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심과 도파민 사이 어딘가
간혹 골프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거나 TV 채널을 돌리다 골프 프로그램을 지나칠 때면 드는 생각: ‘잔디밭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공을 치는 정적인 스포츠의 매력이 과연 무엇일 가?’ 주먹보다도 작은 크기의 골프공은 거리가 멀어지면 육안으로도 잘 보이지도 않아 보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공을 보기 위해 모여 있는 장면이 참 신기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던 내가 코로나를 계기로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몇 년 전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만 수업을 받으면서도 과연 내가 이 운동을 좋아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나는 골프채도 사지 않고 센터에 있는 공용 골프채를 들고 수업만을 연명하는 수준으로 시간을 때웠다.
보통 3-6개월 정도 실내 레슨을 받고 나면, 그래서 공치는 자세와 방법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골프장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좁은 실내 연습장에서 벗어나 탁 트인 잔디를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랄까. 비록 날라리 수강생이지만 나 또한 남들이 해보는 건 다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3개월이 지난 시점에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첫 라운딩을 하러 갔다.
라운딩은 18홀로 구성된 골프장에서 골프채로만 골프공을 맞춰(가끔은 손으로 던지는 게 나을 수도 있는 있어 보이지만 ^^) 총 18개의 목표지점에 공을 골인시키는 것이다. 이때 홀아웃(골인)을 시킬 때까지의 공을 치는 횟수를 세어 점수를 계산하기 때문에 점수는 낮을수록 좋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서는 거리가 먼 곳에서는 긴 거리를 쳐낼 수 있어야 하고, 골인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정교한 샷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라운딩 내내 10개가 넘는 골프채를 갖고 다니는 것도 그 이유다. 목표하는 거리와 공이 놓인 지면에서 가장 잘 칠 수 있는 골프채를 그때그때 선택하며 공을 쳐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경험한 필드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실내연습장과는 다르게 땅도 울퉁불퉁,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 사람들의 시선 등등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첫 번째 샷(‘티샷’)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명씩 나가서 공을 쳐야 하기 때문에 마치 무대 위에서나 느낄법한 긴장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골프는 조금이라도 삐끗하거나, 머리를 일찍 들거나, 몸의 각도가 잘못되거나 등 한 100가지가 넘는 이유들로 공이 잘 맞지 않거나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너무나 괴롭지만, 간혹 운이 좋아 공이 잘 맞아 정확한 방향으로 날아가기라도 하면 그 정타를 맞았을 때 나는 쨍한 소리와 함께 육중한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지면서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 하여튼 쾌감을 극대화하는 분비물이 나오는 느낌이 든다. 거기다 주변 사람들이 굿샷!이라고 하는 칭찬을 해준다면 그 만족감은 어디 숨어있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와 만나 극대화된다.
그래서 드는 생각. 내가 골프를 치는 이유는 공을 잘 맞았을 때 느껴지는 희열과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고 받는 열화와 같은 박수가 채워주는 허영심 때문이 아닐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