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re Reading #141
6주 전, 저는 PUBLY 팀원들에게 메일 한 통을 썼습니다. 제 소개가 담긴 그 메일에서 저는 좋아하는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꼽았습니다. 말을 꺼낸 김에 책장 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책을 오랜만에 꺼내어 다시 펼쳤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첫 직업은 비행기 조종사였습니다. 그가 남긴 여러 책에는 조종사로서 경험한 일과 생각이 잘 녹아 있죠. 하늘 위에서 바라본 광활한 대지 위에 놓인 자연과 사람을 향한 호기심, 그리고 경외감은 생텍쥐페리가 '비행'이라는 일을 사랑한 이유였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제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생텍쥐페리가 동료 앙리 기요메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이었습니다. 거기에는 한겨울에 비행기로 안데스산맥을 횡단하던 기요메가 50시간 동안 실종된 사건의 뒷이야기가 담겨 있었는데요. 겨울에는 사람을 돌려보내는 일이 없다는 안데스산맥의 어딘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요메는 다양한 노력을 펼칩니다.
1단계. 가족과 동료를 떠올리며 일어섭니다. 2단계.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움직이죠.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는 3단계에 다다르자, 자신이 죽었을 경우 아내가 보험금을 타야 하는 상황을 떠올립니다. 그제야 실종 상태로 처리되면 보험금 수령이 몇 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린 그는 시체로 발견되기 위해(!) 몸을 다시 일으키고, 일으킨 김에 더 걷게 됩니다.
결국 살아남은 기요메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살길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또 한 걸음. 언제나 똑같은 그 한 걸음을 다시 내딛고 또 내디뎠지⋯⋯.
극한 상황에서 살아 돌아온 기요메를 보며 사람들은 '용기'에 주목했지만, 생텍쥐페리는 기요메가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그의 위대함은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낀 데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우편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동료들에 대한 책임. 그는 자신의 손안에 그들의 고통, 그들의 기쁨을 쥐고 있다. 저기 살아 있는 이들 속에서 새롭게 건설되는 것에 대한 책임에 그는 동참해야 한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안데스산맥에서 조난당한 기요메와 멘탈 붕괴에 빠진 제 모습이 묘하게 겹쳤습니다. 그러자 제가 붙잡고 일어서야 할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그 한걸음을 다시 내딛는 일. 그리고 저 자신에 대한, 제 일에 대한, 함께 하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
저는 이 문장을 읽은 후로 '꾸준함'과 '책임'이라는 딱딱한 단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의미를 지녔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탑승한 PUBLY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설령 멘붕이 오더라도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두 가지 처방을 미리 받아두었으니까요.
2018년 4월 27일,
온보딩 기간을 마쳐가며 삼성동에서 박혜강 드림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 "공이 오면 공을 친다" 2군에서 홈런왕까지, 이승엽의 인생 수업 읽어보기
Q. 타석에 서서 극심한 압박감이 몰려올 땐 어떻게 대처했나요? A. 가족을 위해서 팀을 위해서, 팬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저 공을 치자'라고 생각해요. 저는 철저히 저를 믿었어요. 압박감이 심할 땐, 잘했을 때의 상황과 못했을 때의 상황을 그려봐요.
= 혜강: 공이 오면 공을 치기 위해 얼만큼의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요. 인생의 중심에 야구를 두었던 이승엽 선수 역시 '언제나 똑같은 그 한 걸음을 다시 내딛고 또 내디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려 33년 동안 말이죠. '오면 친다'는 단순함 속에 깃든 철학이 빛나는 건 그의 삶이 묵묵히 뒤를 받쳐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렴, 프로는 삶에서 뿜어진 내공으로 승부하는 법이죠.
• 박은정의 이유 읽어보기
내가 똑똑하지 않으면 내 새끼를 절대로 못 지키겠구나 생각한 거예요. 그 생각이 물고 물리고 있다가 저한테 공부할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잡게 만든 원천이 아니었나. 맞아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살아온 경험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아오면서 궁금했던 것들이 공부를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 같아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 그렇거든요.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것들이 저를 움직여요. '왜 그랬지? 왜 그렇게 된 거지?' 의문이 들고 질문을 하게 되면서 공부를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때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면, 연구할 때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 혜강: 팀 메신저에 올라온, '세계 상위 1% 우수논문 연구자' 박은정 교수를 인터뷰한 기사입니다. 경력 단절 여성에서 독성학 분야의 우수 연구자로 주목받은 그의 이야기를 간단한 기사로 접한 적은 있지만, 그 과정에 어떤 땀과 눈물, 그리고 노력이 담겼는지 이 기사를 통해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아들의 백혈병 오진이었다니. 눈앞에 닥친 막막한 현실을 딛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딘 그의 분투에서도 아름다운 책임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 (책) 읽기의 말들 책 정보 보기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에밀 파게
= 혜강: 요새 자기 전, 꾸준히 몇 장씩 넘겨보는 책입니다. 부제(이 땅 위의 모든 읽기에 관하여)가 말해주듯이, 읽기와 관련된 반짝이는 문장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 박총은 '책 읽기'와 '삶 읽기'는 어떻게 서로를 빚어가는가, 라고 질문합니다. 늘 읽은 대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의지도 기억력도 부족한 저는 이 질문이라도 유효한 찔림으로 붙들고자 합니다. 제 나름의 '한 걸음 내딛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