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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30. 2022

교장이 불법촬영하는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성인지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문

“언니, 교직원 화장실에서 몰카 나왔는데 교장샘이 신고 못하게 해요. 이래도 돼요?”


안 되지. 가입한 노조에 연락해서 그 상황까지 다 공유하고 경찰신고에 갑질신고까지 해버리라고 했다. 아웃박스 멤버들 조언 따라 한국여성의전화 도움 받으라고도 했다.


“일 크게 만들지 마라, 녹화된 게 없었다, 학교에 추가 카메라도 없었다, 피해자가 없는데 복잡한 상황 감수하면서까지 신고할 거냐. 전부 조사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냐. 그대들은 교사인데 범인이 학생이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어쩌긴 뭘 어째…레파토리가 이렇게 식상한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설마 교장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근데 교장이었다. 소름돋아… 녹화된  없었던  아니라 사실 교감한테 다른 카메라 있는지 살피라고   지웠을 거다. 과연 경찰 출동 즉시 뒤진 교장 핸드폰서 사진, 영상이 발견됐단다. 절대  걸릴 거라 생각했으니 지우지도 않았겠지? 이틀 뒤에야 뉴스 나고 떠들썩해서, 상황 어떻게 됐나 전화해 이것저것 묻는데 친구가 그런다.


“열 장이나 나왔대요. 더 있는지 집도 조사한대요… 3년이나 같이 근무했는데…저도 찍혔을 거 같아요 ㅠㅠ.”

교장 불법촬영은 아주 자극적(?)인 문구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이고, 이런 현실은 곳곳에서 피해를 만들고 있다.



하ㅠ 내가 당사자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먼저 헤아리지 못했다. 어쩌다 한 번 있을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이제 이 친구에겐 100퍼센트의 경험이 돼 버렸다. 교장과 함께 있던 모든 순간, 3층 교직원 화장실을 쓰던 모든 순간을 무한 되감기하고 앞으로도 매일 출근하는 일터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을 겪을, 당연한 친구 마음을 내 마음처럼 생각하질 못했다. 너무 미안했다.



작년에 학교 불촬카메라 사건 연달아 3건 발생한 뒤 교육부가 세운 대책은 기가 막혔다. 16일부터 31일까지 전수조사하겠다고 ‘공문’을 내려보냈다. 15일 페북, 트위터엔 멋지게 홍보까지 했다. 설치한 카메라 치우라고 광고하는 꼴. 이 정도 민감성 갖고 일하는 교육부, 갈 길 짱 멀었다. 주기적으로 성인지감수성 교육 받고 성인권 정책관 확대도입하라고 해야 한다.



2017년부터 3년간 초중고등학교에서 신고된 불법촬영 건수는 무려 1000건이다. 작년 이후 매년 2회 자체점검으로 운영하면서 학교장 책임 사안이 됐다. 학교장 징계 가능한 사안이면 열심히 찾을까? 열심히 덮을까. 그래서 덮으려는 쫄보일 줄 알았지 직접 찍는 삐리리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친구한테 어떤 도움이든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지만,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결국 아웃박스 열심히 하는 거다. 요즘따라 심해진 별 말도 안되는 공격에 좀 쫄아 있었는데, 투지가 불타오른다.


좀더 예민해지자, 그래서 평화롭게 공존하자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제안하기를 멈추지 않을 테다. 불법촬영처럼 민감한 이슈로 수업해도 되냐고 묻는 관리자 설득해서 수업 더 많이 해야 된다. 남학생들이 잠재적 가해자 취급 당해서 기분 나빠하면 어쩌냐는 우려(실제로 들었음)에, 성별 편가르기에 속지 않고 당연하게도 선량한 시민 편에 서는 어린이들을 어른 시각에서 멋대로 폄하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 수업 계속 업데이트 하고, 좋은 수업 많이 만들고, 든든한 교사+시민 동료를 늘려야지.


본인 마음 챙겨야 할 친구가 교장 혐의부인한 거 보고 형량 적게 나오면 어쩌나, 거꾸로 민사소송 걸려오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다. 아오 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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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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