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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Mar 27. 2023

일요일 오후,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빨간 불빛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비상상태를 알린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는 근래 내가 들어본 소리 중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소리이다. 그 말은, 개미동굴에서는 좀체 들을 일 없는 소리라는 말이다. ‘출차 주의’라는 네 글자 옆으로 지하 땅굴에서 외계 우주선 같이 생긴 것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듯 모습을 드러낸다. 아, 미안하다. 나 사실은 소리를 못 듣는다. 저 큰 바퀴에서 느껴지는 진동. 그리고 지나다니는 인간의 놀람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사람들은 저 불빛이 돌면 이 쪽에 오지 않는다.


우리 개미족은 인간의 지하 땅굴을 붕괴시킬 목적으로 수세대에 걸쳐 개미동굴 굴착 작업을 하고 있다. 지하주차장이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타깃엔, 인간들의 값비싼 재산이 있다. 바퀴 달린 우주선인데 인간들은 그 우주선에 타고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떠다니지는 못하니 우주선은 아니지만, 개미언어로 적당히 표현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큰 지하주차장 시멘트에 작은 균열을 조금씩 여러 개 만들어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가능하다면, 사람이 없는 주말보다는 주차장이 꽉꽉 들어찬 평일 낮시간에 보란듯이 무너뜨리는 것이 베스트다.


인간들은 이렇게 큰 땅굴을 팜으로서 우리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우리의 땅굴은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저 자신들의 재산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으로 그렇게나 큰 땅굴을 만들고, 대부분 저장고로만 쓰고있다. 위로 올라가는 것도 모자라 지하 8, 9층에 이르는 주차장을 만들었으니 우리 개미족은 너무 많은 땅을 그 과정에서 빼앗기게 되었다. 댐을 만들어 수몰되는 마을이 있으면 보상을 해주는 게 인간 종족의 암묵적인 룰이랬던가. 개미족에게는 보상은 커녕 보상을 위한 협의도 하려한 적이 없으니 거꾸로 미개하다 할 것이다.


에매랄드 색으로 칠해진 주차장 바닥은 우리 개미족들이 지나다니기엔 너무 눈에 띈다. 로드킬이라는 게 문제되기 전부터도 우리 개미족들은 인간들의 발에 계속 로드킬을 당해왔는데, 지금은 바퀴에 더 많이 깔려죽는다. 그리고 그 우레탄이라고 불리는 바닥에서 끼익- 끼익- 대는 소리에 개미족들은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게 요즘 말로 층간소음인 것인가. 그리고 그 우주선에서 뿜어나오는 광선 때문에 시력을 잃고 산재처리를 요청한 개미가 한 둘이 아니다. 이쯤되면 우리가 왜 지하주차장을 무너뜨리려고 하는지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라나.


지하주차장 입구에서 무사히 길을 건너와 건물 외벽에 다다르니 커다란 유리창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유리창 안에 심각한 표정의 한 사내가 있다. 테이블 위에는 컴퓨터라고 불리는 인간의 도구와 책과 필기구들, 그리고 커피가 놓여있다. 커피잔에는 뭔가 쓰여져 있다. 스.타.벅.스. 뭔가 해야 할 일이 많아보이는 거 같고,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오늘이 인간들의 결혼식이 많은 일요일이랬다. 일요일에는 행복한 사람도 많지만, 이 남자는 그거랑은 상관이 없나보다. 그러고보니 카페 안 사람들은 다들 여럿이서 모여서 입을 빵긋대고 있는데 이 사람만 입을 앙 다물고 있다. 뭔가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다들 행복해보이고 즐거워 보인다. 이 남자만 제외하고. 심드렁한 표정 때문에 혼자인건지, 혼자라 심드렁하게 있는건지는 알수 없는 일이다. 본인은 알려나. 아, 이제 싫증이 났는지 그만 정리하려나 보다.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휙 돌리고는 컴퓨터를 탁 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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