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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Mar 27. 2023

팔과 다리를 잘라


갑이는 히키코모리였다.

히키코모리는 우리 말로 은둔형 외톨이라고 한다. 맨날 방 안에만 틀어박혀 밖에 나가지 않는다. 지금은 독립을 해서 혼자 살지만, 어머니와 같이 살 때도 거의 그랬다. 히키코모리라는 단어를 모르셨던 어머니조차 ‘아이고 저 놈은 아주 희귀 거머리여’하시며 그의 정체성을 거의 맞추시기도 하셨다. 갑이가 외동으로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甲으로 살라는 의미로 외자로 갑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름만 보면 갑처럼 살 수 있었을테지만, 문제는 그의 성이 ‘지’씨였다는 것이다. 지갑이라는 이름은 아무리 갑처럼 살려고 해도 좀처럼 그러지 못하고 을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 친구들은 그를 ‘지갑’이라 놀리며 돈을 빼앗았다.

새로운 집단에 가면 새롭게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졸업을 좋아했다. 그러나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도 부적응자라는 딱지는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몇번의 직장을 거치는 동안, 그는 완전한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처음 몇 번은 ‘그 사람들이 나쁜거야’, ‘이번 직장은 조직 문화가 좋지 않았어’ 생각했지만, 매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이젠 ‘결국은 나의 문제구나’를 깨닫게 된 그였다.

이제는 모두가 떠나고, 되돌리기는 너무 늦었고, 버려진 기억과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느낌, 사람들이 떠나갈 때마다 불빛이 하나씩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마음 속엔 완전한 어두움이 지배했다.

그가 밖에 나가기를 꺼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군가 어두워진 자신의 표정을 보고 병신이라 무시하고, 패배자라고 낙인 찍는게 무서웠다. 그렇게 그는 구직활동도 체념했다. 그는 우울증과 정신 병력이 있는 사람은 아예 채용 지원을 못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를거야, 이번에는 잘 지낼 수 있을거야 하고 가졌던 희망은 채 한달이 지나지 않아 현실을 깨닫게 해줬으니까.

지갑이가 방 안에만 머물면서 생각한 게, 이렇게 걸을 일이 없다면 다리가 있을 필요가 없겠다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축구도 곧잘 하고, 달리기도 종종 하고 했었던 그였다. 의사선생님은 우울증에는 운동만큼 좋은 게 없다고 운동을 강력 추천했었다. 근데, 기분이 안좋아서, 기운이 없어서 밥도 먹지도 못하는 그에겐 원룸 현관문을 열 힘도 없었다. 지갑이가 방 안에만 틀어박히기 전 그는 많이 돌아다닌 적이 있다. 매번 회사-집만 반복하는 게너무 답답했었던 그는 공간의 제약이 주는 답답함이 자신의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해서 원없이 돌아다녔었다. 틈만 나면 밖을 나가 돌아다니고 사람 구경을 했다. 황학동 풍물시장에 가서 사람 사는 구경도 하고, 종로 인사동을 돌며 정겨운 풍경들에 인사하고는 했다. 근데 그럼에도 그의 답답함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거기에 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만 더 커져갔다. 공간의 답답함은 그의 우울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다리를 잘라버렸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활동하지 않는 그는 곧 적응하게 되었다.

집에서 뭔가에 열중하면 자신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닥치는 대로 두 팔로 해보기 시작했다. 요리를 만들어보고,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갑이는 행복해지지 않았다. 뭔가를 하는 것은 그를 구원해주지 않았다. 갑은 이내 팔도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쓸모도 없는 팔은 왜 두개나 있어서 무게만 늘리나 싶었다. 안그래도 그의 라운드 숄더가 무거운 팔 때문에 더 말려서 그가 왜소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팔을 잘라내게 되었다.

그는 머리로만 생각하고 사유로 존재했다. 육체적인 것이 주는 행복감이 없었기에 정신적인 것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불행했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그에게 더 이상 자를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하나 남아있었다. 아, 이제는 머리를 자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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