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송희 / 사진. 백상현
2017년 초, 한국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에는 뜨거운 이슈가 있었다. 수원 삼성에서 뛰던 미드필더 백지훈 선수가 챌린지 리그 팀인 서울 이랜드FC로 이적을 한 것이다.
백지훈이 2부 리그인 서울 이랜드로 이적한 것은 ‘더 많이 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지난 6월 26일, 대전을 상대로 1,011일 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축구선수로서 백지훈의 이름이 미디어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던 시기는 10년 전이었다. 2003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데뷔한 후 2006년에는 월드컵 국가대표팀으로 뽑히기도 했다. 백지훈은 공격력이 뛰어난 미드필더로 한국 축구에서 촉망 받던 선수였다. 무엇보다 '제2의 안정환, 이동국'이라고 불리며, 잘생긴 외모로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부상이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2010년 9월 경기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해 2년을 재활에만 매진해야 했다. 필드 보다는 치료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고 그렇게20대 후반을 보낸 후 군대에 갔다. 2015- 2016년 수원 삼성에서 뛰며 체력을 회복했던 백지훈이 2부 리그인 챌린지 리그로 이적한 것은 ‘더 많이 뛰고 싶어서’였다.
서울 이랜드로 옮긴 후 서울로 이사를 했고,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된 후 ‘집을 공개해달라’고 청했다. ‘아, 볼게 없는데...’라고 말을 이었던 백지훈 선수의 집을 이른 오전에 찾았다. 백지훈 선수의 집은 들어서자마자 은은한 향기가 코를 스쳤다. 팬들이 선물해준 디퓨저에서 나는 향기였다. 좁은 집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하는 TV에서는 아침 시간대의 정보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었다. 토마토 농가를 찾아간 리포터의 왁자지껄한 목소리, 집에서는 TV 보며 멍 때리는 게 취미라는 백지훈 선수. 잠시 TV를 끄고 그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숨겨서 그렇지 짐은 많아요. 제가 물건을 잘 못 버려서요.
오늘 인터뷰가 아니었으면 뭐 하실 시간인가요?
아마 자고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일어나서 운동하러 갔을 것 같아요. 일주일 생활이 별 게 없어요.오전에 일어나서 TV 틀어놓고 준비 하다가 챙기고 나가고, 운동 끝나고 집에 오면 쉬다가 자요.(웃음)집에서는 거의 요리는 안 하고 밥은 거의 사 먹어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운동할 때 아니면 거의 집에 있어요.
서울 팀으로 옮기 후 이사를 오신 거죠? 짐 아직 안 푸신 것 같아요. 물건이 너무 없네요.
전에 집은 이집보다 컸는데 그땐 방이 4개 정도 있었어요. 혼자 사는데 너무 쓸데없이 커서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서울로 오면서는 일부러 작은 집으로 왔어요. 어차피 집에서 잠만 자고 혼자 있는데 아담한 집이 좋을 것 같아서요. 숨겨서 그렇지 짐은 많아요. 벽장 같은 곳에 다 숨겨 놨어요. 제가 물건을 잘 못 버려서요.
주방이 너무 깨끗하던데 집에서 요리는 전혀 안 하시나 봐요.
저희 부모님이 장어집을 하시거든요. 장어탕을 얼려서 보내주시면 그거 녹여서 먹어요. 거의 매일 먹을 때도 있어요. 너무 맛있어서 매일 먹어도 안 질려요. 그거 빼고는 거의 나가서 사 먹어요.
확실한 건 선수들이나 저나 호흡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책꽂이에 보니까 영어 책이 있던데, 배우시는 거에요?
네, 요즘 선생님한테 따로 배워요. 근데 뭐 대단한 걸 배우는 건 아니고 진짜 너무 기초적인 수준이라...(웃음) 얼마 전에 친한 형, 동생이랑 여행을 갔었는데 제가 영어를 너무 모르더라고요. 선수 생활 하면서 영어 배울 일도 없었고 외국으로 경기 나가도 통역 분들이 있으니까 불편함이 없었는데 자유 여행을 가서 한 마디도 말을 못하니까 제가 바보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집 1층에 커피숍이 있는데 기서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선생님 만나서 배워요. 근데 진짜 너무 기초적인 수준이라 커피숍에서 누가 제 영어 들을까봐 창피해요.(웃음)
팀을 옮긴지 이제 6개월 정도 됐는데 적응은 다 되셨나요.
이랜드팀이 창단했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김병수 감독님도 좋아하는 분이고, 막상 와보니 선수들도 좋고 스태프 분들도 잘 해주셔서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워요. 감독님이랑은 저도 처음 같이 해보는데 감독님 전술이나 이런 것들을 아직까지는 저희 선수들이 100% 인지를 못한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감독님도 아직 팀에 오신지 1년 밖에 안 되었고 저도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선수들이나 저나 호흡이 더 좋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축구를 12살 때 시작했으니까 21년 됐네요. 축구가 질린다거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어요.
십대 때부터 축구만 하셨잖아요. 서른이 넘어서도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는건데, 저 같은 평범한 사람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나의 일만 저렇게 오래 할 수 있을까 신기하기도 해요.
축구를 12살 때 시작했으니까 21년 됐네요. 프로로 시작한 건 2003년 전남 드래곤즈 입단하면서 부터였으니까 15년. 이제 제 나이가 은퇴할 시기도 다가오고 있어서 좀 슬퍼요. 축구가 질린다거나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어요. 지금까지 축구를 해왔지만 앞으로는 축구를 할 시간보다 그만둬야 할 시간이 더 가까우니까 그게 더 슬픈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은퇴를 하게 되면 동생들이 뛰는 모습을 관중석에서 봐야 할텐데, 그런 모습은 상상을 안 해봐서 좀 슬퍼요.
축구가 여전히 좋으신거네요.
축구가… 저는 재미있어요. 원래 어릴 때 꿈은 경찰이었어요. 우연찮게 축구를 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축구 말고 다른 일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 같이 축구 시작한 친구들 중에 아직 하는 건 저밖에 없는데, ‘축구를 왜 했을까’ 후회한 적도 한번도 없어요.
부상 기간이 길었잖아요. 그때도 후회 안 하셨어요?
다쳤을 때에는 제가 축구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니까 더 하고 싶었죠. 수술하고 1년 반 정도를 운동장을 아예 못 갔어요. 재활만 1년 넘게 하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축구 하고 싶어서.그때 수술을 했는데, 수술하기 전보다 다리가 더 아팠어요. 그때 ‘이제는 축구를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런 생각들이 저를 짓누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동료 선수들은 경기 뛰고, 골 넣고 기뻐하는 데 저는 운동장에도 못가니까요.
어릴 때라면 내 생각을 바로 표현했을텐데 지금은 상황을 좀 더 둘러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젠 팀에서 고참이죠. 후배일 때와 선배일 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뭔가요.
제가 원래 남자들끼리 장난 치는 거 좋아하는데요. 이젠 나이가 있고 선배라 장난치기가 어렵죠.(웃음)후배들 앞에서 무게감을 잡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훈련하거나 시합할 때 화가 나면 감정대로 행동했다면 이제는 참아요. 어릴 때라면 내 생각을 바로 표현했을텐데 지금은 상황을 좀 더 둘러보게 되는 것 같아요. 고참이라는 생각을 올해 들어 많이 했어요. 작년에 수원에서 뛸 때에는 형들이 많았거든요. 이번에 팀을 옮기니까 제 위로 형이 3명밖에 없어요. 팀에 동생들이 워낙 많으니까 고참이라는 게 확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낯도 많이 가리고 처음에 말을 잘 못거는 편인데 동생들이 먼저 다가와 주고 편하게 해줘서 적응을 잘 했어요.
친구들도 거의 축구 선수들이실 것 같아요. 만나시면 뭐하세요?
축구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다들 팀이 다르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주 못 보는데 한달에 한번을 봐도 다 편해요. 김진규 정조국 오범석, 이호, 저 이렇게 다섯명이 제일 친해요. 지금 다 저 빼고 유부남들이라 자주 모이지 못하는데 얘기를 시작하면 하루를 그냥 보내요. 술도 안 마시고 다섯이서 수다 떨다 보면 5시간이 가있고 그래요.(웃음)
무슨 얘기 하세요?
그 친구들은 결혼하고 애도 있으니까 애들 이야기도 하고. 근데 주로 옛날 이야기 해요. 같이 경기 뛸때 연습할 때 이야기. 했던 이야기 백번씩은 한 것 같은데 또 해도 웃겨요.
요즘 ‘축구’ 말고 백지훈 선수를 가장 가슴 뛰게 했던 건 뭐가 있을까요.
음, 얼마 전에 영화를 봤는데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이었는데 거기서 리더이던 유인원 시저가 너무 멋있었어요. 그리고 <무한도전>?(웃음) 얼마 전에 한 박명수씨 군대 간 편이요. 보고 너무 웃겨서 데굴데굴 굴렀어요. 제가 군대를 늦게 간 편이었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군대 갔다와서 제가 성격이 많이 변했거든요. 원래 고집이 굉장히 쎈 편이었어요. 오죽 고집이 셌으면 제가 훈련소 있을 때 엄마가 편지를 주셨는데 ‘엄마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발 고집 좀 줄여라’였어요.(웃음) 보통 어머니들이 훈련소 간 아들한테는 좋은 이야기만 하시잖아요. 근데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훈련소 간 아들한테 저런 편지를 쓰셨을까 싶더라고요. 군대에 있으면서 성격도 유해지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법, 그리고 내 생각을 남에게 맞추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남은 2017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이 축구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 길게 하고 싶어요.선수 이후에 내가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교육자를 하시는 형도 있고, 정환이 형처럼 방송을 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할 줄 아는 게 축구 밖에 없거든요. 정환이 형은 제가 예전에 같은 팀에 있었을 때부터 너무 재미있는 형이었어요. 형도 저처럼 처음엔 낯을 가리는데 친해지면 진짜 웃기고 센스가 있는 형이거든요. 방송 하면 잘하실 것 같다 했는데 요즘 보면 정말 잘 하셔서 대단하다 싶어요. 저는 근데 그런 재주가 없어서, 그냥 최대한 축구를 오래 하고 싶어요. 2017년에도 축구 열심히하고 운동 열심히 해서 내년 시즌에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 축구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오래 길게 하고 싶어요.
백지훈 프로필
2003 전남 드래곤즈 입단
200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대표
2006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6 수원 삼성 이적
2008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2017 서울 이랜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