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DITOR Aug 23. 2017

'함께 살아감'이 머무는 세계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의 저자 강남순


심호흡

<정의를 위하여>가 출간되기 한두 달 전,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라는 책을 만났다. 앞서 인터뷰를 올린 정지우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초대를 받았는데, 그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책이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는 2016년 내가 읽은 책들 중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책이 되었다. 책의 내용 자체도 좋거니와, 당시 내가 품어 온 질문과 맞닿는 면이 많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삶과 쫀쫀히 연결되어 밀도 있게 읽어가는 독서의 즐거움과 고민, 그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도 같았기에 정말 모처럼 깊이 잠겨 책을 읽어갔다. 


그런 이유로 저자의 이름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고, 새 책 <정의를 위하여>가 나온다는 소식과 저자가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는(저자는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 편집자는 저자의 메일을 알려주었고, 나는 조심스레 인터뷰 섭외 요청을 드렸다. 바쁜 일정이지만,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를 흥미 있게 읽었다는 말을 들으니 인터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흔쾌한 수락이 이어졌다.


그리하여 2016년 여름 어느 날, 강남순 저자와 신도림 근처에서 만나 2시간가량 데이트를 나누었다. 그 흔적을 촘촘히 기록해본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각각의 시선과 열정을 가지고 큰 대로를 경험하는가 하면, 작은 골목도 경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만큼, 자신이 지닌 시선과 질문들을 따라가며 이 책에서 자신의 사유세계와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국 '함께-존재'임을 인식하고, 자신과 타자를 보는 시선이 무관심과 냉담함에서 따스함으로 조금씩이라도 바뀌게 되기를 바란다. 

-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 프롤로그 중


들숨과 날숨의 기록

HYE강(이하 생략): 메타포로 '데이트'와 '댄싱'을 자주 쓰신다고 들었어요. 오늘 저도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강남순(이하 생략): 맞아요. 나는 '데이트' 메타포를 자주 씁니다. 데이트는 설레는 마음이 필요하죠. 조금 끌리는 마음만 있으면 데이트를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갈 수 있어요. 또 '댄싱'은 나를 한 군데 고정시키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편이에요.


새로 나온 <정의를 위하여>는 교수님만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분석한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시선, 혹은 사유를 갖게 된 여정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 긴 이야기가 되겠네요. 저는 '자신만의 사유'는 담론과 조우할 때, 즉 그 안에 자신의 경험이 동반할 때 생겨난다고 봅니다. 독일 유학을 가기 전에는 실존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부 졸업 논문도 니체의 무신론에 대해 썼고요. 석사 논문은 도로테 죌레(Dorothee Soelle)라는 독일 신학자에 대해 썼습니다.


독일에 가서 지금까지 즐겁게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읽던 책이나 세계가 오히려 나의 일상적 고민, 씨름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썼던 메타포가, '왜 책상 앞의 세계와 책상 뒤의 세계가 이렇게 다를까' 였죠. 그 사이의 간격을 좁힐 수가 없는 데 대한 고민이었어요. 독일 유학 당시 결혼을 해서 1살과 3살 아이가 있었는데, 결혼 전 학교에서 공부하던 철학의 세계는 실생활에서 아이를 기르고 결혼 생활을 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여러 가지 구체적 이슈와는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왜 예전에 느꼈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나 희열을 느끼지 못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이유도 몰랐고 굉장히 우울했죠. 그렇게 원했던 독일에 왔는데, 공부하는 즐거움과 열정이 오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어요. 미국 대학에서 만난 지도 교수는 다양한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제가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셨죠. 한 번은 다음 학기에 들을 수업 리스트를 가져갔더니, 본인이 이번 학기에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는데 그걸 들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더군요. 저는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그게 학문적인 영역 안에 있다고 생각을 안 했으니까요. 그 교수가 딱 한 번만 들어보고, 제가 듣고 싶지 않으면 그다음부터는 권하지 않겠다고 해서, 들어보러 갔어요. 그런데 거기서 책상 앞의 세계와 책상 뒤의 세계의 거리가 왜 그렇게 넓게 느껴졌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었습니다. 


책상 뒤의 세계라는 건 일상적 삶이에요. 외국에서 공부하면서 저 역시 매일매일이 전쟁터 같았어요. 새벽에 일어나면 아이들을 다 먹이고 씻겨서 유치원까지 자전거로 데려다줬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그러고 학교까지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애들 데리고 와서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다시 공부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그때는 이런 일상적인 삶(가사나 아이를 키우는 일)이 학문적인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쪽 따로 저쪽 따로 고민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페미니즘 세미나를 들으면서 내 삶의 구조를 이해하는 개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나눈 모든 일상적인 얘기들, 나의 몸,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 결혼제도 속에 있는 것,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전문 영역을 개발하려고 할 때 갖게 되는 여러 딜레마 등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 사회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우기 시작했죠.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과 만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쓴 사회학도 있고 신학, 철학, 문학, 심리학 등 모든 학문에 걸쳐진 것들을 보게 됐는데, 참 놀랐습니다. 일상적으로 고민하던 내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이 씨름하면서 이런 주제들도 중요한 학문적 주제라는 걸 밝혀놓은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 수업은 매주 써내야 하는 페이퍼가 있었어요. 주제로 '월경이 뭔가?' '폐경이 뭔가?' 이런 걸 던져줘요. 저도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죠. 물론 남학생들도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써야 해요. 'sexuality' '나의 몸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놓고 개인적인 경험과 학문적인 이론들을 접목시키는 일이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이 일로 유명한 학자들의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을 펼치는 일에 대한 경험을 하게 되었지요. 어느 책에도 썼지만, 이때 제2의 인식론적 회심 경험(epistemological conversion experience)을 하게 됩니다. 내가 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이 뒤에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차별과 배제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가를 보게 된 거죠. 


그때까지 개인적으로 "차별받은 적이 없다."라고 말한 건, 정말 차별받은 게 없는 것이 아니라 제가 차별의 복합성을 보지 못한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면적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차별을 받지 않은 건 아니에요. 다양한 의미의 차별들이 사회 밑바닥에 있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일 뿐. 별안간 사라지는 듯 보였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불 지피듯이 일어났어요. 그동안 책상 앞의 세계에서 제가 읽었던 다양한 철학자들, 그러고 보니 거의 남자 철학자들이었네요. 그들은 아이들과 씨름하고 사회적 구조와 씨름하는 것이 전혀 학문적인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똑같이 전문적인 길을 가도 남성들은 도덕적·사회적·가족적 서포트를 당연하게 받는 데 비해 여성들은 그런 것이 없었어요. 제가 했던 고민은 자기 영역을 추구하려고 했던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었고요. 아이를 사랑함에도 고민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어요. 이건 지도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은 일이에요. 페미니즘과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했죠.


페미니즘 말고는 또 어떤 조우가 있었나요?

한국이나 독일에서는 전혀 만나지 않았던 것을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조우하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살 때는 젠더 문제만이 아니라 인종 문제, 언어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게 되거든요. 페미니즘이 말하고 있지 않은 문제들이 제게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소위 언어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개념, 즉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면서 영어를 모국어로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왜 2등 시민처럼 간주되는가, 이런 것들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탈식민주의)을 공부하면서 배우게 됐어요. 


처음 페미니즘 공부를 통해 내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연결시키는가를 배웠다면, 이후에는 나를 관찰하면서 내가 지닌 문제들을 공유하는 담론들을 스스로 만났죠. 또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사이에 있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긴장 관계를 알 수 있었어요.


그렇게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차츰 조우하게 됐는데, 이것들이 굉장한 학문이라서 제가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이론·학문적으로 우선 제가 이해하고, 그 후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런 담론들과 조우한 것이죠. '이론'이라고 하는 건 연장과 같아요. 가능하면 다양한 연장을 갖고 있는 게 좋지요. 연장 한 두 개만 갖고는 복합적인 건축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다양한 이론들을 공부하면, 차별·배제·폭력·생태계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현대 사회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요. 지금은 모든 게 서로 얽혀 있어서 지역별로 학문을 나누는 것은 낭비라고 봅니다. 경북 성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세계의 다양한 문제들과 연결되죠.


학자로서 그런 담론들과 조우하면서 어떤 것을 느끼셨나요?

학자로서 갖는 부담감이랄까 책임감 같은 것이 있어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아카데미 안에서 언어 플레이만 하다 끝나면 낭비가 아닐까, 하고요. 어쨌든 제가 배운 것이 언어적·사변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면 좋겠어요. 이 세계가 부딪치는 다양한 삶의 문제들에 대해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인식의 변화를 불러오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죠. 그게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소위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공공 세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하나의 중요 과제라고 생각하고요.


아까 말했듯 다양한 담론들과 조우하는 것은 그만큼 이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앵글을 갖는 걸 의미해요. 누구나 각각 담론들을 만나는 특정한 계기가 있고, 저 역시 그렇게 그 담론들과 만났어요. 그 과정에서 '자크 데리다'는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대화자,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데리다와의 데이트'라는 강연도 하셨어요.  

데리다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사람들이 가끔 궁금해해요. 데리다도 유명하지만, 그의 책 역시 난해하기로 유명하죠.(웃음) 많은 것을 이해한 후라야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있어서 어려운 책인 건 맞아요.


데리다에게 끌리기 시작한 건, 그가 말한 '해체, 차연' 등 복잡한 개념들 때문은 아니에요. 오히려 데리다의 조사(弔辭) 때문이었죠. 데리다는 다른 사람들의 장례식 조사를 참 많이 썼어요. 넬슨 만델라, 푸코, 레비나스 등 그 조사만 묶은 책도 있으니까요. 이 사람에게 있어서 '애도'라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 우정, 즉 친구가 된다는 것은 애도를 전제로 하죠. 둘 중 누군가는 먼저 죽는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친구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진정한 친구 관계는 상실의 슬픔으로부터 시작해요. 데리다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깊게 울리는 조사를 쓰는지 몰라요. 그런데 암에 걸린 데리다는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걸 알고 자기 장례식에서 읽을 조사를 직접 써요. 그에겐 아들이 둘이었는데, 큰 아들에게 자기 장례식에서 이걸 읽으라고 하죠. 그는 자기 자신을 'he'라고 불러요. 큰 아들이 읽은 조사를 읽었는데, 그게 그렇게 와 닿더라고요.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슬퍼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또 그렇게 슬퍼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이 나와 함께한 즐거운 순간들, 또 행복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나의 경험으로 봐서 누군가를 위해 조사를 쓴다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조사를 썼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모두 사랑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당신들을 향해서 미소를 지을 것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몰라요. 이 '웃음'이라는 게 데리다에게는 정말 중요한 메타포이자 실제이기도 하죠. 데리다는 미소 없는 '환대'는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자크 데리다는 알면 알수록 쓸데없이 난해하고 정신없는 사람이 아니라, 참 예민하고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데리다의 글 속에 빠져들기 시작했죠.


데리다를 알게 되면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예리해졌다고 느껴요. 그냥 우연히 놓칠 수 있는 것들 속에서 무언가 끄집어내는 능력, 그건 데리다가 지닌 기가 막힌 능력이에요. 그는 단 한 마디를 가지고도, 우연히 지나치는 것 속에서 딱 집어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들 속에서 우리를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죠. 예를 들어 'hospitality'만 놓고 보더라도, 이렇게 저렇게 다 분해해서 돌연히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차원으로 우리를 데려가요. 우정, 선물, 환대, 애도, 용서는 우리가 흔히 안다고 생각하는 정의들인데, 데리다와 함께 그 정의를 파헤치다 보면 '내가 아는 게 아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학교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데리다 세미나를 하는데, 학생들에게 처음 늘 내주는 과제가 ‘데리다에게 편지 쓰기’입니다. 학기 초에 쓴 편지와 학기 말에 쓴 편지를 놓고 비교하면 너무나 달라요. 편지 쓰기 숙제를 내주는 이유 중 하나는 데리다를 '사람'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도 변화를 많이 느끼고 저도 가르치면서 즐거운 과목이에요. 학생들이 데리다를 배우고 나면, (물론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모든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이 이전과 너무 다르다고 말해요.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해체'라고 하는 것은 읽기 방식에 관한 것이에요. 내가 읽는 눈이 달라지는 것. 모든 이론은 자신과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담론들과의 조우'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나와 만나는 일이죠. 내가 모르는 나와 만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만나가면 내가 타자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져요. 하나의 정보로 그것들을 만나면 내가 변하지 않지만요. 정보와 지식은 다릅니다.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 관점이에요. 


'나는 어떻게 보는가'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담론과의 조우는 나와 주변을 굉장히 복합화(complexify)된 시각으로 보게 해 줘요. 단순히 흑과 백으로 보지 않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담론들과 조우한 사람은 어떤 현상을 분석할 때 그만큼 자기가 접해 있는 정황에서 기여를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이건 리더십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리더는 보기 방식(mode of seeing)이 일반 멤버와는 달라야 해요. 중심부뿐 아니라 주변부도 볼 수 있는 이중적 보기 방식을 할 수 있어야 하죠. 현재만 아니라 미래도 볼 수 있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라고 봅니다. 그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담론들을 접하면서 삶에서 고민해봐야 나오는 부분이겠지요.


<정의를 위하여> 중에서



책에도 성소수자에 관한 글이 종종 나옵니다. 동성애에 대한 성서의 시선을 어떻게 해석하시나요?

일단 저는 소돔과 고모라를 동성애에 관한 것이 아닌, 환대에 관한 것으로 봅니다. 성서는 이중적 메시지를 갖고 있지요. 두 가지 전통으로 살펴볼 수 있어요. 하나는 '억압적 전통'입니다. 성서의 저자들은 가부장적·식민주의적·제국주의적인 사회에서 나왔어요. 성서에서는 지금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일부다처제가 나오기도 하고, 아버지의 권한으로 딸을 갱(gangster)들에게 내주기도 해요. 


또 성서에서 먹지 말라고 한 것을 지금은 지키지 않기도 하죠. 성서의 본문을 택하고 해석하는 일 자체가 자신의 해석이 개입되는 거예요. 또 다른 하나는 '해방적 전통'입니다. 성서 안에 있는 억압적 전통과 해방적 전통 중 해방적 전통이 무엇인가를 보는 것이야말로 절대적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죠. 예수의 절대적 명령, '타자를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그래요.


동성애라는 용어 자체도 사실 근대의 산물이에요. 성서에서 말하지 않는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은 그럼 괜찮나요? 성서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얘기하지 않아요.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와 성적 행위는 같은 게 아닙니다. 섹슈얼 액트(sexual act)만 하는 게 호모섹슈얼리티가 아니에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그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이죠. 유독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해서만 섹슈얼 인터코스(sexual intercourse)에 집착하는데, 그건 섹슈얼리티(sexuality)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거예요. 소위 무성애자에 속하는 사람도 많고, 섹슈얼 액트를 하지 않는 관계도 많아요. 


아이러니컬하게 동일한 성서를 갖고 노예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나뉘고,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제국 식민주의에 대해서도 찬성과 반대가 함께 존재하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그 책을 어떻게, 누가, 왜, 누구의 이득을 확보하기 위해 해석하고 읽어내느냐의 문제라고 봐요. 


하다 못해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에 관한 메시지라고 쳐도, 성서는 언제나 그것보다 더 큰 명령이 있지요. 예수는 율법에 하나를 더 붙였어요. '이웃을 사랑하라'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서 안에서도 상충하는 가치가 있어요.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성서의 근원적 메시지가 무엇이냐' 아닐까요. 예수가 늘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 타자를 사랑하고 환대할 것인가 였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에서도 환대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하셨어요.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예전부터 있던 개념인데, 현대 사회에 더 부각되는 면이 있어요. 미국에서는 네 가지 모멘트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먼저는 (디오게네스에서 출발한) 그리스 철학에 스토아 철학자가 발전을 시킨 것이고, 그다음에는 칸트의 모멘트(권리가 주어지는 조건이 국적도 종교도 섹슈얼리티도 아닌, 단지 그가 지구 상에 거하는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고 함)가 있어요. 


소위 칸트의 코즈모폴리터니즘 권리라고 하는 건, 당시 민족주의의 부상이라는 배경과 연결할 수 있어요.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양면이 있죠. 폐쇄적 민족주의, 개방적 민족주의. 이중 폐쇄적 민족주의는 자국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기에 이 안에서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진정한 세계 평화가 코즈모폴리턴 인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그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도 이와 맞닿아 있어요. 폭력에는 누구나 다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또 이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하죠. 세계화 이후에는 물리적인 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면서, 난민 문제는 환대 문제로, 환대 문제는 권리 문제로, 이는 다시 정의 문제로 이어졌어요. 누구에게는 어떤 권리를 인정해주면서 다른 누군가에게는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현상이 생겨났잖아요. 또 옛날에는 자기 국가에 속한 특정 사람에게 정의가 적용되면 됐는데, 이제 정의의 문제는 국가적 경계를 넘어서서 적용할 필요가 생겼어요. global justice로 간 거죠.


그다음으로는 한나 아렌트가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면서 나와요. 2차 대전 이후 이 개념이 대중화되면서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다시 등장해요. 나치는 유대인에 대한 범죄만이 아니라 사실은 인류에 대한 범죄이지요. 이후로 인류에 대한 범죄라는 개념이 사회·정치적 의식으로 많이 확장되었어요. 여자에 대한 범죄가 곧 인간에 대한 범죄라고 하는 인식도 그렇고요. 최근에도 시리아 난민들, 국적으로만 따지면 우리는 상관없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동료 인간'이라는 면에서 그들의 문제도 곧 우리의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코즈모폴리터니즘'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할 때 인간의 소속을 두 가지로 나눠요.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자리에 의해서, 또 하나는 태양에 의해서. 이 두 가지 소속으로 인해 인간은 어떻게 보면 다 동료이고 다 가족이라고 볼 수 있죠. 그 인식을 갖는다면 시리아 난민이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게 아니라 동료고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코즈모폴리터니즘의 범위는 가까운 타자(close other)뿐만 아니라 먼 타자(distant other)까지도 포함됩니다.


예수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웃. 종교, 국적, 인종, 종교를 뛰어넘어 이 우주에 속한 (기독교적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자녀) 모두가 코스모스의 시민이에요. 일반적으로 교회를 다녀야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아요. 성서는 신이 모든 인간을 지었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성서를 좁고 왜곡되게 해석하니까 한국 사회에 산재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거죠. 난민 문제, 미등록 이주자들 문제 등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있나요. 아이들이 교육도 못 받고 보험도 없고 법적으로 아무 권리가 없는데, 기독교인들이 이런 문제에 좀 나섰으면 좋겠어요. 예수 정신의 확산을 위해서. 자기 섹슈얼리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 앞에 두고 시위하고 반대하는데 온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요.


"Cosmopolitanism is back!"(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가 서로 얽히고설켜 살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나온 대안적 담론이에요. 제가 공부하면서 느낀 건, 이 이상으로는 나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성취해야 할 최고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지향점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해요. 기독교 적으로 해석하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건설할지 고민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예수가 말한 텍스트를 보면, 종교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요. 그의 질문은 심플하죠. 누군가 배고팠을 때 먹을 것을 주었느냐?


코즈모폴리터니즘에 기반한 인식을 하기 위해선 어떤 질문들을 해야 할까요?

급진적-뿌리로 돌아간다(radical)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이곤 하는데, 이건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근원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우리가 왜곡하거나 오해하고 있던 것을 파헤쳐나가게 하는 말이죠. 지금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왜 당연한지를 묻는 것, 뿌리에 다가가는 질문을 하는 것이 필요해요. 급진적(radical)이란 말속에 이미 ‘뿌리로 간다’(going to the root)는 의미가 담겼어요. 보수와 진보 역시 그냥 나누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해야 해요. 보수는 지킨다, 보존한다(conserve)는 의미가 있죠. 보존하는 거 자체가 좋고 나쁜 게 아니에요. 무엇을 보존하고 그 보존함의 기능이 뭔가를 봐야 합니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예요. 진보는 나아간다(progress)라는 의미인데, 무엇을 향해서 나가는지, 누구의 이득을 위해서 앞으로 나가는지 봐야 하죠.


이런 질문을 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나눈다는 것은 초첨 없는 허구와 같아요. 가끔 당연하게 저를 두고 진보라고 보는 시선이 있는데, 그런 라벨을 붙이는 걸 경계해요.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세부적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누가 이 이야기를 하는가, 어떤 관점이 작동되는가, 이것의 기능은 무엇인가.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고, 책에 등장한 사례들도 그렇고, 언어를 민감하게 다루며 사고를 세분화하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이든 연습이 필요해요. 학생들과 함께 한 학기 동안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사고 훈련을 반복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걸 보는 눈이 생겨요. 저는 학생들에게도 목사든 선생이든 디자인을 하든 글을 쓰든, 그 시대가 이야기하는 징조를 읽어야 한다고 말해요.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지 현대 세계에 개입하는 거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죠. 페미니즘, 생태운동,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퀴어 담론, 장애 담론 등 이전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문제들이 점점 부상하는 이 시대에는 어떤 분야에 있든지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포스트콜로니얼리즘, 이 세 개는 우선적으로 공부해보길 권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보다 second class citizen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가 이야기했던 인간 보편의 가치들이 사실은 저 밑의 권력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 눌러왔다는 주장이에요. 중요한 건 이것이 다양성을 드러나게 하는, 소위 주변부의 목소리를 들리게 했다는 것이죠.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권력이 강한 나라나 집단이 그렇지 못한 나라나 집단을 지배하는 구조에 대한 예민성을 작동시키는 것이에요. 이 세 가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먼저 필요해요. 관련된 것들을 자꾸 읽다 보면 자기의 관점이 생기는데, 이때 관점은 안경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안 보이던 게 조금씩 보이니까요. 책이나 신문 기사, 광고를 봐도 그 글 속에 담긴 생각들이 눈에 보이게 돼요. 주변의 모든 것이 텍스트가 되는 거죠. 아무것도 자명한 것은 없어요.


사상가든 담론이든 그냥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데이트한다고 생각하면 재밌어요. 데이트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호기심 아닌가요. 뭔지 모르지만 알고 싶다는 호기심. 그게 공부에도 작동되면 공부는 더 이상 지겨운 게 아닐 겁니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고요.


<정의를 위하여>의 부제는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적 성찰이에요.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도처에 인문학이라고 하는 강좌가 열리는데, 듣고 나서 정작 '왜?'라고 질문하는 게 아니라 '나 인문학 강의 들었어~ '라는 사치스러운 장식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것저것이 다 인문학의 꼬리표를 달고 있어요. 인문학에는 역사, 철학, 종교, 예술, 문학, 언어 모든 게 다 들어갑니다. 그렇게 복합적인 게 요구되는 분야인데, 강의 하나 듣고 그렇게 인문학을 뗐다고 하는 현상이 우려스러워요. 사유하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하는데, 많은 인문학 강의들은 답을 주지요. 오히려 이런 현상은 인문학을 왜곡한다고 봐요. 이건 인문학의 정신을 배반하는 겁니다. 인문학은 치열하게 '왜?'를 묻는 것이죠. 비판적 저항으로서의 인문학은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고민하고 성찰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말해요.


서구의 근대 모더니즘이 지배하는 500년 동안 계속 답을 주려고 했어요. 탈근대주의가 근대주의에게 던지는 가장 큰 비판이 이겁니다. 답을 주는 인문학적 성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황들을 보지 않아요. 답을 주는 사람은 기득권층이죠. 그 시각은 남자, 유럽인, 기독교인, 이성애자, 중산층, 지식인 등의 시선이에요. 그들이 답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상 주변부(여성, 아이, 제3세계 사람들, 비기독교인) 사람들의 삶을 억눌렀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인문학이라는 게 현대에 와서는 옛날처럼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구체적 정황에서 어떻게 치열하게 성찰하고 개입하면서 그 정황에 맞는 대안들을 찾아내는가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수님께서 책에서 쓰신 "신화적·정치적·문학적·시적·철학적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게 가능해야 세계를 다양한 층위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상력이라는 게 인위적으로 아무렇게나 막 생각하라는 건 아니에요. 진정한 상상력이 되기 위해서는, 관점이 분명히 서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서에는 목소리 없는 여자들이 참 많아요. 아버지가 자기 딸을 낯선 남자들에게 넘겨주는 장면이을 보며 페미니스트적 상상력을 갖고 있다면, 이 여자들이 그 순간에 무엇을 느꼈는지, 무엇이 불의한 건지 생각해볼 수 있어요. 또 코즈모폴리터니즘이 말하는 환대의 관점에서 보면, 낯선 이들에게 환대를 베풀기 위해서 자기 딸을 죽음의 공간으로 몰아넣은 것이 진정한 환대인가? 질문할 수 있어요. 무조건 감상적 상상력을 발동시키라고 할 게 아니라, 분명한 관점에서 우러난 상상력이 필요해요.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쓰인 것뿐만 아니라 쓰이지 않은 것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적혀있지 않은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노력이 요구돼요. 권력의 문제에 대한 예민성, 성차별 문제에 대한 예민성 등을 갖고 상상해야 하죠. 아무것도 없이 시작된 상상은 별 의미가 없어요. 앞서 말했듯, 이 역시 다양한 연장이 있어야 유의미한 상상들이 가능합니다.


굳이 '정의'라는 타이틀로 책을 모은 이유가 있을까요?

출간 강연 기념회에서 '왜 인문학적 성찰이 정의와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에요. 정의는 법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정의=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의는 언제나 법보다 한참 위에 있었어요. 데리다가 말한 정의의 개념을 빌려와 말할 수 있겠네요. 그는 모든 것에 해체가 가능한데, 해체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다면 정의라고 했어요. 정의를 다시 조건적 정의와 무조건적 정의로 나누었는데, 무조건적 정의는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요.


모든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것은 커다랗게 보면 세 가지 영역에 관한 성찰이에요. 나, 너, 세계(+종교). 이 커다란 세 분야에 대한 성찰을 할 때는 그냥 심미적 성찰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나에 대한 성찰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나는 한 인간으로서 다양한 권리를 누리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까지 읽어야 하는 거죠. 또 내가 너에 대해 성찰할 때는, 내가 중요한 존재인 것처럼 너도 그렇게 소중하고 평등한 고귀한 존재라는 것까지 인식이 나가야 해요. 그게 바로 정의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인문학적 과제는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냐는 것이에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낭만적인 구호가 아니죠. 모든 사람의 권리, 모든 사람의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걸 인문학이 끊임없이 제시해줘야 해요. 인문학의 과제가 정의와 만나야만 한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둘은 저절로 만나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만나게 해 줘야 하지요.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문학은 정의의 끝과 맞닿아 있는 거예요.


현대 사회의 커다랗고 절실한 화두 하나를 꼽으라면, '살아감-함께 살아감'입니다. 경제, 환경, 종교 간의 갈등으로 함께 살아감의 의미가 깨지고 있는 사회예요. 인문학이라는 게 좋은 사람들끼리 교제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하는 다양한 성찰이 나뿐만 아니라 무수한 너들도 함께 평화롭게 정의롭게 차별을 경험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그 고민에 기여해야 한다고 봐요.


교수님께서 깊은 영향을 받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한두 권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얘기할 순 없겠네요. 책이라고 하는 건 제 삶의 다양한 정황 속에서 그때그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그게 지속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순 없기 때문에 딱 하나를 꼽기는 힘들어요. 하지만 언제나 중요한 통찰을 주는 책은 역시 데리다의 책입니다. 데리다는 “나는 칸트를 읽을 때마다 언제나 처음 읽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저도 그래요.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책 같은 느낌을 받거든요. 여행 중에도 늘 갖고 다니는 책 중 하나가 데리다의 책입니다.


시간이 없을 때에도 잠깐씩 보면서 데리다의 개념과 만나요. 일방적인 우정이지만 굉장한 친밀성을 느껴요. 하지만 저는 데리다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걸 원하지는 않아요. 전문가라는 말을 경계합니다. 누구도 master 할 수 없어요. 사상이든 사상가든. 그건 데리다 정신에도 위배되고 정직하지 못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코즈모폴리터니즘이든 데리다든 아직 알아야 할 게 너무도 많아요. 데리다 역시 자기도 자기 책의 master가 아니라고. 나도 내 책의 독자로만 남을 뿐이라고 말해요. 그게 아주 정확하다고 봐요. 내가 이 책을 썼다고 해서 전부 master 한 건 아니죠. 쓰기라는 것은 특정한 쓰기 공간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기도 모르는 분출이 되거든요. 거기서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한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볼 때 누가 무슨 분야의 master라고 하는 것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아요. 어떤 특정 분야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알고 있다, 정도면 괜찮지만요.


치열하게 소모된 후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이 있을까요?

언제나 super person으로 살 수는 없어요. 어떤 면으로 나는 굉장히 회의적인 사람이에요.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나를 끄집어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내가 있어요.


나는 나와 약속을 해서 스스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집니다. 그 시간을 갖지 못하면 에너지가 소멸되기 때문이죠. 미국 집에 있는 피아노가 제게는 중요한 동반자예요. 걷는 것도 좋아하고요. 텍사스 집에서는 뒷문으로 나가면 강가가 있어서 아침에 한 시간씩 걸었어요. 나무도 보고 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하늘도 보면서. 그러면서 스스로를 격려하기도 합니다. 또 책을 소리 내서 혼자 읽기도 해요. 그냥 눈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르죠. 이 세계에 말을 건네는 마음으로 온 마음을 담아 읽으면 그 의미가 다르게 다가와요.


저도 좌절하며 외로운 시간도 있고 동어반복을 하며 지내야 하나 늘 고민합니다. 하지만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regardless),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세상과 나누는 일의 중요성과 책임 또한 생각해요. 기계적으로 아는 것만 떠들지 않게 하려고 강연마다 늘 새롭게 임하고요.


텍스트로 표현되는 타이틀 말고, 어떤 학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신학자, 철학자 이런 이름은 늘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에요. 함께 살아감이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씨름했던 학자,라고 기억해준다면 영광스럽겠네요. 내가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고요. 공부하고 가르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글을 쓰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씨름했던 학자,라고 기억되면 좋겠어요.




# editor's comment

그와의 만남은 '초대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살아감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씨름하자는 초대장. 그리고 그 초대장이 어떤 환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정의를 위하여> 이후 <용서에 대하여>(동녘), <배움의 관하여>(동녘)가 연이어 출간되었다. 그의 문제제기는 지속적이지만 조금씩 새롭고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든다. <배움에 관하여>는 완전 신간이라 아직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읽어 볼 생각이다.


자기 삶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앎은 인식의 지평을 넓게 해주었고, 그 넓어진 시각은 다시 복잡화된 세상의 면면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그의 말속에서 이론과 실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있던 나를 발견했다. 사실 그 둘은 나누는 게 아니라 순환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이론은 실전을 끌어오고, 실전은 다시 이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모처럼(?) 공부가 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책 몇 권 찔끔 들춘 것 빼곤 그다지 공부를 하진 않았구나, 싶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다시 공부 뽐뿌가 살짝 오는데 이번에는 잘할 수 있으려나. 사람과의 데이트가 그렇듯 알고 싶다, 는 마음과 규칙적인 만남을 유지하는 시간을 갖는 게 아마 가장 중요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의 매력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