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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Jul 16. 2023

나의 3번째 인도인 상사

싱가포르 근로자 일기

한국을 떠나 해외 생활을 하며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냐고 한다면 날씨, 언어, 음식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크게 와닿는 변화는 일상에서 교류하는 사람들이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2019년부터 싱가포르에서 살고 있으니 벌써 해외 생활 5년 차가 되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커리어만 압축해 본다면 총 2개의 회사에 근무했고, 3명의 보스를 만났다. 특이한 것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나라임에도 3명 모두 인도인이었다는 점이다.


“나 전생에 인도랑 인연이 있었나봐“ 친구들에게 농담조로 얘기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여기서 Direct boss 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크다. 업무 조정, 인사고과는 물론 연봉 상승률도 보스가 직접 결정한다. 이런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 상사와의 fit 이 너무나 중요한 것은 두말해 잔소리다.


그래서 나는 의지와 무관하게(?) 5년간 인도인들과 아주 긴밀하고도 밀접하게 지냈다. 14억 인구의 나라를 고작 3명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내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공통점으로는 먼저 자기 확신의 레벨이 굉장히 높다는 점이다. 본인이 왜 이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이고, 본인 경쟁력은 어떤 것이며, 미래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등등 그게 허풍이든 무엇이든 간에 하여튼. 그래서 이런 확신으로 그들은 아무도 시키지도 않은 자리에서 리더 역할을 자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루는 내 보스가 cross functional 팀들과의 미팅에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problem solver 임을 자처하고 있었는데, 나는 속으로 ‘대체 왜 저렇게 나서는 거야? 우리 팀 일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스는 반대로 회의에서 쭈뼛쭈뼛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던 지 피드백 세션 때 아래와 같은 말을 해주었다.


“Behave as if you were a leader. Then people will think you are a leader”


“You have much more power than you think. You can do whatever you think is needed and I will support you. So don’t limit anything”


직급이 하나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상사가 이 말을 한다면 아마 한국에서는 조금 오글거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확신을 갖고 말하니까 그럴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하하. 그리고 사실 지금 느끼는 것이지만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서부터라도 이런 마인드셋을 가지고자 하면 사안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가 달라지고, 결국 주변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이들 예상했겠지만, 인도인 그들은 대체로 말을 굉장히 ‘잘’하기도 또 ‘많이’ 하기도 한다. 죄다 웅변대회 수상자들만 모아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팀 미팅이나 임원보고에서도 발언권을 많이 가져간다. 들어보니 어릴 적부터 토론 수업이 많았고, 발표할 기회도 많았다고 한다. 특별히 더 똑똑하다기보다는 말하기 훈련의 기회가 더 많아 말하기를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인도 오피스에서 온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진행자가 질문을 하나 던지면 나는 머릿속으로 답변에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인도인들은 그걸 말로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아니 저 정도 준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언을 한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 그들이 내가 생각 중이었던 걸 다 말해버려 다른 생각을 짜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휴 다음부턴 미완성의 답변이라도 무조건 말하고 봐야지 내가 편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


참고로 인도인들이 말이 많다는 건 본인들 또한 잘 알고 있고 자조적으로 말하기도 말하는 데, 하루는 인도인 동료가 인도 출장을 다녀와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 싱가포르에 오니까 살 것 같다. 내가 인도에 가서 싱가포르와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낀 점이 뭔지 알아? 싱가포르에서는 내가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들어주더라고. 휴.. 인도 오피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 내가 말하면 동시에 10명이 같이 말을 하기 시작하니 도저히 말을 편하게 끝낼 수가 없어. 그런데 여기는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말을 하다니! 천국이 따로 없지 뭐야!”


‘아.. 정말 생각만 해도 인도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구나..’


마지막으로는 그들은 질서에 매우 충성한다. 모르겠다. 카스트 제도가 문화적으로 아직 남아 있어서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그들은 회사 내에서 위계 서열에 누구보다 잘 적응하고 또 앞장서서 그것을 공고화한다. 그들이 본인의 상사에게 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수직적 서열 문화는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이건 모든 나라가 그런 것 같긴 한데 존댓말과 호칭을 따로 쓰지 않을 뿐 자신보다 직급과 경력이 높은 사람에게는 모두 자기들 방식으로 깍듯한 예의를 갖추고 최대의 존중의 표시를 한다. 근데 그중에서 인도인만큼 이걸 매우 당당히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도 드문 것 같다.


이것들 말고도 내가 경험한 인도인의 특징이 많지만 대충 3개 정도만 정리해보았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7월부터 팀을 변경해 새로운 인도인 보스와 일하고 있다. 어제는 1시간 정도 둘이서 1:1 미팅을 하는 데 웃긴 것이 내 앞에 있는 이 인도인이 더 이상 외국인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하면 아주 큰 벽이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보스와 나 사이에 있는 이질감 같은 것이 없어진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한국 사람이랑 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아님 내가 인도인이 된 것인지) 하여튼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토종 한국인인 나는 점점 여기 환경에, 또 인도인 보스에 익숙해지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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