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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iphany Oct 04. 2024

무조건적인 사랑

내가 사는 싱가포르의 콘도(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 건물에는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꽤 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들을 어떤 곳에서든 그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인데, 엘리베이터든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 반가움을 표정과 제스처로 분출하곤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알아차릴 것이라는기를 하는 바람을 갖고)


대부분의 애완견들은 크기와 상관없이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는 덕에 잘 관리되어 있고, 털에는 윤기가 흐른다. 어느 날 귀엽고 앙증맞은 애완견들 사이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견종은 이탈리아 그레이하우어로 단모를 가지고 있어 뒷다리 모두를 쓰지 못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강아지는 휠체어 같은 것을 타고 있었는 데, 강아지 유모차와는 다르게 몸에 바퀴 장치를 달아 앞다리로 움직이며 걸어 다녔다. 앞다리로 걸으면 못 쓰는 뒷다리는 공중에 떠 있고 대신 몸에 차고 있는 장치의 바퀴가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장치는 딱 봐도 주인 가족이 제작한 것 같아 보였다.


강아지의 주인은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버지와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 아들이었다. 그 부자는 항상 둘 중 한 명 혹은 둘이 함께 강아지 산책을 시켰는 데, 나는 우연히 그들과 꽤 자주 마주쳤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그 부자가 강아지를 휠체어를 태우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습을 보다 무엇인가가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본인들의 행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완동물과의 교감에서 얻는 행복감, 그리고 어떤 존재를 보살피고 사랑해 주는 행위에서 얻는 기쁨, 어루만지는 행위에서 나오는 옥시토신의 작용으로 느끼는 편안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보통은 이 행복감을 더 높이기 위해 더 귀여운 외모를 가진, 혹은 멋진 모습을 가진, 내가 좋아하는 기질의 종을 선택하곤 한다. 건강한 몸을 가진 것은 당연한 기본 조건이 될 테고 말이다.


이런 것들이 당연해지는 때 휠체어를 태우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그 부자를 보며 느낀 건 그 강아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그들의 가족 구성원이구나. 그것이 선택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평생을 걷지 못한다 해도 저렇게 돌보고 보살펴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나아가 그 초등학생 아들은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약자를 위해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는 태도를 배울 수 있지 않을 까. 아무튼 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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