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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 막막 Mar 27. 2023

얼음땡놀이


A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B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A : 혹시 어떤 일 하세요?

B : 아, 저요? 저는 글로벌 투자회사...

A : 아, 잠시만요. 우리 서로 어떻게 일 하는지 얘기하실래요? 무슨 일을 하는지는 가장 마지막에 말하는 걸로 하구요. 저는 정장을 입고 일합니다. 일할때 주로 가만히 있는 거 같아요. 실제로 가만히 멍을 때린다거나하는 건 아니지만요. 겉에서 보기로는 가만히 멍을 때는것처럼 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제 일을얼음 땡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B : 엇, 저도 그런데요? 저도 가만히 일을 하는 편인데 이러다가 가끔 망부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일을 하면서 임무가 있으신가요?

A : 넓은 공간을 관리하는 일인데 사실상 제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아요. 정해진 작은 공간에 서서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 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데 가만히 서서 위험을 방지하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제 임무이지요.

B : 저는 벌써 맞춘거 같네요. 공간 관리자의 일을 하시는 것 같군요. 저도 주로 사무실에서 가만히 있긴 합니다만, 단말기를 통해 전세계 모든 이슈들을 실시간으로 접하고는 있습니다. 장소는 마찬가지로 좁은 공간이지만 대단히 넓은 분야의 소식들을 접하다보니 이건 동적인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정적인 일을 하고 있는 건지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A : 대단하시네요

B : 저 역시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일 때가 많습니다. 파티션으로 조각지어진 한평 남짓한 그 공간이 제게 주어진 개인적 공간이지요. 다른 사람의 자리는 그 사람의 공간이니 선뜻 찾아갈 생각이 들지도 않습니다. 탕비실, 회의실 등 공용공간에서라도 조금 쉬고 싶지만 이 땅값 비싼 곳에서 어디 노는 땅이 있을라나요. 그래선지 제 일터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고 집에 갈때면 온 몸에 뻐근한 느낌이 든답니다.

A : 뻐근한 느낌이요?

B : 네, 제가 일하는 곳이 23층인데, 생각해보면 되게 아찔한 높이잖아요?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책상에매달려 버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루종일 벼랑 끝에 매달려 책상에 팔꿈치로 버티고 있으니 뻐근할 수 밖에요. 저는 제가 정신노동자인줄 알았는데, 육체노동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높은 성과를 내고승진을 할 수록 사무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만, 그럴수록 거기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더 힘들게 매달려야 하겠지요.

A : 힘드시겠네요. 그래서인지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다들 표정이 별로 안좋으시더라구요. 재밌는건, 일과시간 중에는 그 넓은 공간이 개미 한마리 안보이다가 퇴근 시간만 되면 다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분이 나오는건지 사람들이 정말 쏟아져 나옵니다. 그걸 볼때마다, 그분들도 어찌보면 얼음 땡 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업무시간에는 그 시간에 얼음이 되어 있는 것에 대한 댓가로 월급을 받고,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요정이 땡을 해서 그제서야 움직일 수 있는 놀이이지요.

B : 허허, 정말 그러네요. 정말 재밌는 생각이네요. 아, 잠시만요. 아이고, 오분 후에 홍콩 지사와 화상회의가잡혔다고 하네요. 오늘 대화는 마쳐야 할 거 같아요. 정말 즐거웠네요. 제가 다니는 정신과 의사선생님과의대화보다 더 재밌었던거 같아요.

A : 아, 넵 그러시군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이제 제가 무슨일을 하는지 밝히죠. 저는 여의도 AFC빌딩 일층에서 시큐리티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B : AFC라구요 ?? 잠시만요, 저는 그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저는 거기 23층 JDP 모건에서 일하고있습니다.

A: 오, 그러셨군요. 저희 같은 얼음땡 놀이에 참가하고 있었군요. 부디 오늘은 퇴근 요정이 일찍 찾아오기를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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