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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Apr 18. 2019

개미이야기 1. 12시간

[매일 글쓰기 #16. 소설]

개미들이 모여든다. 중구난방 움직이는 것 같지만, 모두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 동적이면서 정적이고, 정적이지만 혼란스러운 그 곳으로 모여든다. 


토굴 안 밀폐된 실(室) 하나, 2221호가 등장한다.     


08 : 00 - 09 : 00


 2223호, 2224호가 차례로 등장하고, 2228호를 끝으로 모두가 모였다. 더듬이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각자 자리를 잡는다. 밖에선 아침 점호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2225호는 어제 나르던 모래알을 차근히 살펴본다. 2224호가 가장자리가 뾰족하다며 다듬어 달라고 했던 모래알. 어디에 쓰일지는 모르지만, 2224호의 작업에서 어디엔가 자리할 것이다. 이른 아침의 피곤함을 이기며 2225호는 분주히 턱을 움직여 모래알을 깎는다. 옆에 있던 2226호가 그의 다듬기 작업에 감탄한다.  ‘내가 너보다 1년 먼저 이 작업을 배정받았는데 능숙한 건 당연하지. 너도 시간이 지나면 곧 능숙해질거야. 나도 2226번일 때 서툴렀는걸.’  2225호는 혼자 되뇌인다.     


09 : 00 - 10 : 00


 2221호의 호출이다. 

 어제 작업했던 모래알 작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토굴 입구에 벽을 쌓는 일이었는데 기존 설계보다 1도가량 기울어진 게 문제였다. 미리 확인하지 않았느냐며 2225호를 나무랐다. 하지만 2225호에게는 처리해야 할 모래알이 너무 많았고, 사실 이 정도면 문제 될 게 없어보였다. 더욱이 이건 2225호가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허나 그는 그렇게 얘기할 수 없었다. 2221호는 이 방의 장(將)이었고, 앞자리의 번호를 얻기 위해선 그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2225호는 다시 작업하겠노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1호와 4호의 지시사항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있는데 2492호가 찾아왔다. 2492호는 옆 실의 개미로 2228호와 친하다. 발톱 손질을 하고 있는 2228호를 데리고 진딧물을 마시러 갔다. 30분 후나 되어야 돌아오리라.     


10 : 00 – 11 : 00


 2225호는 모래알 다듬기를 마무리하여 2224호에게 전달한다. 2224호는 오른쪽을 다듬으랬더니 왜 왼쪽을 다듬었냐고 화를 낸다. 5호 방향에서는 오른쪽이 4호에게는 왼쪽이었기 때문에 5호는 방향을 틀어 다시 전달한다. 4호는 모래알을 들고 자신의 작업대로 향한다. 이윽고 작업을 마무리한 2224호는 이를 2221호에게 보여준다.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받은 2224호는 자신의 공을 치하하는 2221호에게 아양을 떨며 자리로 온다. 2223호는 괜한 헛기침을 한다. 2225호는 불순물을 제거하느라 여념이 없다.   


11 : 00 – 12 : 00


 2221호가 모두를 불러모은다. 진딧물을 마시러 갔던 2228호는 돌아와 8잔의 진딧차를 탔다. 더듬이는 16개이지만 분주하게 움직이는 더듬이는 단 2개 뿐이었다. 2221호는 우리 방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주의를 환기시킬 것을 강조했다. ‘우리’라......

‘We’가 아니라 ‘Cage’가 아닐까 2225호는 생각했다.


13 : 00 – 14 :00 


 점심시간이 끝나고 2225호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으며 모래알을 다듬는다. 애벌레를 먹고 좀 쉬고 싶었으나 2222호가 쉴새없이 이야기를 해대는 바람에 더듬이가 피곤했다. 2222호는 어제 나무 수액을 먹으며 여개미와 놀았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그때 2222호에게 전화가 왔다. 2222호는 내선번호 2225를 눌러 전화를 돌렸다. “감사합니다. 원가관리팀 김수영 대리입니다.” 오늘 그의 첫 마디였다. 


14 : 00 – 15 : 00


 박 과장은 수영을 다시 불렀다. 오전에 한 일에 대한 오더를 추가 지시사항으로 내렸다. 팀장은 특별히 부정적 코멘트가 없었으나, 박 과장 개인적으로 보완할 사항을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수영에게 ‘트레이닝 시키는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일을 많이 시키는 만큼 많이 배우고, 더 성장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15 : 00 – 16 : 00


 수영은 다시 팀장에게 오전에 있었던 문제 사항에 대해 보고했다. 팀장은 그 프로젝트를 엎으라고 했다. 수영은 이해가지 않았다. 몇 주를 진행해온 프로젝트가 팀장의 말 한마디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팀장은 물을 부었다. 사상누각같이 그 일은 무너져 내렸다. 수영은 무너져 내린 모래성을 피해 물바다에서 헤엄쳐 나오는 일 뿐이었다.      


16 : 00 – 17 : 00


 수영의 옆자리 여사원은 두 번째 커피타임을 가지러 갔다. 파견직 여사원인 그녀는 계약기간 종료를 앞두고 하루 종일 온라인 쇼핑만 하고 있다. 시킨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그녀를 보며, 속이 터지는 수영은 괜히 건드렸다 본인만 손해겠다 싶어, 차라리 눈에 안 보이게 자리를 비우는게 고마웠다. 다섯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18 : 30 – 20 : 00


 자연스럽게 저녁식사를 하고 온 원가관리팀은 제각기 모니터 앞에 앉아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키보드 소리도,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도. 수영은 고개를 들어 파티션 너머로 주위를 살핀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다. 차장은 야구 중계를, 후배는 웹툰을 보고 있는 듯 하다. 고요하다.   

  

20 : 00 


 팀장이 일어선다. 퇴근시간에 차가 막힐까 일부러 늦게 가는 것이다. 팀장이 집에 가자 하나둘씩 짐을 챙긴다. 내일 뵙겠습니다. 퇴근이다.      


개미들이 흩어진다. 소란스럽진 않지만, 일사분란하다. 정적이지만 동적이다. 동적이지만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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