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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08. 2022

부의 양보다 질을 따져보아야 할 때

2018년 봄, 트레바리 국경에서 <국부론>을 함께 읽고 


애덤스미스는 "시장은 항상 옳다, 따라서 거품이 생길 수 없고 혹시 생긴다 해도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것이다. 시장은 만능이니까! 우하하하" 할 줄 알았다. 어렵다고 징징거렸는데, 사실 꽤 재밌었다. 가능하다면 100m쯤 떨어져서 크게 크게 읽고 소화하고 싶었다. 내 세계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우주였다.

경제학에 무지한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눈길 갔던 지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애덤스미스가 사회와 시민에게 가진 희망과 믿음이 굳건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250년 전 영국보다 뒤처져 있다는 것.


명쾌한 논리구조로 설득하는 그의 주장들은 한결같이 인간다움을 향해 있다. 고용주가 이성과 인도주의 정신에 근거해 노동자들의 근면함을 누그러뜨려 능률을 향상시켜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게 그렇다. 몇몇 사악한 독점과 부패가 건강한 사회 발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확신도 그렇다. 공적 낭비와 무분별은 사적인 그것보다 훨씬 유해하지만, 그런 공적 낭비가 사적 절약과 성실에 의해 보상되리라 본 것도 마찬가지다.


경쟁을 제한하거나 상업적 법률을 만드는 일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숙고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그의 말은, 자유로운 경쟁이 약자에게 더욱 공정한 게임이 될 거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는 주로 당위가 아니라 득실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그것이 더 공정하게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된다. 어떤 현상을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득과 손해'로 해석하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대상을 납작하게 이해하는 '좋고 나쁨'과도 달랐다. 복잡한 이해관계 당사자가 누구냐, 영향을 어디까지 미치냐에 따라 입체적으로 상황을 이해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그러니 상호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시너지(예를 들면 영주를 견제하는 군주와 도시 시민들의 동맹과 그로 인한 평화)가 창출하는 가치를 서술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신났을지 짐작됐다.


오랜 과거 속 그가 이 책에서 힘주어 말한 원칙들이 현재 사회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를 테면 절대왕정과 부의 독점이 사회에 이롭지 않다고 비판한 점이나, 취업이 불안정한 직업의 임금이 더 높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나, 고위직과 명예를 위한 귀족들의 배타적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한정상속제 등의 질서는 질서 그 자체가 부당이득을 위한 수단이라는 지적 등이 그것이다.


그가 바라던 '다수의 시민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 진실한 노동으로 사회의 부를 증진시키는 사회'는 지금 잘 굴러가고 있는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지 독서모임에서 함께 점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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