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좋아, 그럼에도 낙서조차 하지 못하겠어.
미술이 좋아, 그럼에도 낙서조차 하지 못하겠어. 그게 접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올리다니, 배신감이 드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저는 아직도 남이 있는 곳에서 그림을 그리면요, 온몸의 근육이 긴장해서 근육통으로 새벽을 지새웁니다. 지루한 강의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고, 내 앞에 흰 종이가 있어도 낙서를 하지 못해요. 마치 무언가를 그려내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는 자아가 따로 있는 것만 같이 말이에요.
그 자아는 단정 짓죠.
그려보지 않아도 내 낙서는 처참하게 별로일 것 같아.
또 그 자아는 지금껏 겪어온 경험을 휘리릭 보여주며 설득을 합니다. 그리고 남이 내 낙서를 보고 평가할 것 같은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며 조용하게 피날레를 맺죠.
그렇게 반복이 이어지고, 이어져 연필은 공부하며 줄 긋는 용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미 손은 그림을 그리기엔 뻣뻣해지죠. 많은 미술작품을 바라보면 너무나 두근거리는데 그림을 그리진 않아요. 그림을 그리고 배울 시간도, 돈도 생긴 어른이 되었을 땐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 낙서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어른이 된 거예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마치 일기와 같이 나의 모든 것들을 담고 있는 것인데, 진짜 일기처럼 혼자 꽁꽁 나만의 것으로 감싸 두기엔 아깝게 느껴지거든요. 마음에 드는 색감이 들어간 작은 부분이 있을 수 있구요, 유달리 마음에 드는 선 하나가 있을 수 있어요. 내가 느낀 만족감과 충족감을 알리고, 공감을 얻어내고 싶죠. 낙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적 없으신가요? 낙서가 더 마음에 들고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더 느껴진 적이요.
저, 이런 그림을 그렸어요! 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그 상대는 말하죠. “잘 그렸다!” 혹은 “별론데?” 둘 중 하나예요. 그리고 그런 평가들에 내 그림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고 하루 기분이 좌지우지되곤 하죠. 혹시나 안 좋은 평을 겁푸 듣고 시무룩해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어 버린 분이 있다면, 낙서조차 망설여지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드리고 싶어요.
그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그림에 대해 손쉽게 평가하지 않는다고요. 취향이 있을지언정 비난하는 법이 없죠. 그림 한 장을 그려낼 때만큼은 그림에 진심을 담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낙서도 마찬가지예요. 낙서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어떤 마음으로 그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림엔 사람이 담겨있어요. 그런 창작물을 비난하는 것은 한 사람의 보이지 않은 가치관, 마음, 성격, 취향을 무시하는 것과 같죠.
사람들은 그림에 있어서 너무나 손쉽게 비평가가 되곤 해요. 선이 어떻다느니, 색 조합이 구리다느니, 그런 이야기면 또 몰라요. “와, 잘 그렸네.” 혹은 “이게 뭘 그린 거야?” 정도죠. 그런 평가들로 애정이 담긴 그림의 가치를 단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리기를 그만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건 저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이기도 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어린 시절 특기나 취미란엔 ‘그림 그리기’가 있었겠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선 그림을 잃곤 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유별나게 예술에 국한되어 나타나는 ‘눈을 사로잡는 희귀한 보석 찾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투박한 원석들이 설 자리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죠. 그래도 용감해지셨으면 좋겠어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라도 낙서를 그려보세요. 점차 손의 떨림은 잦아들고, 두근거림만 남는, 멋진 순간이 올 거예요. 그 두근거림을 잊어버리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어렸을 적 자신처럼, 거침없이 색색깔로 낙서를 하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요?
여전히 그림만 그리면 긴장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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