으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여태 계속 창을 띄워놓고, 계속 화면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그 감정에 지배되었던 희찬이었다. 희찬은 마우스를 클릭했다.
퇴사하기 전, 희찬은 하 과장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불편하게 한 점 사과드리고, 어떤 점이 마음에 안드셨냐고. 조금 뜸을 들이더니 그냥 본인 맘대로 안 움직여주는게 싫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도 과장이 하태영 과장에게 찝쩍댔다 차인적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기 맘대로 안 해주면 그 사람을 미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