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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DITOR Jan 07. 2020

[2018.6] 나를 관찰하는 시간

What We're Reading #149

약속이 미뤄진 어느 날, 갑자기 뜬 시간을 메우려고 책을 펼쳤습니다. 의심과 공감의 숲을 지나 깨달음의 개울을 건너며 책을 읽은 후 제가 했던 일은 '관찰'이었습니다. 관찰 대상은 다름 아닌 저였고요.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본 저는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모습 사이에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꽤 있었거든요. 둘 사이의 작은 균열을 포착하며 제 생각, 감정 그리고 거기서 비롯한 행동을 되뇌어 보았습니다.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둘 사이의 거리를 인지하자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막연하고 추상적인 해결책보다는 제가 가진 성향,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하나씩 상대와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얼마 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보게 된 TV 프로그램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외식업계의 대부 백종원이 지역의 골목 식당들을 컨설팅해주는 프로였는데요. 그가 찔러주는 뼈 아픈 조언과 그에 대응하는 가게 주인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진단 아래, 식당들은 휴업 간판을 내걸고 일주일간 대응책 마련에 들어갑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주일 역시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혀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가게의 민낯을 직시하고, 강점을 찾고,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이 시간을 잘 겪어낸 자에게 펼쳐질 미래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시간 자체가 기본기를 단련하는 과정이겠지만요.

이 모든 과정을 '복기'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싶습니다. 복기는 나와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다음번에는 더 나은 방법을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죠.

저는 앞으로 최소 분기별로 일상의 어느 순간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복기할 시간을 넣으려 합니다. 나를 오해하지 않아야 타인도, 상황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테니까요. 

2018년 6월 22일,
삼성동에서 박혜강 드림

* 레터 커버 이미지: 작년 이맘때 홀로 속초에서 가졌던 복기의 시간에 찍었던 사진입니다. 어쩐지 올해 여름도 바다를 바라보며 2/4분기 복기를 해보고 싶네요.




PUBLY 팀이 보고 읽은 이번 주 콘텐츠


• (책) 일의 기본 생활의 기본 100 책 정보 보기

'마음속 자기소개서 업데이트하기' - 사람은 나날이 변합니다. 어제오늘 사이에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더라도, 직장을 옮기면서 달라지고, 이사를 하고 나서 달라지고,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지고, 느낌에 따라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금 나 자신을 알고 나의 어떤 모습을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지를 잘 생각하면서 마음속 자기소개서를 최신으로 업데이트합니다. 경력이라기보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세트로 종이에 써 놓고 읽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 혜강: 올해도 어김없이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습니다. (뉴스레터가 나가는 오늘도 도서전이 열리고 있고요.) 수요일 오후에 열린 출판 플랫폼 세미나를 들은 후, 근처 독서 현장 클리닉에서 사적인서점의 처방을 받아 고른 책입니다. 저는 '실수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 당신에게'라고 쓰인 책 처방 문구에 끌려 이 책을 선택했고, 집에 돌아와 책을 뒤적거리다 이런 글귀를 만났습니다. 마음속 자기소개서를 업데이트하는 일 역시 복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 [Why] 알파고 은퇴하다니… 바둑돌 한 주먹 던지고 싶다 읽어보기

Q. 승자와 패자가 함께 복기하는 풍경은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상적입니다. 패자는 치욕적인 장소를 떠나고 싶을 텐데요.

A. 왜 졌는지, 어떻게 둬야 이길 수 있었는지를 복기하며 배워요. 그 과정에서 슬픔도 진정되죠. 지면 자신한테 화가 나고 분풀이도 하고 싶은데 복기를 하면 좀 풀어집니다. 곧장 거리로 뛰쳐나간다면 누구 멱살 잡고 때릴지도 몰라요(웃음).


= 혜강: 올해 입단 50주년을 맞은 조치훈 9단의 인터뷰입니다. 6살 때 숙부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난 그야말로 평생 한 우물만 파온 바둑 장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 역시 복기를 통해 평생 배워왔다고 합니다. (복기는 원래 바둑 용어이기도 하죠.) 차분하게 한 수 한 수를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감정의 잔여물도 서서히 빠진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복기는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도 되겠네요.

• 워싱턴포스트가 부러운가? 우리는 1,000번을 실패했다 읽어보기

- 우리는 어떻게 침몰하는 배에서 거의 승리에 가까운 지금의 모습까지 왔을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실수에서 배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사실 워싱턴포스트는 1997년부터 디지털에 집중했습니다. 20년 이상을 디지털에 투자한 거죠. 1,000번의 실패가 있었고 여러분이 여기에서 뭔가 교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워싱턴포스트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건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하면서 갑자기 디지털로 변신했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20년 동안 디지털이었습니다. 제프 베조스가 들어와서 바뀐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과거 워싱턴포스트의 대주주들은 워싱턴의 지역 신문이길 바랐죠. 제프 베조스가 들어오면서 전략을 바꿨습니다. 우리가 고객을 보는 방식과 독자를 보는 방식과 기사를 보는 방식을 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고요. 투자가 필요하다면 투자를 하고 바꿔보겠다고 나섰죠. 지금의 모델은 잘못됐다면서요.

- 전략이 중요합니다. 당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결정하고 당신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입니다. 어떤 기사를 아주 잘 전달하고 싶다면, 오랜 시간 취재했거나 방대한 국가적 문화 보고서를 전달한다고, 또는 뭔가 엄청난 특종이 있어서 이걸 아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해 봅시다. 적절한 자원을 동원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기술적인 방법으로 구현할 수도 있고 독자들의 참여를 더 끌어내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고 독자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끌어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을 겁니다.


= 혜강: 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았던 기사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인수한 후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고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 무려 1,000번의 실패가 있었던 거죠. 기사에는 워싱턴포스트가 시도한 여러 실험, 실패 사례,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전략을 어떻게 바꾸면서 어떤 의사결정을 거쳤는지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밑줄인데요. 제게는 복기로 얻은 경험적 지식과 전략이 한 쌍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실패에서 쌓인 데이터와 함께 그 시기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일, 지금의 제게도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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