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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Oct 08. 2023

해외에 살다 보면

내 이름을 발음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해외에 살다 보면 내 이름을 발음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는 한치의 발음의 오차가 없는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각자가 편한 발음으로 상대의 이름을 발음하기 때문에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아는 후배가 하루는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팀장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중국인이었던 그 팀장은 ‘현석’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항상 그를 ‘현서’라고 불렀다고 치자. 물론 그 둘, 아니 모든 팀원들은 알고 있다. ‘현서’가 ‘현석’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다만 내 후배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후배는 팀장에서 1:1 미팅에서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내가 너의 이름이 Annie인데 내가 항상 Ann이라고 항상 부르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네가 외국인이라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은 나 또한 이해하지만, 네가 팀장이라면 팀원의 이름은 적어도 제대로 발음해 줘야 맞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이름은 ‘현서’가 아니라 ‘현석’이야. 앞으로 주의를 부탁할게. “


우선 이 일화에서 팀원이 어떻게 팀장에게 이런 당당한 요구를 할 수 있는지 여부, 위계적이지 않은 조직 문화를 엿볼 수도 있다는 점은 배제하도록 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 후배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배는 팀장으로부터 ‘존중’을 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존중을 나타내는 여러 행동 중 ‘상대의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하려는 노력’도 노력의 일환이 될 수도 있겠지만, 반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말장난 같지만 그럴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팀장이 팀원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과 그 팀원을 존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작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언어가 존재하고, 그 각각의 언어에 특화된 발음, 그리고 특화되지 않은 발음들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 사람이 프랑스어 발음이 생소해 그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그 나라를 무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 후배는 그것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팀장을 향해 소리친 당당함을 뿌듯하게 여기며 나에게 칭찬 아님 조금의 우러러보는 시선을 기대하고 이 사건을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당황하기도 하고, 반론을 펼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다 그만두고는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대화를 끝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사람들은 본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모를 때 이렇게 행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으로.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경계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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