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대 국회는 역대 국회 중 법안 처리율 최저, 폭력국회 재현, 거듭되는 장외 집회 등 많은 일로 정치에 대한 국민 피로감을 더했습니다. 갖은 의혹을 해명하지 못하고 기자 간담회와 청문회에서 위증한 인물이 버젓이 장관 자리에 올라가는데도 손 한번 쓸 수 없던 게 국회의 한계입니다.
국회의원 내부에서도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벌써부터 불출마 선언들이 터져 나옵니다. 정치권 내외에서 주류 및 세대 교체에 대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대한민국 국회의 다음 세대를 고민할 때가 왔습니다.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다음은 고재학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지난달 21일 쓴 칼럼 '판검사 출신 정치인에 대한 환상'을 정리한 글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정치인 중에 판·검사, 변호사 출신이 많습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48 명이 법조인 출신입니다. 또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차기 대선 선호도 조사를 실시했을 때 10위권 안에 진입한 인물 중 5명(황교안, 이재명, 홍준표, 오세훈, 박원순)이 법조인 출신입니다. '3김 시대'가 저물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인물 4명 중 또 2명은 법조인이었습니다.
국회의원 6명 중 1명이 법조인인 것은 '과다대표'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주권의 원칙에 따라 국회는 국민을 대표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구 비율을 따져보면 국민 중 법조인이 근 800만 명은 돼야 국회의 단순대표성을 만족합니다. 하지만, 판·검사는 4500명 안팎으로 전체 국민의 0.0001% 수준이고, 변호사까지 합쳐고 국민의 0.035%에 불과합니다. 법조계가 국회에서 비정상적으로 과잉, 과대 대표돼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선출직인데, 그 중 상당한 비율이 법조인인 것은 우리 국민이 그들에게 각별한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왜 일까요? 고 논설위원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신뢰 인프라가 다소 약하다고 봤습니다. 사회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보니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때, 법조인들이 사회 최고 엘리트다보니 그들을 사람으로써 신뢰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해석입니다.
한국인의 의식 속 깊이 뿌리 박힌 성리학 원칙도 기여한다고 봤습니다. 사농공상의 유교문화와 학벌사회의 전통 떄문에 법조 정치인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이 법조인 출신 정치인을 과하게 신뢰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지의 편집장을 지낸 백우진 현 글쟁이 주식회사 대표는 자신의 SNS에 "법조인은 똑똑하니 의정활동을 비교적 잘 하리라는 기대가 있다"면서 "과거 관행에 의한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백 대표는 법조인이 국회로 가는 게 독재 정권 시절에서 비롯된 관행이라고 봤습니다. 독재 정권 측도 법이라는 허울을 앞세우기 위해 법조인들을 대표자로서 국회로 보냈고, 이에 맞서는 민주화 진영에서도 투쟁의 전선을 국회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법조인을 보냈다고 봤습니다.
사실 법조인에 대한 신뢰가 막연한 것만은 아닙니다. 국회엔 분명 법조인이 필요합니다. 법을 잘 알아야 법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에 맞게 새 법을 만들고 옛 법을 개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이 의정 활동을 하면서도 '기존 법에 따라 일하는' 과거 법조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데 있습니다. 백 대표는 "기존 법을 개정하고 새 법을 제정하는 일은 법과 현실과의 간극을 고려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고방식을 요구한다"고 봤습니다.
법조인의 엘리트적인 특성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능력의 범위를 정확하게 봐야 한단 주장입니다. 법의 잣대로 법적 분쟁의 옳고 그름을 재단하기만 했던 법조인들이 협상과 설득의 정수인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먼저 따져봐야한단 겁니다. 비슷하게 외교학의 고전인 '외교론'의 저자 해럴드 니컬슨도 "법률가는 외교관으로서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외교는 '협상을 통해 국제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예술'인데, 선악 이분법과 과거 지향적 프레임에 매몰된 법조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법조인이 너무 많으면 국회의원의 질이 떨어진단 지적도 나옵니다. 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자신의 SNS에 "심각한 문제는 국회의원의 질 저하"라면서 "유독 비율이 많은 법조인이 과잉 대표되면 필연적으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고 논설위원 또한 '툭 하면 고소 고발에 법률 특위를 가동하고, 검찰이 국회 청문권을 멋대로 무시하는 국회' 특성상 법 체제가 익숙하고 평생에 걸쳐 승패와 시비를 겨뤄 온 법조인들이 정치하기 유리하다고 봤습니다. 또 그들이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자기 확신이 강하고 고집도 세니 내로남불 싸움꾼으론 제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경제·기술 잘 아는 정치인이 없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인구와 산업, 고용 구조는 계속 변하고 기존 패러다임으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조인은 지나간 일을 놓고 법을 해석해 옳고 그름을 따진 뒤 승패와 시비를 가리는 직업입니다. 고 논설위원은 법조인들이 속성상 "보수적이고 체제 유지적이며 과거 지향적"이라고 봤습니다. 이어 "법조 정치인은 갈등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진영 대결의 주범"이라며 "과잉 대표된 법조인이 지배하는 국회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