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re Reading #156
한때 제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지면에 발행하는 인터뷰 기사 작성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햇병아리 인터뷰어였던지라 엄청나게 긴장하며 인터뷰이를 만나러 가곤 했었는데요. 매번 어렵고 떨려서 다음 달에도 기사를 쓸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동시에 그럴수록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커져서 참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제게 그 일을 좋아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죠.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 인터뷰의 매력 같아요. 일단 만날 대상을 정하면, 관련 자료를 샅샅이 찾아가며 대상을 알아가는 일에 푹 빠져야 해요. 반면에 대상을 만나고 돌아와 그날의 대화와 분위기를 되새기며 글을 쓰고 다듬을 땐 조금 냉정해져야 하죠." (글로 옮기니 10년 차 정도의 포스를 내며 위풍당당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우물쭈물 긴가민가하며 말했습니다.)
또한, 인터뷰를 글로 내보내는 일 자체에도 이야기의 발산과 수렴이라는 균형이 존재합니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대화와 에너지를 수렴하는 글쓰기. 이 둘을 저울의 양 끝에 올리고 평평한 수평이 나오도록 무게추를 조절해야 하죠. 발산만 남은 인터뷰는 정돈되지 않을 테고, 수렴만 남은 인터뷰는 생기가 없을 테니까요.
꼭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요새 저는 균형이라는 화두를 다시 꺼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 고민은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에 가까운데요. 인터뷰를 위해 단 한 번 만났지만, 두고두고 큰 울림을 주었던 작가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혜강: 자신을 어떤 독자라고 생각하시나요?
K: 저는 사실 잘 반하는 스타일이에요. 책이든 사람이든. 그런데 막 빠져드는 반면, 금방 깨기도 하죠. (웃음) 두 번은 읽어야 책이든 사람이든 균형을 잡는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반해서 읽고, 그다음에는 거리감을 두고 읽고. (중략) 반한다는 건 제 마음에 든다는 뜻이기에, 제 시각이 너무 강해져서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읽기보다는 제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더라고요. 반해서 읽다가 놓치는 부분이 많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읽으면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어요.
혜강: 책을 읽으면서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어떻게 하시나요?
K: 이 시기의 나에게 무언가 어떤 답을 건네는 것 같은 책을 만날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러면 그 답이 맞는지 다시 한번 의심해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봐요. '그냥 좋다'는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뭐가 좋은데?'라는 구체적인 질문 앞에 대답하다 보면, 내 문제가 무엇인지 보게 되거든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왜 이 책을 읽는지부터 아는 게 먼저예요. 내 인생에서 이 책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계속 던지며 읽어야 하죠.
저는 독자와 책으로 한정해 질문을 던졌지만, 그가 들려준 답변에서 책의 자리에 콘텐츠나 사람을 넣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저는 균형 감각을 키우는 일을 두고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균형을 잡는 데 집착해 빠지는 일 자체를 두려워하지 말 것. 혹여 빠지기도 전에 심드렁하지 말 것. 빠졌다면 콩깍지에 씐 상태로 천년만년 가지 말 것. 즉, 애정에 기반하되 더 깊이 알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시 볼 것.
2018년 8월 9일 목요일,
균형 잡는 스트레칭은 젬병인 박혜강 드림
* 혹여나 글에 나온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 그 행복한 기억 읽어보기
'열림'을 통해 내가 만난 한 분 한 분이 내겐 인생의 교본이고 희망의 증거였다. 어떤 이들은 정기적으로 예배를 보거나 참선을 하는 것으로 일상에 지치고 욕망으로 번잡해진 마음을 씻어낸다는데, 나는 격주로 열림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시시때때로 유약해지는 마음을 다독였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열림의 가장 큰 수혜자다.
= 혜강: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터뷰 코너였던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무려 5년 2개월 동안 122명의 인터뷰가 이 코너 안에 담겼는데요. 때때로 기사를 읽으며 누군가의 이야기가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다가올 때면, 제가 모르던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인터뷰인 셀프 인터뷰를 보며 그 역시 이 작업을 통해 내면의 균형을 잡아 온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장정을 마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 MBC의 새로운 실험 "20대를 위한 뉴스는 왜 없나요" 읽어보기
14F가 20대에 특화된 뉴스를 내세웠지만, 이미 20대를 겨냥한 뉴스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중략) 뉴미디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MBC는 14F를 통해 '새로운 운동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이호인 뉴미디어국장은 “디지털 저널리스트들에게 사회적 감수성, 뉴미디어 소구력을 배우고 있다"며 "레거시 미디어가 가진 장점과 20대 제작진의 감각이 더해지면 '새로운 운동장' 구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혜강: 레거시 미디어가 부랴부랴 뉴미디어 시장에 발을 내미는 요즘, MBC도 메디아티와 손을 잡고 뉴미디어 실험실을 꾸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바로 유튜브로 들어가 14F를 검색해 올라온 영상들을 보았는데요. 한 영상이 재생되는 3분 남짓한 시간 동안 빠른 화면 전환을 따라가며, 제가 얼마나 텍스트 감수성에 깊이 담가진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이런 실험실은 앞으로 점점 많아질 텐데요. 튀는 아이디어와 표현력을 지닌 세대와 함께 새로운 운동장을 구축하려면, 저 역시 지금부터 많은 관심과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뉴욕타임스가 죽음을 기록하는 법 읽어보기
사망기사는 고인이 어떤 사람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대신 무수한 일화와 고인이 생전에 했던 말, 주변인의 증언을 교차 편집하는 식으로 독자에게 인물을 보여준다. (중략) 사망기사는 죽음으로 빛을 보는 글이지만, 죽음보다는 삶에 관한 글이다. 우리는 사망기사 속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까.
= 혜강: 사망기사와 부음의 차이, 영미권식 사망기사의 특징, 한국 언론에서 영미권식 사망기사를 찾기 힘든 이유 등을 간단히 설명한 기사입니다. 비슷한 논지의 신문기사도 있는데요. 근래 사회적으로 명망을 갖춘 분들의 별세 소식을 들으며, 안타깝기도 슬프기도 했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마음은 더욱 커졌는데요. 치우치지 않고 잘 쓰여진 사망기사로 그들의 삶이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