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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08. 2022

자유가 값싼 대가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우리는,

2018년 여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노예의 길>을 함께 읽고

* 2018년 7월 트레바리 국경에서 함께 읽은 책.


평소 자유보다 분배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읽으면서 많이 설득됐다.
 "계획체제는 '무엇이 중요한가?'를 정하는 소수가 만들어짐으로써 가치 위계를 임의로 정하게 된다. 하지만 몇백만 명의 복지나 행복은 하나의 척도로 측정될 수 없다. 집단으로서의 도덕은 강요된다. 허나 인간은 가능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도 돈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원칙과 논리의 영역에서 그는 프로설득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도무지 이걸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자꾸 의문이 생기는 게다. 그래서 하이에크가 생각하는 사회는 어떤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따지는 게 아니라 궁금했다. 가치와 이해가 더 복잡해지고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 땅에서 그의 아이디어는 어떤 식으로 건강하게 발현될 수 있을까.


집단으로서의 시민성을 믿지 않는 건 아쉬운 부분이었다. 일단 시작된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독재와 맹목적인 추종의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는 위협이 거북스러웠다. 계획체제가 어떤 위험을 불러올지를 알려주고 경계하자고 하는 대신, 그러니까 자유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하고 계획과 보장은 해롭다는 주장은 전체주의적 성격과 결이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거칠게 말하자면 해경이 문제면 해경을 없애고, 수학여행으로 사고가 나니 수학여행을 없애자고 하는 느낌)


사회의 복잡도가 높아질수록, 자유를 잘 써먹을 수 있는 집단 바깥의 사람들도 늘어난다. 완전무결한 사회는 없다.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하는, 불합리하지만 지배적인 규칙에 우열이 가려진다면 보장은 필요하지 않나. 예전에 없다 새롭게 등장하는 가치들은 기존의 가치와 어떻게 상충하는지 따져보고 우리 미래에 유익한 방향으로 수정, 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나. 모든 삶은 우선순위를 가르고 선택을 하는 일인데, 잘 선택하고 합의하는 힘을 기르자고 하지 않고 집단에서 우선순위를 가르는 일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균의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다.

그래도 그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안다. 대단히 높은 뜻을 품고 있어도 모든 걸 통제할 권리를 갖게 되었을 때 그 뜻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수많은 역사로 지켜봐왔다. 배부르고 등 따실 때, 처음과 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다 어려운 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훌륭한 선택은 남이 하는 새로운 생각과 시도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그리고 그걸 권력집단이 완전통제하지 못하게 할 문화와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것.


사회의 진보는 새로운 생각, 시도, 재시도, 바꿔서 시도, 또 시도로부터 온다. 집단이 권력을 가지고, 그로부터 많은 규칙이 만들어지고, 비효율과 비합리에도 불구하고 그 거대 시스템의 붕괴를 두려워하면 그 사회에 망조가 드는 거 같다. 하이에크가 경계한 것은 집단과 계획 그 자체보다, 더 나은 것을 받아들이면 기존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경직과 단절을 택하는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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