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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Apr 23. 2019

개미 이야기 3: 12분

[매일 글쓰기 #19. 자작소설]

이 이야기는 수영의 일개미 4년차에 벌어진 이야기이다.       

   

오늘은 모두가 격양되어 있다. 수영의 근무지에 왕벌개미가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왕벌개미로 이야기할 것 같으면 삼개미로 수영의 조직보다 더 큰 조직에서 내려온 개미다. 기존의 수영의 조직에서 우두머리, 즉 삼개미는 내부에서 커 온 개미였다.  하지만 그 삼개미가 물러나고 외부에서 리더가 유입이 된다는 건 세대 교체와 변화를 의미했다. 그랬기에 모두들 긴장하고 새로운 삼개미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와 12시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예정되었다.     


하긴 그 사이에 수영의 조직에도 변화가 있긴 했다. 2227호로 불리던 수영은 후배가 들어와 2225호가 되었고, 수장이었던 2221호도 한차례 바뀌었다. 은퇴를 한 2221호는 일반개미가 되어 귀농을 했다. 나름 수영은 이제 중견 일개미였다. 대리 셋이 모이면 지구를 들 수 있다고 했던가. 그만큼 그는 많은 일을 소화하고, 꽤나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영에게도 큰 고민거리가 있었으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이 작은 개미굴 안에 갇혀있는 것 같고, 점점 시야가 좁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도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능력있는 개미들은 저마다 개미굴을 떠나 더 좋은 개미굴을 가거나 자신의 능력을 펼쳐 개인의 개미굴을 만들기도 했다. 수영은 매일매일 결심했다 포기했다 하는 심경으로 개미굴에 출근하고 있었다.     


“S대 출신에 엄청 똑똑하대, 무식한 개미를 제일 싫어한대.”     


수영이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2221호와 2223호는 각종 정보망을 통해 수집한 삼개미에 대한 소문을 늘어놓고 있었다. 똑똑하고, 호쾌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에...수영은 생각했다. ‘아, 나와는 너무 다른 성격이구나. 나는 절대 될 수가 없겠다.’ 드디어 삼개미 6190호가 식당에 도착했다. 시니어 개미들의 분주한 더듬이가 한층 더 바빠졌다. 평상시에는 수영이나 그 후배에게 시키던 일도 본인이 발 벗고 나서서 직접 뛰며 응대했다. 참나, 수영은 좀 씁쓸하긴 했지만, 편해서 좋았다. 국방부에 가면 원스타가 커피를 탄다더니, 시니어들이 분주하니 주니어가 할 일이 없었다. 6190호는 듣던대로 호쾌한 성격이었다. 중역 특유의 강단이 느껴지는 성격에 ‘아, 기가 세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개미였다. 몇마디 나누지 않고는 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물론 그의 칼국수가 제일 먼저 나왔다. 12시 10분.     


후루룩 후루룩. 중역과 그를 보필하는 시니어들, 2221호가 먹는 소리가 식당을 채웠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가 6190호가 말을 꺼내기라도 기다리는 듯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아니 그와 호흡까지 맞춰서 숨을 내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마만큼 222X 개미들에게는 그 순간이 중요했으리라. 본부장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언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의 긴장감이었다. 왜 이런데서 쓸데없는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지 자조하면서도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수영이었다.     


수영은 초조했다. 그와 그의 후배 음식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빨리 먹는 중역들의 식사 시간을 맞추려면 얼른 음식이 나와야 했다. 그는 애타게 주방과 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12시 15분. 벌써 6190호는 칼국수의 절반을 해치운 느낌이었다.    

  

‘아주머니, 제발 빨리요!’     


수영의 간절함 바람이 닿았는지 아줌개미는 호다닥 칼국수를 말아왔다. 12시 18분, 수영은 달려야 한다. 김치를 집을 틈도 없다, 연기가 펄펄나는 국수를 후후 불어먹을 틈도 없다. 입천장이 데이든 무슨 맛인지 느낄 겨를도 없이 입 안으로 집어 넣어야 한다. 중역들은 다 먹었는데 나 혼자 먹고 있고, 그걸 기다리는 상황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먹으라는 6190호의 말에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먹는 흐름을 놓쳐 면발을 입으로 뿜을 뻔 했다. 쳇, 그런 얘기를 할거면 본인들이나 좀 천천히 먹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러 명이서 저녁 식사로 갈비탕을 먹으러 갔는데, 임원이 제일 먼저 나와서 먹기 시작했고, 막내의 식사가 나왔을 때쯤에 임원이 식사를 다 마쳐서 막내는 당면만 먹고 나왔다고. 뭐 당면만 먹지 않은게 어디냐며 수영은 자위했다. 개미 사회가 돌아가는 건 참 불공평했다. 식사 나오는 것도 윗 개미 먼저, 식사를 시작하는 것도 윗 개미 먼저, 그치만 식사 마침은 항상 아랫 개미 먼저. 아랫개미는 대체 밥을 어떻게 먹으라는건지. 수영은 신입개미 시절에 그게 짜증나서 팀개미들과 식사를 하고, 혼자서 또 식사를 한 적이 있다.      

12시 22분. 수영이 마지막 면발을 입에 쑤셔넣고 젓가락을 놓자 마자 본 시각이다. 역시 6190이 마지막 한입을 우아하게 넣고 있었다. 12분, 6190은 칼국수 한 그릇을 12분만에 해치웠다. 그 아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4분, 수영은 그 칼국수를 4분만에 해치웠다. 수영의 뱃 속에선 나온 그대로의 따뜻한 면발이 요동치고 있었다.     

2223호는 식사를 마치며 수영에게 카드를 주며 말했다. 6190호님의 식후 더듬이 닦이를 사오라며. 수영은 생각했다.     


‘쳇, 우리 회사 임원하기 진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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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이야기 1,2 편은 너무나도 쉽게 팽-하고 쓰여진 글이다. 쉽게 썼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영감이 잘 떠오르던 시기였기도 했다. 지금 나는 그렇지 못하다. 많이 깎여나간 느낌이고,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쓰고싶었던 개미이야기 3편에 도전한 것은 내 스스로 도모하고자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할 수 있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일개미의 감정을 좀더 느끼기 위해 브런치가 아닌 엑셀에 글을 적었다. 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쉽게 되지 않았던 일, 그런 일들을 하나 둘 씩 넘어가며 나는 행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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