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의 저자 조한별
심호흡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신간 목록을 훑고 있었다. 그러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에게나 추천하지만 거의 읽지 않는다는 '고전'으로 수업을 한다는 학교. 그 학교에 다닌 한국인 학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간단한 검토를 마친 후 저자가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내용도 물론 좋았지만, 글 사이사이 드러난 유머러스한 모습이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길로 인터뷰를 신청해서 날을 잡았다. 이 책(그리고 저자)은 그 후로도 꽤 유명세를 타며 여러 인터뷰에 등장했다.
인터뷰 차 그를 만난 게 2016년 3월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년 7개월 전이다. 전체 녹취 파일이 보이지 않아 이 글에서는 <책과삶>에 수록된 인터뷰 기사를 그대로 옮기고, 기사에 들어가지 않은 내용만 추가 문답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지금은 옷 가게로 바뀐 합정역의 어느 카페에서 조한별 씨와 만나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날을 떠올리면서.
들숨과 날숨의 기록
#1
차 한 잔, 2016년 <책과삶> 4월호 중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 '어떤 분야의 초창기에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이룩해 후대에 본보기가 될 만한 평가를 받는 저작물'
'고전'의 사전적 의미가 보여주듯 그 중요성은 누구나 안다지만 실제로 손을 내미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고전을 읽고 토론까지 한다 하면 어떨까. 읽기도 힘든데 토론까지? 하지만 이를 제대로 경험한 사람의 말은 달랐다.
똑똑해야 어려운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토론 방식의 수업을 하는 것이다. 책이 너무 어려워 다들 모르는 것 투성이니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토론식 수업'이 우리의 유일한 배움의 길이다.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에서 토론을 통한 고전 공부 경험담을 들려준 이는 조한별 씨다. 그녀가 공부한 미국의 세인트존스 대학은 조금 특별한 학교다. 일단 시험이 없다. 시간표를 짤 일도 없다. 교수도, 강의도 없다. 그럼 뭐가 있냐고?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세미나 수업이 있고, 세미나 외에 튜토리얼(수학, 과학 실험, 언어, 음악) 수업이 있다. 에세이가 있고,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며 토론에 참여하는 튜터(tutor)가 있다. 돈 래그(학생을 앉혀놓고 그 학생에 대해 튜터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제도)라는 남다른 평가도 있다.
졸업을 앞둔 2014년 2월, 조한별 씨는 이 학교를 다닌 몇 년의 기록을 정리해보기 위해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렸다. 책에는 들어가지 않은 생활기와 고난기(?)도 함께 연재했다. 유머와 정보가 동시에 담긴 기사는 반응이 좋아 책으로 재탄생했다. 고생하며 작업한 덕분인지 모든 책이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는 그녀는 부모님의 솔직한 피드백 덕분에 내용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운 조한별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편입 준비 중에 발견한 세인트존스는 새로운 곳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고전, 검증된 책들을 읽고 토론하는 학교였다. 정보도 별로 없었지만, 주어진 정보에 자신이 원하는 환상이 살짝 덧씌워진 덕분에 준비는 오히려 빨라졌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깊이 있는 의사소통도 연습하고 싶었고, 자신만의 세계를 다지기 위해 내공을 키우고도 싶었다. 많고 많은 대학 중 세인트존스를 택한 이유다.
세인트존스에서 가장 확실하게 배운 것은 '진짜 생각하기'의 과정이었다.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을 이끌어내는 일,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자율적으로 학습을 이끌어가는 일, 다름을 소통하는 일 등을 배워갔다. 배우는 '과정'에 초점을 둔 결과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고 깊어졌다. 물론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자신이 봐온 스스로의 모습과 튜터가 자신을 보는 모습이 달라 격려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반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세인트존스를 가장 이상적인 대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나라 교육이 답답하기 때문에 세인트존스에 오는 것만을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의 공부는 여기서도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을 키우고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고민해보는 시도입니다. 막상 가면 언어를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정말 자기가 원하는 걸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책을 읽을 때 생각을 깊게 해보려고 노력한다는 조한별 씨는 세인트존스에서 읽었던 책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기억에 남는단다. 인간관계, 효, 우정, 돈, 행복에 대해서 광범위하게 적혀 있지만, 읽는 이마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 재미있는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보는 책으로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꼽았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 현재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또 다르게 다가와 새롭다고 밝혔다.
현재 가방에 넣어 다니는 책은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파리에 머물러 보고 싶다는 그녀의 최종 목표는 세계 여러 도시에 살면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올해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을 만드는 데 시간과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새로 배워야 한다는 부담은 있지만, 세인트존스의 경험을 떠올리며 새로운 도전에 부딪혀볼 생각이라는 말에서 싱그러운 에너지가 새어 나왔다.
늘 도전하고 새로운 것을 해보면서 깨달은 건 '생각'의 중요성이었다고 말하는 조한별 씨. 잘 안되고 잘 모르겠더라도 생각한 바를 현실로 옮겨보려는 알알의 노력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다워 보였다. 앞으로 그녀가 보여줄 작품이, 그 안에 담긴 세계가 궁금해진다.
#2
녹취 중에서 추가 문답 구성
HYE강(이하 생략): 세인트존스에서 공부를 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조한별(이하 생략): 처음에는 토론할 때 말을 많이 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던지고 남다른 분석을 하는 학생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해조차 가지 않는 게 너무 많아서 계속 묻고 또 물었죠. 그때는 '왜 나만 이해를 못해서 이런 질문들을 할까?'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튜터들이 이런 말을 해줬어요. "굉장히 좋은 질문을 한다. 다른 학생들이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만한 부분을 왜 그런지 다시 집요하게 물어보는데, 그래서 학생들이 몰랐던 부분이 뭔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제야 토론에 있어서 '나 같은 역할도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마다 다른 성격이나 재능에 따른 토론 역할이 있고, 그 역할들이 조화롭게 모였을 때 좋은 토론이 된다는 튜터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서는 먼저 정답을 말하는 학생이 칭찬받지 않나요? 저 역시 토론에서 여러 역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거든요. 하나만이 최고가 아니고 각자 자기 분야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보람을 느꼈어요.
학교에서 연습한 '깊게 생각하기(thingking-contemplating)'를 일상에서도 적용하는 자신만의 질문법이 있나요?
여담이지만, 세인트존스에 다닌 후로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 엄마가 "너무 말대꾸가 많아졌어~"라겨 농담조로 말씀하세요. '왜'냐고 자꾸 묻고, 논리적으로 대답하려고 드니까요.(웃음)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봤을 때, 나의 주관이 담긴 생각을 갖고 싶다고 느끼고 왜 그런지를 계속 생각하고 질문하려고 해요. 이런 습관이 제가 하고 싶은 영화나 예술 분야의 일을 하는 데 꽤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지금 기획하는 단편의 내용도 주인공이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던 모든 것이 실은 선택이 아니라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답답함을 느끼는 이야기거든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져요.
저는 영화 작업할 때 빼고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은 아니에요. 가족(쌍둥이랑 언니)들과 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인데, 각종 생각을 정리할 때면 혼자만의 시간을 반드시 만들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에요. 머릿속에 든 정보를 단순 처리 이상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질문이 필요해요.
가족, 특히 부모님의 남다른 교육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는 좀 유별난 가족이에요. 연년생 딸 셋에 가족끼리 세계 여행도 두 번이나 하다 보니 부모님과도 친밀했고요. 부모님의 교육관이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10대라는 시절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던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더 소중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아, 솔빛별 카페 전에 세계 여행기를 쓰던 가족 홈페이지도 있었고요.
첫 번째 세계 여행은 술의 힘 덕분이었어요.(웃음) 행동파인 아빠와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지만 한편으론 낭만적인 엄마가 술의 힘을 빌려 결정하신 것 같아요. 당시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요. 두 번째 세계 여행은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는데, 아빠에게도 변화가 필요한 시기였어요. 사람들은 가족이 함께 세계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진 않아요. 저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노후 대비나 학비 마련에 대한 보장도 없이 정말 상황이 닥쳤을 때 해 나가기로 결정하고 여행을 떠난 거였어요.
다행히 여행하면서 별다른 사춘기 증상이 없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사실 그 나이 때 여학생이 아빠랑 365일 붙어 있기는 쉽지 않죠.(웃음) 저희 가정은 아빠가 가정적이에요. 늘 저희들을 먼저 생각해 주세요. 또 여자 셋이면 하나의 그룹인데, 저희끼리 의논할 게 있으면 주말 아침 식사 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요. 어떻게 사는지, 어떤 생각인지, 간식 먹고 밥 먹는 틈틈 계속 말하죠. 싸울 때조차 가족이 다 같이 얘기하는데, 이때 좋은 점이 있어요. 주변에서 듣고 있다가 객관적인 의견을 말하고 조정해 주는 거죠. 어떻게 보면 토론의 기초 자세를 가정에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남다른 경험이 있었네요. 초, 중, 고등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사셨던 아빠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3학년 후반에 제주도로 이사를 갔어요. 어렸을 때 자연 속에서 사는 환경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으셨나 봐요. 당시 한 학년에 반은 단 하나뿐이어서 어떤 학생이 머리에 이가 생기면 전 학년에 이가 옮기도 했어요.(웃음) 수업이 끝나면 근처 바닷가로 가서 조개를 따서 구워 먹기도 하고. 중학생이 된 후에는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났죠.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의 일반적인 교육 환경과는 많이 다른 상황에서 자랐어요. 한국은 그 나이, 그 학년에 해야 하는 단계가 정해져 있는데, 저희 가족은 거기서 조금 벗어나 있었잖아요. 방황을 하거나 문제 행동을 한 게 아니라 가족의 계획 아래에서. 그룹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저는 제 삶에 자신이 있었어요.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영향이 있었겠죠. 정해진 루트에 맞춰 가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서 자라온 경험 말이에요.
고등학교는 정말 운 좋게 제주도에 있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갔어요. 쌍둥이와 언니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니 주변에서 조금 화제가 되었나 봐요. 중학생 때 여행을 다녀와서 검정고시를 봤는데, 셋이서 같이 하니까 경쟁이 붙어서 셋다 열심히 했어요. 그때 신청자 미달로 추가 모집 신청이 가능했는데, 검정고시 90점 이상이면 지원이 가능했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저는 공부를 못하는 데 외고에 갔어요. 그런데 여행 다닐 때부터 영화에 대한 꿈이 있어서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고요. 어차피 공부도 못하는데 하고 싶은 거라도 해보자, (웃음) 생각해서 언니랑 쌍둥이랑 같이 유학 준비를 했어요. 같이 하니까 더 힘이 났죠.
공부도 못하는 애들이 유학을 간다고 나서니 선생님도 처음에는 황당해하셨어요. 다른 외고에 있는 유학반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상담도 받고, 미국 대학 진학 계획서도 만들고, 가고 싶은 대학과 필요한 성적 정보도 모으면서 도움을 요청했어요. 결국 언니랑 쌍둥이는 주립대에 붙었는데, 저는 혼자 다 떨어졌어요. 고민을 하다가 자전거로 셋이서 전국일주를 떠났죠. 일단 셋이서 같이 미국으로 떠났고 그 후에 다시 세인트존스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어렸을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처음 영화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어요.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영화를 본 후 큰 감동을 받았죠. 두 시간 정도 다른 세계에 머물다가 나온 것 같았어요.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를 만큼.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영향을 주고 싶어 졌어요. 그즈음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영화감독으로 일하면 어떨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미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영화가 좋아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학부가 영화 관련 분야는 아니니까 기술적인 면은 새로 배워야 해요. 연출부 생활을 할 때도 모르는 게 많아서 고생하긴 했고요. 상업 영화 스크립터도 기회가 된다면 해 보고 싶어요. 뒤쳐진 부분들을 어떻게 보완할지는 세인트존스에 가기 전에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선택에는 다 장단점이 있잖아요. 대신 다른 면으로 제가 얻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 시나리오를 쓰고 어떻게든 단편을 만드는 데 시간과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에요.
시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모의고사 때 지문에 나온 윤동주의 「길」이라는 시에 푹 빠져 계속 읽느라 문제를 못 풀었던 경험이 있어요. 나중에 옮겨 적기도 하고. 시노래를 작곡하셨던 어머니의 영향도 받은 것 같아요. 이상의 시도 좋아요. 특유의 독특한 느낌이 있잖아요. 천천히 읽을 때 여러 감정이 들게 하는 시를 좋아해요.
세인트존스를 가고 싶어 하는 한국 학생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너무 절박한 친구들을 만나면 사실 콩깍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게 정답이다, 이것만이 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라고. 저 역시도 그랬고요. 결국 자기 마음이 가는 대로 해석하게 되니까요.
연락 온 친구 중에 직접 만나본 친구도 있고 메일로 상담을 한 경우도 있었는데, 저는 거의 이렇게 말해요. 좀 극단적일 수는 있지만, 세인트존스에서의 공부는 여기서도 할 수 있다고요. 물론 진짜로 따져 보면 힘들긴 하겠죠. 몇십 년의 노하우가 있는 튜터와 잘 짜인 커리큘럼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시간과 돈을 내서 따라가는 거고요.
그 선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독서토론이나 스터디를 하면서 나를 푸시하고,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을 키우고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게 첫걸음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세인트존스는 언어가 다르니까 정말 생각을 깊게 나누고 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가면 언어를 따라가기에도 벅차니까요. 제가 세인트존스에서 읽었던 책들을 한국어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이유도 여기 있어요.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파악을 해서 그게 맞다면 가도 좋지만, 독서와 생각하기를 좋아하고 지적 공부를 하고 싶다면 꼭 세인트존스로 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에요. 세인트존스의 교육 방식과 한국 대학의 교육 방식을 비교하면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직업이나 원하는 일에 따라 주입식 교육이 먼저 선행되고, 그 후에 깊이 있는 다른 배움을 해볼 수도 있는 거고요. 한국의 교육이 너무 극단적으로 가다 보니 반대급부가 생기는 거겠지만, 저는 충분히 고려해보고 선택하기를 권해요.
# editor's comment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자신이 배운 것만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더 큰 세계가 보였다. 가끔 궁금했다. 파리에 가고 싶다던 그는 파리에 갔을까?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영화 작업을 진행 중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예전에 인터뷰 준비차 가입했던 솔빛별 카페가 생각나서 슬쩍 들어가 봤다. 여전히 유쾌한 글로 전해지는 근황이 반가웠다.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아 인사라도 건넬까 했지만, 댓글을 달아도 나를 기억 하시진 못할 것 같아 오지랖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땐 엄청 소심 소심. 대신 마음속으로 응원을 가득 담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