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2년 전부터일까. 언젠가부터 어떤 모임에 나가든지 MBTI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본인의 mbti는 물론 다른 사람의 mbti를 맞추는 것, 나아가 본인과 연애하기 좋은 mbti, 업무를 할 때 손발이 맞는 mbti 등 mbti 궁합까지 줄줄 외우고 다니기도 한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mbti를 기준으로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고 하니 이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mbti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이러한 mbti 유행은 우리의 무미건조한 삶에 재미를 더 해준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처음 상대를 만나는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은 질문이 되어주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다. 더욱 긍정적인 측면은 mbti 덕분에 우리 모두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수준의 이해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음 왜 여행을 함께 가는 데 나만 노력하고 있지?‘라고 의아해하기만 했다면, ’아 이 친구는 J가 아닌 P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라고 이해해 주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 어떤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조언보다도 도움이 되는 타인에 대한 이해 방식인데,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무조건적인 수용법을 전 국민이 이렇게나 쉽고 간편하게 체화하게 되었으니 사회적 갈등이 줄어드는 데 이바지할 것만 같다.
한편 내가 생각하는 mbti의 맹점은 이 framework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본인의 혹은 타인의 모든 언행의 원인을 mbti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 나는 T 이기 때문에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해 ‘ ‘나는 S 이기 때문에 이런 것이 불편한 거야’와 같이. 그래서 P가 아닌 J가 필요한 상황에도 본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유만 찾고, 다른 방법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생기는 데 그럴 때면 ‘과연 mbti 이론이 효용이 무엇인가?’ 반문하게 된다.
실제로 인생을 살다 보면, 그리고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상황들 속에서 단 하나의 성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E/I, S/N, T/F, P/J 각각의 것이 아닌 때로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 어쩌면 이 8개로 축약된 기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어떤 부분이 필요하기도 하다. 실제로 mbti 테스트가 그러하듯, 흑백이 아닌 스팩트럼 선상에서 어떠한 기질/성향이 조금 더 발달하였는지 보여주는 것일 뿐이므로 4가지 약자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잠재적인 측면들을 간과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이론이든 그것이 나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나의 생각을 한 단계 더 깊게 혹은 폭넓게 해 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어야 하고, 그 이론을 알기 전과 후의 내가 아주 조금은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적용해본다면 mbti를 통해 나와 타인에 대한 <적극적 수용>도 좋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금 더 발전적인 자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