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국이 아닌 해외 생활에 대한 선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답답하고 힘겨운데, 해외에서는 더 나은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같은 것 말이다. (해외에는 다양한 국가가 있으니 한국보다 1인당 GDP 가 높은 나라로 한정하겠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특히 더 큰 무대에서 경쟁하고 성장하는 삶이 당시의 내 눈에 더욱 멋져 보였다.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는 데 이유는 아래와 같다.
먼저 사람들이 갖는 이 선망은 보통 비교하는 두 대상을 동일 선상에 두고 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매우 잘 아는 것(한국)과 잘 알지 못하는 것(외국)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의 브리핑을 듣고 또 경험하며 우리는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합리함 - 경제 저성장, 낮은 출산율, 빈부 격차, 기형적 사교육, 사회 내 위계질서, 집값문제, 정치 갈등,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 등 -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반면 비교 대상이 되는 외국의 어떤 국가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지식과 이미지(e.g. 미국 특정 기업들의 자유로운 문화, 서유럽의 예술을 향유하는 문화, 북유럽의 유토피아 같은 복지제도)만을 머릿속에 갖고 있고, 총체적인 그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경우는 적다. 이는 당연할 수밖에 없는 데, 국민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를 하고 세금을 내고 투자를 하고 복지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기사에서 나오는 통계와 텍스트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상과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의 비교가 성립되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해외 생활을 통해 느낀 경험을 공유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느꼈던 많은 문제들은 - 적어도 내가 경험한 많은 것들은 -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존재했다. 다만 그 형태가 다를 뿐. 회사 생활을 예로 들면, 한국 회사에서의 엄격한 위계질서와 실적 압박, 비효율적인 보고 문화를 다른 해외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성과주의를 기반에 둔다고 할지라도 직급이 존재하는 조직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모르는 부분 중 하나는 한국은 노동법으로 인해 노동자의 권리가 꽤 큰 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경직적일 수도 있겠다.) 한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직원을 해고할 수 있는 해외 기업의 측면은 보지 않고, 자유롭고 수평적인 문화만을 특징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보다 해외 생활이 무조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결국 삶의 만족감이란 일상의 행복에서 오는 것이고, 일상의 행복은 내가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장소보다는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가 내 일상의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물론 해외에서도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인과만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나라와 깊은 수준의 동화가 이뤄질 수 있으려면, 그 국가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NATIVE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철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개인을 집단보다 우선시하는 문화를 즐길 수 있으려면,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인사이트를 를 그들의 기준에서도 세련된 언어와 화법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반이 되지 않고서는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나라에 간다고 해도 그곳에 깊이 스며들지 못할 것이고 소외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단순히 한국이 좋고 싫은 양극의 논리에서 벗어나, 나의 성향과 추구하는 삶의 방식, 사람들과의 관계, 문화와 언어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선택과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