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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진 Jan 16. 2023

빌딩 숲 절 하나, 할머니 '만원의 행복'


뜻밖에 눈이었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내렸다. 눈은 흩날리기 싫은 듯 보였다. 서로 닿을듯 닿지 않고 내렸다. 비처럼 내렸다. 


박경화씨(68·가명)는 오전 7시쯤 잠에서 깼다. 오늘은 일요일, 조계사 가는 날이었다. 박씨는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근처에 살았다. 법회 시작은 아침 10시였다. 버스로 절까지는 30여분이었다. 시간은 없었다. 아직 자는 남편에게 밥을 해줘야 했다.


박씨는 평생 불자였다. 1955년 조계사 뒤편의, 지금은 없어진 단독주택에 태어났다. 70여년 전 조계사 모습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대웅전 앞 마당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박씨는 오후 1시쯤 초등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자갈밭에서 소꿉놀이를 했다. 고등학교 때는 매주 토요일 밤 친구들과 불경 강의를 들었다. 11월이 다가올수록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대학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본고사를 치르고 박씨는 서울 어느 대학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박씨는 대학을 2년간 다니다 그만 뒀다. 어느 철강회사 사무직으로 들어갔다. 1970년대 나라 경제가 녹록치는 않았다. 직장을 잡을 기회가 있으면 대학을 그만뒀다. 그 시절 대학생들은 대개 그랬다. 


박씨의 남편도 불자였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얼마 흐르지 않을 때 일이었다. 박씨는 서울의 어느 절에서 스님 한명을 만났다. 스님은 속세 떼를 벗으려면 매주 한번씩 절에 와야 한다고 했다. 박씨 부부는 그날부터 매주 절에 갔다. 박씨는 조계사로, 남편은 보통 북한산 산사로 갔다. 


조계사에 갈 때 박씨는 현금 만원을 챙긴다. 그 돈이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조계사 공양은 초 공양, 향 공양이 대표적이다. 초 공양은 2~3천원 한다. 향은 1박스 4천원이다. 30여개가 들었다. 하루에 다 공양하지는 못했다. 적잖은 불자는 향 1박스를 사고 남은 향을 그 자리에 두고 간다. 이를 불교에선 '보시'라 한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푼다는 뜻이다. 박씨는 이날 누군가 보시한 향으로 공양했다. 향 세개로 공양했다. 하나씩 남편, 호주 사는 40대 딸, 푸들 마리를 위해 공양했다. 


공양한 후 식당에 갔다. 밥값이 2000원이다. 공짜였는데 주변 노숙인들이 하도 와 밥을 먹어서 10여년 전 값이 붙었다. 이날 반찬은 도라지와 시금치, 콩나물, 가지 볶음, 김치 다섯가지였다. 배춧국도 나왔다. 박씨는 밥과 반찬을 비벼 먹었다. 


밥 먹고 박씨는 대웅전 앞 마당에 돌아왔다. 마당에는 사리탑이 있다. 2500여년 전 부처의 사리를 보관한 탑이라 했다. 사리는 스님, 부처의 유골을 화장한 후 남은 구슬 모양 뼛조각을 말한다. 박씨는 합장하고 사리탑을 세바퀴 돌았다. 이를 '탑돌이'라 했다. 


탑돌이 하면 소원이 하나 이뤄진다고 했다. 박씨는 업장소멸을 했다. 그는 "전생과 이번생 업을 없애서 다음 생은 우리 가족 다 평안하게 살면 좋겠다"고 했다. 조계사 앞마당에 눈이 내렸다. 저만치 혼자 내려서 물웅덩이를 이뤘다. 참새가 울었다. 그 물웅덩이가 좋아서 울었다.


https://v.daum.net/v/20230116082934584?fbclid=IwAR0Z8u97GxjdMQ89yCy3FnCQHhPqR9wcxp7yMqCUSodOYWWdnui1NDpAg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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