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환상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중요해. 그래야 사람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본인과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이야‘ 예전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사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에 앞서 우리가 말하는 ‘유형’이라는 것도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요즘 기준인 MBTI로 16가지 유형이라고 가정한다 해도 이 모든 유형의 사람을 만나보고 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각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순서대로 인생에서 나에게 나타나주지도 않는다. 인연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참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어떤 때는 완전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였음에도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반면 전혀 그러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어느새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음을 발견하고는 한다. (주제와 무관하지만 그런 면에서 인연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게 중요해. 그래야 사람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본인과 잘 맞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것이야‘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다 겪어볼 수 있다고 해도 그중 본인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니라는 것. 예를 들면 내가 A부터 z까지의 사람들을 모두 만나본 후에야 ‘T’라는 사람과 가장 잘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자. 그럼 내가 기다리는 타이밍에 T 유형의 사람이 딱 하고 나타나 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 희박한 확률보다는 ’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가진 눈을 가졌더라면 ‘ 하며 T를 놓친 본인을 후회할 확률이 높겠다.
반면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드는 것은 여러 사람을 만나보라는 저 말은 사실 여럿을 만나보면 이 세상에 내가 바라는 모든 요소를 갖춘 완벽한 사람은 사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말인 것 같다. 누구든 연애를 시작할 때는 그 사람의 어떤 부분에 대한 환상으로 시작하지만 일상을 함께 하며 그 환상은 깨어져 가고, 오히려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나타나 이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사실 누구든 가까이서 보게 되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남을 넘어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결심을 할 때가 된다면 이 사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 까. 이 당연한 진리를 몸소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가 반드시 내가 원하는 ‘T’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그 또한 나처럼 부족함이 많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혹시 누군가 물어온다면 저 위의 말보다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봐. 그래야 세상을 이해하는 이치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거든‘ 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