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막 막막 Mar 27. 2023

기억의 이야기(1/2)


처음에는 그저 핸드폰을 바꾸고 싶어 성지를 찾았을 뿐이다. 앱스토어에 휴대폰 성지를 검색했을 뿐이고, 거기서 ‘성지GO’라는 앱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마침 ㄱ의 동네에 성지고라는 고등학교가 있었고, 그 이름이 익숙했던 ㄱ은 다운로드 수가 100이 채 되지 않는 그 앱을 다운받았다. 앱을 실행시켜보니 휴대폰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성지 매장이 등장하기는 커녕 연한 하늘색과 회색이 섞인 빈 화면만 나올 뿐이었다. 뭔가 잘못 만들어진 앱이라고 생각하고 ㄱ이 홈버튼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갈 참이었다. 갑자기 빈 화면에 검은 문장이 완성되었다.

‘이게 뭐지?’

네 글자의 문장을 ㄱ의 눈동자가 훑고 있는 그 짧은 순간 실시간으로 새로운 문장들이 출력되었다.

‘잘 못 만들어진건가. 지워야겠다.’

빈 화면은 어느새 ㄱ의 속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ㄱ이 속마음 앱을 발견하고는 그의 일상이 달라졌다. 출근길 버스 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중년 남성의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점심 시간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이모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앱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앱을 실행하고 카메라를 속마음을 알고 싶은 상대를 향하는 것 뿐이었다. 중년 남성은 최근 회사에서 한 직원에게 마음을 빼았겼는데, 대표님의 비서였고 수많은 남성들이 흠모하는 직원이었으므로 어떻게 그녀에게 마음을 얻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에 대한 미안함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식당 이모는 사장 몰래 돈을 뒤로 빼돌려 뭘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대출 이자를 마련하기 위해 잠시만 갖다 쓰고 다시 넣어둘 생각이었는데, 점점 대담해져서 생활비에도 여가비에도 충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나이 먹고 어린 사장 밑에서 고생하는데 뭘, 어리숙한 사장놈 팔자지’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고 호기심에 시작한 ㄱ의 일탈놀이는 점점 대담해졌다. 가끔 왜 카메라를 들이미냐고 도촬하는거 아니냐고 경고하는 사람이 있긴 했으나, 깨끗한 사진첩에 ㄱ은 누명을 벗었다. 이윽고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카메라를 향하게 했다. 한번은 중요한 클라이언트 경쟁 PT용 보고 자료에서 핸드폰을 꺼낸 적이 있다. 열정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는 팀장과 경청하고 있는 대표이사를 스캔한 결과, 그 둘 모두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는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늘 점심에 먹은 갈비탕 집 맛이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중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팀장은 무좀으로 간지러운 발가락 때문에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ㄱ이 놀이를 계속하다 문득 속마음이 궁금해진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집에 있는 그의 아내였다. 크게 좋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나쁘다고 할 것도 없는 그의 결혼 생활, 무난 무난한 그의 일상은 평온하긴 하지만 권태로웠다. ㄱ은 궁금했다. 그가 느끼는 권태를 아래도 똑같이 느끼고 있을지.

<계 속>

작가의 이전글 팔과 다리를 잘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