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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Jul 08. 2021

나와 결혼해줘서 고마워


결혼 전의 나를 돌아보면 마음고생이 참 많았다. 인간관계, 연애, 일. 모든 것이 고민 투성이었다. 20대 후반 또래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겉으로는 사회생활을 무탈히 해내는 평범한 청년으로 보이지만 정작 속내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흔들거리던 시기였다.

비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30살 전에 얼른 결혼을 해서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헤매는 삶을 살다가 만난 지금의 남편.


남편은 도화지처럼 하얗고 맑은 소년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함께할 때면 예민하고 복잡하던 마음이 단순하고 편안해짐을 느꼈고, 이 사람과 결혼하면 평생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자 결혼을 결심했다.


결혼 후 2년 반을 훌쩍 넘긴 지금. 나의 선택을 돌아본다면?

결혼을 결심했던 과거의 나, 아주 칭찬해!




아빠 없이 지내오면서 엄마는 내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셨지만, 내가 울거나 마음이 약해져 있는 순간을 싫어하셨다. 엄마는 아빠의 역할까지 하시며 최선을 다해서 날 키우셨지만, 엄마의 노력으로도 어찌하실 수 없는 딸의 감정 영역에 있어서는 깊은 무력감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오빠 역시 아빠의 빈자리를 메꾸려는 노력으로 나의 모든 상황에서 아주 현실적인 다그침만을 거듭했고, 사춘기 시절엔 어딘가 조금씩 고장 나던 내 모습이 엇나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던 시기도 있었다. 엄마도 오빠도 다 잘해주려던 마음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혼자서 감내하는 조용한 20대.


가족에게서 바톤을 이어받은 남편. 남편은 내가 나답게 살게 해 준다. 예민한 나, 불안한 나, 소심한 나, 화가 난 나- 편안한 마음에 '모든 내 모습'이 교대로 출현해도, 모든 나를 포용해주고 인정해준다. 그저 내가 편안하게 나를 풀어놓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그러다 보니 내 안의 기죽어 있던 좋은 모습들이 기다렸다는 듯 무럭무럭 콩나물처럼 자라난다. 예민하고 불안하고 소심한 모습들, 저 지하 바닥에 봉인해 놓았던 어린 마음까지도 잔잔히 사그라든다.



작년 신우신염으로 심하게 아팠을 때, 내가 봐도 최악이었던 내 모습. 그 이후엔 근종 수술까지 했으니 못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은 엑기스로 뽑아내 다 보여준 작년이었다. 씻지 못해 절어있던 나에게 매일 아침, 저녁으로 뽀뽀를 해주고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며 안아주던 남편. 사랑을 떠나 감사하는 마음이 컸다.




결혼 전부터 '아, 이렇겐 지내지 말아야겠다!' 라며 다짐했던 모습이 있었다. 바로 남편이 출근했을 때와, 퇴근했을 때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예쁜 모습이면 상관없다. 다만, 아침저녁으로 잔뜩 퍼져있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퇴사 이후 나는 늘 그렇게 지내오고 있다. 나도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퍼져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작년엔 유난스레 아팠다. 인생에서 병원을 그렇게 많이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뿐인가, 집에 큰 일도 생겼어서 계획했던 작업은 반도 해내지 못했다. 이렇게 남편의 외벌이가 길어지고 있다. 솔직하게 말해서, 반대의 경우였더라면 남편을 보면서 조금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결같이, 0.1g의 애정 변화도 없이 늘 나를 사랑해주고 아껴주던 남편. 이렇게 집이라는 우리만의 작은 섬에서 단 둘이 아껴주며 살아가는 느낌.





지금 남편을 만나기 전- 친구 한 명이 내게, "결혼이란 너에게 참 잘 어울리는 제도 같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땐 반은 수긍하고 반은 수긍하지 못했으나, 지금의 남편과 함께라면 완전히 동의한다. 내 안의 눈물이 잔뜩 고여 이끼처럼 껴있던 어두운 부분을, 남편은 살살 고운 바람으로 말려준다. 자기 멋대로 강한 바람을 불거나 숨 막히는 햇빛을 쪼이지 않고, 그저 살살 따뜻한 바람으로 매일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그렇게 마음의 젖은 부분을 말려준다.



편안함을 나에게 따뜻하게 부어주는 사람. 따뜻한 한 사람을 만나서 세상이 아주 살만한 곳으로 느껴진 지 오래이다. 남편!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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