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서모임에서 <도덕감정론> 함께 읽다
애덤스미스가 주장한 건 '따뜻한 손'
도덕감정론에서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에 더 민감하다고 거듭 이야기하는데, 동의한다. 특히 슬픔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최근에 대구지하철참사 유가족과 99년 미국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글을 읽었다.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증오와 분개심을 표출하더라도 많은 이들의 동료감정(책에서 쓰인 다소 낯선 용어, 동감 정도의 일상어로 읽으시면 된다)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의 수명이 짧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사람들은 타인의 거대한 고통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실제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거리에서 마주치는 세월호 유가족, 원폭 피해자, 가습기 살균제 유가족, 쌍용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 때로 무척 과하다고 느낄 만큼 바쁘고 무심한 도시를 산다.
그래서 책에서 말하기를, 지옥 속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을 깎아 가라앉혀 상대가 안타깝게 여길 만큼 노말하게, 사람들의 보통 언어로 그 아픔을 전하는 자제심을 가진 이를 존경하게 된다고 했다. 그들이 그랬다. 유가족이 처음으로 요구한 것은 지하철을 불연재로 바꾸라는 것이었다. 유족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않는 말이 있단다. “당신도 내가 겪은 일을 겪어봐!”… 대신 유족들은 “당신은 겪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했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 역에서 만난 수많은 피해자들이 그랬다. 애덤스미스의 뜻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유족이 한사코 말린 그 질문을 관찰자인 나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일을 겪었다면...’
콜럼바인 총기난사 이후 오랜 트라우마를 겪은 생존자들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에서 계속 반복되는 테러의 자리마다 쫓아다녔다. 이게 무슨 소용일까 싶은 일들을 필사적으로 부러 하는 마음. 똑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건져올리는 행진을 해나간다. 집단 상담으로 혼자 겪는 수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안심시키고, 더 많은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마침내 가해자의 가족이라 피해자라고 말도 못하는 이들도 껴안는다. 서로가 지고 있는 무게를 알아봐주고 그 무게를 감안해 상대의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액면 아래의 인간성을 헤아리려는 노력, 그런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조율해가며 만드는 도덕률이 우리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준다.
모두에게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회 안에서 안정되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 서로가 동감하는 그 무게를 적절히 맞추려고 자신을 절제하고 서로를 끌어올리는 노력, 그런 것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이라고, 아주 우아하고 아름다운 언어와 지긋지긋할 만큼 탄탄한 전개로 책은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작동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면밀히 들여다보고, 어떤 덕성을 갖추는 데에 필연적으로 닥치는 미혹과 시련,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감내하고라도 갖추고 싶은 고매한 덕성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진득하게 씹어 삼키고 있다. (왜 삼켰다가 아니고 삼키고 있다 냐면 제 3장 돌입이라…)
아래는 2부까지의 필사. 7부까지 있다. 차근차근 업데이트할 예정.
제1장 동감
87 사람의 이기심이 아무리 특징적인 것으로 상정된다고 해도, 인간의 본성 가운데는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며, 설령 타인들의 행복을 지켜보는 즐거움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행복을 자신에게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만드는 일부 원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88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그의 처지에 바꿔놓고, 스스로 모든 동일한 고통을 겪는 것처럼 상상한다. 말하자면 타인의 신체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한 인물이 된다.
90 고통이나 슬픔을 유발하는 상황만이 우리의 동료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이 당사자에게 유발하는 열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직면한 상황을 생각할 때 모든 주의 깊은 관찰자의 마음 속에는 어떤 유사한 정서가 생긴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비극이나 연애소설의 주인공들이 구출될 때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그들의 고난에 대해 느끼는 슬픔만큼이나 진지하며, 그들의 비참함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동료 감정은 그들의 행복에 대해 느끼는 동료감정만큼이나 실질적이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은 성실한 친구들에게 전해지는 주인공들의 감사의 마음에 공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침해를 입히고 방치하며 기만하고자 했던 불성실한 배반자들에게 쏟아지는 주인공들의 분개심에 진심으로 동조한다.
91 일부 열정들은 순식간에 그리고 당사자의 내부에서 이를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지기도 전에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것처럼 보인다. (...) 미소 짓는 얼굴은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유쾌한 대상이 되고, 반면 슬픈 표정은 우울한 대상이 된다.
92 자연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는 그러한 분노의 열정에 공감하는 것에 더 큰 거부감을 가지며, 그 원인이 공지되기까지는 오히려 그 반대 측의 상황에 서는 성향을 가지는 듯하다.
93 따라서 동감은 어떤 열정에 대한 고려로부터 일어나기보다는 이를 야기하는 특정 상황에 대한 고려로부터 일어난다. (...) 비록 타인이 행하는 무례하고 교양 없는 행동에 대해 당사자가 부적절하다는 감각을 전혀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우리는 그의 행동에 얼굴을 붉힌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와 같이 터무니없는 태도로 행동했을 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난감할까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96 상상력에 따른 바로 이러한 환상(사망자에 관한 동감) 때문에 사멸에 관한 통찰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우리의 사망의 경우에 확실히 아무런 고통도 줄 수 없는 그 상황들에 대한 관념이 생전에 우리로 하여금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 본성의 가장 중요한 하나의 원리인 죽음에 대한 공포가 생겨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행복을 억제하는 큰 독소이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불의를 통제하는 위대한 억제책으로서 개인에게는 몹시 괴롭게 하고 굴욕감을 주는 반면에 사회를 방위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제2장 상호 동감의 즐거움
98 어떤 책이나 시를 너무 자주 읽어서 이제 혼자 읽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을 때에도 그것을 동료에게 읽어줌으로써 여전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새로운 것이 주는 여러 매력을 느끼며, 우리에게는 더이상 일어날 수 없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놀라움과 감탄에 우리는 공감한다. 우리들은 그 책이 제시하는 모든 관념을 그 관념을 그 관념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관점보다는 오히려 그에게 나타나는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즐거움을 북돋운 그의 즐거움에 동감함으로써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98 친구들이 나의 환희에 대해 표명하는 동감은 진정으로 나의 환희를 북돋움으로써 나에게 기쁨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비애에 관해 표명하는 동감은 이 비애를 생생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나에게 그 어떤 비애를 줄 수는 없다. 그런데 동감은 환희를 활기차게 만들고 비애를 경감시킨다. 동감은 만족의 또 다른 원천을 제공함으로써 환희를 활기차게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 마음이 그 비애의 순간에 거의 유일하게 수용할 수 있는 유쾌한 기분을 심어줌으로써 비애를 경감시킨다.
99 따라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는 자신의 유쾌한 열정보다는 불쾌한 열정을 친구들에게 소통하고자 훨씬 더 노심초사하고, 유쾌한 열정에 대한 동감보다는 불쾌한 열정에 대한 친구들의 동감에서 더 많은 만족을 도출하게 되며, 불쾌한 열정에 대한 동감의 결여 때문에 훨씬 더 큰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에 더 민감하다.
101 사랑과 환희라는 유쾌한 열정은 아무런 보조적인 즐거움이 없어도 마음을 만족시키고 뒷받침할 수 있다. 비애와 분개심과 같이 쓰라리고 고통스러운 정서는 동감이 주는 치유적인 위안이 한층 더 강력하게 필요하다.
101 어느 사안에서 주요 관심을 갖는 당사자가 우리의 동감에 즐거워하고 동감의 결여에 기분이 상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에게 동감할 수 있을 때 기쁨을 느끼고 동감할 수 없을 때 마음이 상하게 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축하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의 모든 열정과 관련하여 우리가 완전히 동감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 가운데 발견하는 즐거움은 그가 처한 상황을 보고 우리가 느끼는 슬픔의 고통스러움을 보상하고도 남는 것 같다.
제3장 우리의 성정과의 일치 또는 불일치에 근거하여 타인의 성정의 적정성 또는 비적정성을 판단하는 방식
103 반대로 이상과 같은 여러 경우에 (분개하거나 기뻐하거나 깔깔 웃거나) 내가 느끼는 것과 같은 그러한 정서를 조금도 느끼지 않거나 나의 감정에 비례적으로 호응하는 어떤 정서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감정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 (...) 이 모든 경우에서 그의 감정은 그가 나의 감정을 판단하는 데 활용하는 기준과 척도가 된다.
106 우리는 타인이 행하는 사랑, 비애, 분개심이 과도하다고 비난할 때, 그 과도함이 경향적으로 초래하는 파괴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이를 유발한 원인이 사소했다는 점을 동시에 감안한다. 말하자면 그가 편애하는 사람의 공로는 그리 대단하지 않고, 그의 불운이 그렇게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며, 그의 격노는 그처럼 강렬한 열정을 정당화할 정도로 특이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그럴만했다고 판단한다면 감정 표출이 과해도 이해한다, 안 그러면 이해 못한다는 소리)
제4장 동일 주제의 연속
107 그러나 이처럼 감정의 일치가 결여된 일이 생겨도, 내게 일어난 불운이나 침해처럼 이해관계가 있는 대상에서 벌어진 일과 비교해서 나 자신 및 동료 어느 쪽에도 전혀 관계가 없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대상에서 벌어질 때 훨씬 더 쉽사리 무시될 수 있다. 설령 여러분이 내가 감탄하는 그림이나 시 혹은 심지어 철학체계마저 경멸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 때문에 서로 다툴 위험은 거의 없다. 당연하게도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것들에 대해 별 이해관계가 없기 땜누이다. 그러한 것들은 전부 우리 모두에게 아주 대수롭지 않은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견이 서로 대립할 때도 우리의 감정은 여전히 아주 동일할 수 있다.
(...) 그러나 여러분이 내가 겪고 있는 불운에 대해서나 나를 괴롭히는 비애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감을 가진 동료감정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또는 여러분이 내가 당한 침해에 대해서나 나의 넋을 잃게 만드는 분개심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감을 가진 의분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주제들을 가지고 대화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수 없게 된다.
112 이러한 관념이 비록 곤란을 겪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과 다소 유사한 열정을 상상하는 것까지 방해하지는 않더라도, 수난을 겪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격렬함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당사자는 이 점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더욱 완전한 동감을 열렬히 희구한다. 그는 관찰자와 자신의 감정의 완전한 일치 이외에는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어떤 위안을 갈망한다. 모든 측면에서 볼 때 격렬하고 불쾌한 열정에서도 관찰자의 정서가 자신의 정서와 박자를 맞추고 있음을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을 구성한다.
그러나 그는 관찰자가 동조할 수 있는 정도까지 그의 열정을 낮춤으로써만 이러한 감정의 일치에 도달하기를 비로소 희망할 수 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의 정서와 조화하고 일치하는 점까지 감정을 낮추기 위해서는, 말하자면, 그는 그러한 감정이 본래 갖고 있는 음색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해야 한다. (...) 그렇지만 관찰자와 당사자가 갖는 이 두 가지 감정은 사회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충분한 정도의 상호 간 일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 감정들은 동조음은 결코 아니지만 화음일 수 있으며, 이것이 사회에서 필요하거나 요구되는 모든 것이다.
(...) 관찰자들이 부단히 당사자의 상황에 서서 그가 느끼는 것과 유사한 정서를 상상하는 것처럼, 당사자 역시 부단히 관찰자들의 상황에 선 후 이들이 세상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알고 있는 그런 어느 정도의 냉정함을 견지하면서 자신이 겪는 운명의 기복을 상정하려고 한다.
(...) 이렇듯 반추를 통해 당사자는 관찰자를 상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가 느꼈던 본래의 감정, 즉 솔직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관찰자는 어떠한 감정을 느낄까 상상하기 이전에 당사자가 느꼈던 본래의 감정의 격렬함은 필연적으로 완화된다.
따라서 이렇듯 마음의 동요는 거의 사라지게 되고, 한 친구가 같이 있게 됨으로써 마음은 어느 정도의 평온과 차분함을 회복하게 된다. 그 친구가 우리와 함께하는 순간에 마음은 일정한 정도 평정을 찾고 침착해진다. 우리는 즉시 그가 우리의 상황을 바라볼 관점을 상정해 본 후, 그러한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동감의 효과는 순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의 동감과 비교해서 그저 안면 정도만 있는 사람의 동감이 훨씬 적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친구에게 펼쳐 보일 수 있는 모든 세세한 사정을 통상 안면 정도만 있는 사람에게 공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의 면전에서는 더 평온한 것처럼 행동하며, 그가 기꺼이 고려하려고 하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윤곽에 우리의 사고를 맞추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낯선 사람들의 집단한테는 훨씬 더 적은 동감을 기대한다. 그들의 면전에서 우리는 훨씬 더 평온한 것처럼 행세하며, 그 특정 집단이 함께 동조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정도까지 우리의 열정을 낮추려고 항상 노력한다. 이러한 행동이 가장된 외형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
그러므로 사교와 대화는 마음이 어느 순간에 불행히도 평정심을 잃더라도 그것을 원래의 위치로 회복시키기 위한 가장 강력한 구제 수단이다. 또한 이것들은 자기만족과 즐거움에 아주 필요한 평정과 행복의 기분을 유지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부제 역할을 한다. 집에 틀어박혀서 비애나 분개심을 곰곰이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칩거와 사색의 인간은, 설령 인간애, 관대함, 유머감각이 더 나은 경우도 종종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평정심을 지닌 경우는 드물다.
제5장 호감을 주는 덕성과 존경할 만한 덕성
115(관찰자 당사자가 서로를 배려하려는 태도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덕목이 성립한다. 부드럽고 온화하며 호감을 주는 덕목, 솔직한 겸손과 관대한 인간애의 덕목은 전자 위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위대하고 경외심을 일으키며 존경할 만한, 자기 부정의 덕복, 자기 통제의 덕목, 우리 본성의 움직임을 우리 자신의 존엄, 명예 및 행위의 적정성의 요구에 따르도록 하는 그러한 열정 통제의 덕목은 후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서론
제1장 신체에서 유래한 열정
127 (재산 잃은 사람의 신체적 고통은 없음, 신체적 고통 있더라도 그건 그 뒤 벌어질 상황에 대한 상상 때문)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훨씬 강하게 그에게 동감하는 이유는 그의 신체를 그대로 본떠서 우리의 신체를 만드는 것보다는 그의 상상력을 그대로 본떠서 우리의 상상력을 형성하는것이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한쪽 다리를 잃는 것은 애인을 잃는 것보다도 더욱 실질적인 재난이라고 간주된다. 그렇지만 만일 희곡의 결말이 신체의 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막이 내려진다면 이는 우스꽝스러운 비극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해 애인을 잃는 정도의 불행은 비록 하찮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많은 멋진 비극의 소재가 되어왔다.
신체적인고통만큼 손쉽게 망각되는 것도 없다.(...) 하지만 친구의 경솔한 말 한마디가 더 지속적인 불쾌감을 야기할 것이다. 이것이 만들어내는 고뇌는 결코 말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제2장 상상력의 특수한 경향이나 습관에서 유래한 열정
133 (사랑) 이러한 사안에서 우리의 관심은 어느 특정한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희망, 두려움, 고통 등과 같이 우리의 관심과 대상이 되는 다른 여러 열정을 야기하는 어느 상황에 있다. 항해일지의 묘사에서 이루어진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굶주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굶주림이 야기하는 고통이다. 비록 우리가 연애하는 사람의 애정에는 적절히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가 연애를 통해 얻게 되는 낭만적인 행복의 기대감에는 쉽게 동조한다.
136 그런데 아주 과도할 정도로 그런 대상의 가치에 비례하지 않는 모든 열정 가운데서도 사랑만은 가장 나약한 사람에게조차도 우아하거나 유쾌한 무언가를 그 내부에 지닌 것으로 여겨지는 유일한 열정이다. (...) 사랑에는 인간애, 관대, 친절, 우정, 존경 등이 농후하게 혼재되어 있다. 이후 즉시 설명하겠지만, 모든 다른 열정에 비교할 때 이러한 열정은 어느 정도 과도한 경우에조차 우리가 동감하는 경향이 가장 크다.
137 (...) 같은 이유 때문에 자신의 친구, 자신의 연구사항,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어느 정도의 절제가 필요하다. 이 모든 주제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과 같은 정도로 우리 동료의 관심을 끈다고 기대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절제가 결여된 사정 때문에 사람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의 사람에게 결함이 있는 동반자가 된다. 철학자는 철학자에게만 좋은 친구가 되고, 한 클럽의 회원은 아주 적은 무리인 자신의 동료에게만 좋은 동반자가 된다.
제3장 비사회적인 열정 (증오와 분개심)
138 분개심이 우아하고 유쾌한 것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다른 열정보다도 훨씬 더 자연적인 수준 이하로 억제되고 낮추어져야 한다.
139 그런데 이러한 증오와 분개심의 열정은 인간 본성의 특성상 필요불가결한 부분으로 간주된다. ( 무기력하거나 무관심, 무감각에 공감 못하고, 적대자의 무례함에 분노하는 것만큼 이 비열함에도 분노) 그런데 이러한 열정이 어떤 한 개인을 모욕하거나 침해하는 행위를 위험하게 함으로써 비록 개인적 차원에서 그 효용이 인정받거나, 또는 후술되듯이 정의와 공정한 사법집행의 수호자로서 공공에 대한 그 효용이 적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이 열정 자체에는 불유쾌한 무언가가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이 타인에게 나타난다면 이는 우리의 혐오의 자연적인 대상이 된다.
143 그러나 증오와 분개심이 표현되는 경우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분노에 가득차서 귀에 거슬리고 소란스러우며 부조화를 이루는 소리는 먼 곳에서 들려올 때 우리에게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로 절규하는 사람에게 하듯이 바로 달려가지 않는다. (...) 증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악의의 단순한 표현은 이를 표현한 사람에게만 악의를 고취할 뿐 어떤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 이처럼 한층 더 불쾌하고 호감을 주지 못하는 여러 정서는 사람들 간에 서로 거리를 두도록 만드는데, 이 열정들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비교적 드물게 서로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의 의도인 듯하다.
(...) 증오와 노여움은 선량한 사람의 행복에 최대의 독소가 된다. (...) 이러한 열정들은 행복에 불가결하고 감사와 사랑이라는 대조적인 열정에 의해 가장 잘 촉진되는 마음의 침착함과 평정을 파괴한다.
관대하고 인정 있는 사람이 가장 유감스럽게 느끼는 것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배신과 배은망덕으로 인해 잃게 되는 재물의 가치가 아니다. 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배신과 배은망덕이 그들에게 실행되었다는 관념이다.
146 넓은 도량 또는 사회적 지위와 품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고려만이 불쾌한 열정(증오와 분개심)의 표현을 고상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동기다. 이 동기가 우리의 품격과 태도 전반을 확실하게 특징지어야 한다. 이러한 품격과 태도는 필히 단순하고 숨김이 없으며 솔직해야만 하며, 과시 없이 결연하고, 오만 없이 고상해야 한다. 그리고 성급한 언동과 천박한 독설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가해자에게조차 관대하고 진솔하며 모든 적절한 고려로 충만해야 한다.
제4장 사회적인 열정
149 이처럼 호감을 주는 열정은 비록 과도하다고 인정될 때조차 결코 혐오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우정과 인간애가 지닌 취약성에서조차 유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 아마 그 본성의 연약함 때문에 지나치게 온화하기만 한 어머니, 지나치게 응석을 받아주는 아버지, 지나치게 관대하고 다정다감한 친구를 우리는 때때로 일종의 연민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연민에는 애정이 섞여 있으며, 만일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잔혹하고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를 증오와 혐오감을 가지고 볼 수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과도한 애정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비난할 때에도 항상 관심, 동감, 친절로써 그렇게 한다.
극단적인 인간애를 지닌 성격은 속수무책이기 때문에(...)ㅋㅋㅋ
우리는 단지 이 과도한 인간애가 지금 세상에 적합하지 않음을 애석해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세상은 이를 누릴 정도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의 사람은 분명히 교묘하게 가장한 거짓에 따른 배신과 배은망덕의 희생물이 됨과 동시에, 일반적으로 어느 다른 사람보다도 경험해서도 안 되고 감내하기도 가장 어려운 그런 무수한 고통과 불안에 분명히 노출되기 때문이다.
증오와 분개심에 대해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한 혐오스러운 열정을 일으키는 성향이 매우 강렬한 사람은 그 때문에 보편적인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되며, 우리의 생각으로는 야수와 마찬가지로 모든 시민사회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
제5장 이기적인 열정
153 습관적인 쾌활함보다 더욱 우아한 것은 없으며, 이는 일상생활 속의 흔한 사건들이 제공하는 모든 소소한 즐거움에서 항상 특별한 흥미를 느끼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쾌활함에 쉽게 동감하며, 그러한 감정은 우리에게 동일한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모든 사소한 일에서도 이 행복한 성향을 부여받은 사람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유쾌한 측면을 우리가 느끼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유쾌함의 시기인 청년기가 매우 쉽게 우리의 애착을 사로잡는다.
(...) 비애에 대해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사소한 고민거리는 아무런 동감도 자극하지 않지만, 깊은 고뇌는 최대의 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사소한 일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어느 친한 친구와 오전에 만났을 때 그가 인사하지 않은 점을 또한 자신이 이야기하는 내내 동생이 콧노래를 부른 점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비록 저간에 나름의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러한 사람들이 동감을 많이 얻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환희는 즐거운 정서이고, 가장 사소한 경우에라도 우리는 기꺼이 이러한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기심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는 경우라면 언제든지 타인의 환희에 쉽게 동감한다. 그러나 비애는 고통스러우며, 이것이 우리 자신의 불행일 때 마음은 당연히 그것에 저항하며 뒷걸음질친다.
(...) 그뿐만 아니라 세상사람들에게는 타인의 미세한 불안감에 동감하는 것을 방해하고,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어떠한 악의가 존재한다. 타인을 험담하거나 우리의 동료가 곤란을 겪고 질책 받으며 괴롭힘 당할 때 그가 작은 곤혹을 치르고 있음을 지켜보는 것에서 우리는 즐거움을 느낀다.
좋은 집안의 사람은 어떤 작은 사건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고통을 대개 감춘다. 그리고 지극히 사회 지향성이 큰 사람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한 모든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으로 돌려버린다. 그는 자신과 관련되는 모든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가를 고려하는 데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제1장 환희에 대비한 비애에 대한 동감은 보통 훨씬 활기찬 감각이지만 당사자의 본원적 감정보다는 강도 면에서 미약하다
159 우리가 완전히 동조할 수 없는 과도한 비애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 관대함을 보인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관찰자의 정서와 완전히 조화하고 일치를 이루기에 앞서서 자신의 정서를 낮추는 데 얼마나 비상한 노력이 요구되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설령 그가 이처럼 감정조절에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를 너그러이 봐준다. 그러나 우리는 환희의 무절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대함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완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까지 환희를 억제하는 데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161 환희에 동감하는 것은 호감을 준다. 그러나 비애에 동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며, 우리는 언제나 마지못해서 이 감정에 공감한다. (...) 당사자는 우리가 주저하며 공감할 것 같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두려움과 머뭇거림을 가지고 자신의 비애를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비애를 절반이나 억제하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의 이러한 몰인정함 때문에 고뇌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 수치심을 느낀다. 그러나 환희와 성공으로 야단을 떨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음).
제2장 야심의 기원 및 신분의 구분
168 세상 사람들이 비애보다는 환희에 한층 더 동감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부유함을 과시하고 가난을 숨기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에 깊이 공감해주지 않고 그것은 언짢은 일이므로)
이 세상의 모든 고생과 소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인가? 탐욕과 야망, 부와 권력 및 탁월함을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인가?
(부자들이 가난한 노동자의 삶으로 내몰리는 걸 죽기보다 불유쾌해하는 이유가 뭘까를 길게 설명)
사회의 서로 다른 모든 계층에서 나타나는 경쟁심은 도대체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생활조건의 개선이라는 인생의 거대한 목적에 의해 우리가 의도하는 유리함은 무엇인가?
170 타인에 의한 동감, 호의, 승인 속에서 관찰, 주의, 주목받는 것이 바로 부유함에서 우리가 도출할 수 있는 전적인 이익이다. 안락이나 기쁨 때문이 아니라 허영심이 우리가 부유함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빈곤을 부끄러워한다.(...) 비록 무시되는 것과 승인받지 못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해도, 우리가 무명의 암흑에 싸여 명예와 승인이 주는 환한 빛에서 벗어나 있는 이상, 어느 누구에게서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필연적으로 인간 본성에서 가장 유쾌한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가장 열렬한 욕구를 좌절시키는 것이다.
(...)
171 높은 지위와 명성을 지닌 사람은 세상의 이목을 끈다. (이목 끄는 얘기 길게 ~”모든 사람의 주목과 동료 감정의 대상이 될 기회를 가진다”). 이것이야말로 여기에 부수되는 제약과 자유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위대함을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고, 또한, 세상 사람들의 견해로는, 이를 추구할 경우에 겪게 되는 모든 고생, 모든 근심, 모든 굴욕을 보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이러한 위대함을 획득하고나면 영원히 상실되는 모든 여가, 모든 안락함, 근심 없는 모든 안전보장 역시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는다는 것이다.
173 부자와 권세가가 지닌 모든 열정에 동조하고 싶어하는 세상 사람들의 성향 위에 모든 신분의 구분과 사회의 질서가 기초하고 있다. (...사람들이 권세가에게 아첨하는 것을 중히 여긴다는 이야기 줄줄)
(권위를 가진 자는 계속 그런 품위와 호의를 사는 덕성을 갖추기 쉬운 조건, 그래서 계속 세상을 통치하는 위치 차지하기 쉬움)
182 여러분은 본인이 가진 자유를 궁정의 기품있는 노예상태와 맞교환하지 않고, 그 대신 구속받지 않고 두려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려는 결의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가?
186 인간의 덕성은 고통, 빈곤, 위험, 죽음보다 질적으로 뛰어나다. 또한 인간의 덕성은 이러한 것들을 멸시하는 데 커다란 노력을 들일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사람이 겪는 비참함이 모욕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포로가 되어 개선행렬에 들어오는 것은 인간의 덕성이 지닌 굳은 지조가 한층 더 좌절하기 쉬은 상황이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경멸당하는 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외적인 해악은 감내하기가 쉽다.
제3장 부자와 권세가를 존경하는 반면 빈자와 하위계층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성향으로 야기되는 도덕감정의 타락
193 이러한 선망의 지위에 도달하기 위해서 재산을 도모하는 지망자들은 덕성에 이르는 길을 너무나 빈번히 포기한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재산에 이르는 길과 덕성에 이르는 길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심에 찬 사람은 자신이 추진해온 화려한 여건에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감탄을 좌우할 수 있는 많은 수단을 소유하며, 대단히 탁월한 적정성과 품위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게 되므로 그의 미래 행위의 광채가 그런 높은 지위에 이르는 동안 활용한 여러 단계의 어리석음을 완전히 숨기거나 말소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득의만면해한다.
(...) 가장 자랑스러워보이는 권세의 모든 화려하고 속된 현란함 속에서도, 권세가와 식자층의 부패하고 비열한 아첨 속에서도, 비록 가장 어리석지만 가장 순진무구한 일반 대중의 환성 속에서도, 그리고 모든 정복의 자부심과 승리한 전쟁의 개선 속에서도 그는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이라는 복수의 여신들의 추적에 여전히 은밀하게 시달린다.
서론
199 세상 사람들의 행위와 품행에 귀속되는 자질 가운데 적정성이나 부적정성, 예의바름이나 무례함과는 구분되면서 어떤 특별한 유형의 승인과 부인의 대상이 되는 일련의 자질이 존재한다.
제1장 감사의 적절한 대상은 보상 받아 마땅하고, 분개심의 적절한 대상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201 친숙함과 평소 반복되는 승인으로부터 생기는 애정과 존경은 필연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유쾌한 정서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행운에 기쁨을 느끼게 하고, 따라서 이를 증진시키기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한다.
203 우리에게 아주 큰 침해를 준 사람이, 예컨대 우리의 아버지나 형제를 살해한 사람이 그후 곧 열병으로 죽거나 이와는 다른 범죄를 저질러 교수대로 보내질 때 비록 우리의 증오의 감정은 진정된다고 해도 분개심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분개심이란 것은 우리에게 저지른 그 특정한 침해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그가 처벌받기를 바라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방법으로 처벌받기를 바라도록 만든다.
제2장 감사와 분개심의 적절한 대상
제3장 후원자의 행위가 승인되지 않을 때에는 수혜자가 갖는 감사에 동감하기 쉽지 않고, 침해자의 동기가 부인되지 않을 때에는 피해자의 분개심에 동감하기가 쉽지 않다
제4장 전술한 세 장의 총괄
감사, 분개심 모두 적정성 속에서 합당한 동감을 얻을 수 있다.
제5장 공로의 감각 및 과오의 감각에 대한 분석
221 자기보존과 종족번식은 자연이 모든 동물을 창조할 대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 위대한 목적이다. 인간은 이 같은 목적을 추구하려는 욕구와 그 반대의 목적에 대한 반감, 생명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공포, 종족의 존속과 영속성에 대한 욕구와 종족의 완전한 소멸 의도에 대한 반감을 부여받았다.
222 공로에 관한 우리의 감각은 빈번히 이와 같이 가상적인 동감 중의 하나에 기초하고 있다. (그래서 당사자의 감정과 다른 걸 느낄 수도 있음)
제1장 두 가지 덕성의 비교
자혜: 자애롭게 베푸는 은혜
자혜를 실천하지 않는 건 적극적 침해를 가한 것은 아님, 처벌 대상 아니다. 낙담시킬 수는 있지만.
225 우리는 감사의 책무를 거론하지만, 자비의 책무라든가 관용의 책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225 분개심은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자연에 의해 우리에게 부여된 듯하다.
(동일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는 공포심을 갖게 함)
그러나 그 준수 여부가 우리의 의지와 자유에 맡겨져 있지 않고 강제력으로 강요될 수 있으며, 그것을 위반할 때에는 분개심을 불러와 결국은 처벌의 대상이 되는 또 다른 덕목이 있다. 이러한 덕목이 정의다. 정의의 위반은 침해다. 침해는 본래 승인받지 못하는 여러 동기로부터 어느 특정인에게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가해를 입힌다. 그러므로 그것은 분개심의 적절한 대상이며, 분개심의 자연적 귀결인 처벌의 적절한 대상이기도 하다.
226 (홈의 주장) 우리는 우정, 자비, 관용에 의거하여 유쾌하게 행동하는 경우와 비교할 때 정의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경우에 한층 더 엄격한 의무감을 느낀다. (...) 다시 말해서 최고의 적정성을 가지고 모든 세상 사람의 승인하에 정의의 규칙을 준수하게끔 강요하기 위해 강제력이 활용될 수 있지만, 다른 덕목들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할 목적으로는 강제력이 동원될 수 없는 점에 대해 우리는 자각하고 있다.
230 “모든 사람은 행한 대로 대접받을 것이라는 말대로, 응보는 자연이 우리에게 명령한 위대한 법칙인 듯하다. 우리는 자혜와 관용의 덕성이 관대하며 자애로운 사랃믈에게 마땅히 응분의 몫으로 주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인간애의 감성을 향해 마음을 전혀 개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동료에게도 애정을 받지 못하고, 사회 속에서 살도록 허용되더라도 어느 누구도 그들을 보살피거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전혀 없는 거대한 사막에서 사는 것처럼 방치되어야 한다.”
232 그러나 비록 우리 이웃의 파멸이 우리의 매우 작은 불행과 비교해 우리에게 훨씬 적은 영향을 주더라도, 우리의 작은 불행을 막거나 심지어 우리의 파멸을 막기 위해서조차 그 이웃을 파멸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우리가 당연히 우리 자신에게 비쳐지는 관점에 따르는 것보다는 우리가 당연히 타인에게 비쳐지는 관점에 따라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은 다 제가 우선이지만, 그런 마음에 세상이 동감을 하진 않을 것이므로 그렇게 공언할 용기는 없다, 타인을 의식해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음을 의식하는 관점에서 그 자신을 바라볼 때, 세상 다른 사람에게는 그 자신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는 다수 대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그는 알게 된다.
234 ~ 따라서 정의의 가장 신성한 법, 다시 말해서 그것을 위반했을 때 최고로 강력한 보복과 처벌을 불러오는 법은 우리 이웃의 생명과 인격을 보호하는 법이다. 그다음은 그의 재산권과 소유물을 보호하는 법이고, 마지막이 소위 그의 개인적 권리나 다른 사람과 한 약속으로부터 그에게 귀속되는 응분의 몫을 보호하는 법이다.
235 그의 범죄에 대한 기억 때문에 세상 동료들의 마음은 그에 대한 모든 동료감정을 차단하고 있다. 그의 세상 동료들이 그에 대해서 품고 있는 감정이야말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236 회한은 과거 행위의 부적정성을 느끼는 데서 비롯되는 수치심,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비애, 그 행위로 고통당한 사람에 대한 연민, 모든 이성적 존재의 마음에서 타당하게 발생한 분개심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오는 처벌의 두려움과 공포로 이루어진다.
241 사람들은 또한 자신의 이익이 사회의 번영과 연관되어 있으며, 행복뿐만 아니라 아마 자기존재의 보존도 사회의 보존에 의존한다는 점을 역시 알고 있다. (따라서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에 혐오)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붕괴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불의의 출현은 사람들에게 경고를 주며, 만일 그대로 방치하면 사람들에게 귀중한 모든 것을 빠르게 파괴시키는 사태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급히 움직인다.
제2장 정의의 감각, 회한의 감각 및 공로의 의식
제3장 이러한 자연의 구조가 수반하는 효용
247 관찰자가 이상과 같은 서로 다른 처벌을 바라보면서 느기는 감정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은 전자(보초감시관)의 처벌에 대한 승인이 후자(살인자)의 처벌에 대한 승인과 결코 동일한 원리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전자는 안타까운 희생자라 느끼고 후자는 환호)
서론
249 어떠한 행위에 주어지는 응분의 칭찬이나 비난을 판단하는 문제는 다음의 세 가지 경우 중 어느 하나에 귀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첬재는 그 행위가 비롯되는 마음의 의도 내지는 성정이고, 둘째는 이와 같은 성정이 야기하는 신체의 외면적 행위나 움직임이며, 마지막은 현실에서 실제로 그 행위로부터 기인하는 유익하거나 유해한 결과다. (의도, 행위, 결과)
제1장 운명이나 우연이 발휘하는 이러한 영향의 원인
253 그러나 어떤 사물이 감사나 분개심의 적절한 대상이 되려면 그것은 쾌락이나 고통의 원인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제2장 운명이나 우연이 발휘하는 이러한 영향의 범위
제3장 감정의 불규칙성이 의도하는 목적인
용서
내 마음이 편안해짐
상대에 대한 두려움애서 벗어난다 (용서받아야 할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마음 속 응어리로 오는 질병→ 버거운 감정을 내려놓고 신체적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함.
제1장 자기승인 및 자기부인의 원리
제2장 칭찬의 애호와 칭찬 받을 만한 속성에 대한 애호 및 비난의 두려움과 비난받을 만한 속성에 대한 두려움
제3장 양심의 영향과 권위
제4장 자기기만의 본질 및 도덕의 일반원칙의 기원과 활용
제5장 도덕의 일반원칙의 영향과 권위, 또한 이것은 당연히 신법으로 간주된다
제6장 어떤 경우에 의무감은 마땅히 유일한 행위원리며, 또한 어떤 경우에 다른 동기와 협력해야 하는가?
제1장 효용이 기예 작품에 부여하는 아름다움 및 이러한 유형의 아름다움이 갖는 광범위한 영향
제2장 효용이 사람의 성격과 행위에 부여하는 아름다움 및 이러한 아름다움의 지각이 승인의 본원적 원리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 정도
제1장 관습과 유행이 아름다움과 추함의 관념에 미치는 영향
서론
제1장 자연이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도록 권고하는 여러 개인의 순서
제2장 자연이 우리의 자혜를 베풀도록 권고하는 여러 사회집단의 순서
제3장 보편적 자혜
서론
제1장 덕성을 적정성에서 구하는 철학체계
제2장 덕성을 신중에서 구하는 철학체계
제3장 덕성을 자혜에서 구하는 철학체계
제4장 방종의 철학체계
서론
제1장 승인의 원리를 자기애로부터 도출하는 철학체계
제2장 승인의 원리를 이성으로 보는 철학체계
제3장 승인의 원리를 감정으로 보는 철학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