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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Apr 19. 2019

개미 이야기 2 : 12년

[매일글쓰기 #17. 소설]

개미들의 직급체계는 이러하다. 일개미에서 탁월한 업무 능력을 발휘해 진화하면 이(사)개미가 된다.  아주 어렵게 어렵게 또 한번 승진하면 삼(무)개미가 된다. 삼개미에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사(장)개미가 된다. 수영은 그 어려운 관문을 뚫고 별 중의 별, 개미 중의 개미라는 사개미가 되었다.      


일개미 시절(대리 ~ 부장 : 7년)


 일개미에게 업무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지셔닝’이다. 어떻게 일을 하는가보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고, 무엇 일을 했는지보다 그 일을 할 때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모래알을 나르는 개미들을 수없이 많지만 눈에 띄는 개미는 손에 꼽기 때문이었다. 수영은 이개미가 보기 좋은 곳에서 땀을 닦았고, 순서를 계산해 항상 마지막에 모래알을 내려놓았다. 이개미에게는 수많은 일개미 중 수영만이 눈에 띄는 일개미였다.

 개미조직에 환멸을 느꼈던 수영이 이렇게 변화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어서도, 남들보다 뛰어난 성취동기 때문도 아니었다. 어느 날 들이닥친 홍수 때문이었다. 9년전 어느 장마기간이었다. 기상관측 개미가 이번 호우는 꽤나 강력할 것이라고 매일같이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개미 조직은 경고를 소홀히 했고, 갑자기 불어난 연못물이 토굴을 덮쳤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공들여 쌓아올린 모래탑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췄다. 2222호, 2223호...모두 다 사라지고 없었다. 갑작스런 시니어들의 부재가 수영의 빠른 승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수영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었다.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면 휩쓸려가 버리는 게 이 조직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개미 조직은 사고를 당한 개미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영의 동기는 생존이었다.


이개미 시절(이사 : 2년)


 그는 엄격한 관리자였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말 한 마디에 몇백억짜리 프로젝트를 엎었다 되엎다 했다. 일개미 시절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 그에겐 눈 하나 깜짝 안하는 일이 되었다. 일개미들은 수영에게 앓는 소리를 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강하게 밀어부쳤다. ‘나야말로 불안정안 계약직 임원인데, 누구한테 징징대는거야’ 이개미가 되어보니 일개미들의 행태가 눈에 보였다. 누가 눈치보면서 살살 뺀질대는지, 누가 우직하게 일을 잘하는지, 허나 후자가 수영을 따라한다는 걸 이개미 수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개미가 된 이상 더 높은 개미가 되고 싶어졌다. 삼개미 아니 그 이상, 사개미. 그러기 위해서 수영은 남을 찍어 눌러야만 했다. 동료 이개미의 등을 밟고 올라가 삼개미를 찍어 내려야만 본인이 삼개미가 될 수 있었다. 수영은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젠 더 이상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생존도 아니었다. 그저 승진, 승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업무의 문제도 아니었다. 얽히고 설킨 상류 개미들 간의 역학 관계, 그것이 핵심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개미 시절을 함께 보낸 2221호와 사개미가 전에 같이 일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개미로 개미조직을 떠난 2221호를 찾아가 수영은 극진히 대접했다. 사개미에게 본인 이야기를 잘 좀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꾹꾹 눌러담아 강조 또 강조했다. 삼개미와 앙숙마냥 사이가 좋지 않던 사개미는 삼개미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대신할 이개미를 찾고 있었다. 2221호의 도움이 영향을 주었는지 수영은 마침내 삼개미가 되었다.           


삼개미 시절(상무 : 2년)


 삼개미가 되니 달라지는 게 많았다. 개인 비서개미가 붙었고, 특별 운송수단도 지급되었다. 수영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일개미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말 한마디에 개미 사회에서 쫓아낼수도, 중용할 수도 있어 모두 긴장하였다. 삼개미의 권위와 위상에 맞게 그는 항상 뒷짐을 지고 다녔다.

 하루는 일개미들이 일하는 것이 보고 싶어 토굴 안을 돌아다니다 2225호 시절을 보냈던 방에 들어가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럴수가, 아직 채 일곱시가 되지 않았는데 모두 다 퇴근을 한게 아닌가. 삼개미 수영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일개미 시절에는 그렇게 매일같이 20시 퇴근을 했는데, 요즘 일개미들은 너무 나태하고 조직을 등한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이런 책임의식 없는 일개미들을 데리고는 사개미에 오를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수영은 당장 수화기를 들어 2225호를 호출했다.

 “자네, 어딘가? 아직 일곱시도 되지 않았는데 퇴근한건가?”

 “예, 상무님. 오늘 일이 있어서 먼저 좀 나왔습니다.”

 수영은 부글부글 속이 끓었다.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화를 참으며 타일렀다.

 “자네, 일이 없나보지?”

 “아, 아닙니다. 상무님. 오전에 지시하신 보고자료 다 작성해서 컨펌받았습니다.”

 “나 때는 말야! 컨펌받은 내용도 재수정해서 다시 보고 들어갔었어!! 한번 오케이하면 끝이야?!!!회사  

  생활 그렇게 편하게 할거야!!어?!!”

 2225호는 그 해 승진 심사에서 누락해 대리로 개미 사회를 나가게 되었다.     


사개미 시절(사장 : 1년)   


 초고속 승진을 한 수영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잘 해결해왔다. 수차례의 홍수와 화재에도 동료를 방패삼아 앞으로 전진해 온 수영이었다.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심취한 수영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개미사회를 평정했다. 비로소 토굴 안이 한 눈에 들어왔다. 매일같이 생산, 영업, 구매, 원가 등의 보고를 받으며 중요한 의사결정을 했다. 수 만 마리의 개미들을 이끈다는 자부심이 수영을 뿌듯하게 했다.

 그는 토굴을 확장할 계획을 세웠다. 더 큰 개미 조직과 더 많은 기회를 위하여. TF를 구성하고 신사업 개발을 지시했다. 그에게 토굴은 너무 작고 답답했다. 그는 새로운 미션과 비전을 개미들에게 선포했다. ‘온누리의 개미에게 우리의 가치를!’ 첫 출장지는 토굴 밖으로 정했다. 삼개미와 이개미, 그리고 뛰어난 일개미 몇 마리를 수행 비서로 하여 일행을 꾸리곤 출장을 떠났다.  

 밖으로 나온 수영은 아찔했다. 끝을 모르게 펼쳐진 푸른 초원, 얼마나 먼지도 가늠할 수 없는 푸른 하늘, 아찔하게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어지러웠다. 벌써 몇몇 개미들은 구역질을 하는 중이었다. ‘으이그, 나약한 자식들’ 그들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수영은 앞장서 나갔다. 태양이 가리워지더니 주변이 어두워졌다. 사개미 수영은 몸이 허공으로 치솟는게 느껴졌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 느껴졌다. 온몸을 눌러 쥐어짜내는 듯한 압박감에 수영은 몸부림쳤다. ‘홍수 때도 이런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는데’ 수영은 바짝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눌러대는 물체를 있는 힘껏 깨물었다.      


“아얏! 엄마! 개미가 나 물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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