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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Mar 08. 2021

10월은 그렇게 간다_8

08.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비바람 속에 밖에서 이렇게 발만 동동거리며 있을 수 없었다. 어디 아는 사람 없을까 머릿속 얼굴들을 세어가 보지만 마땅히 부탁할 사람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누구 없을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가까운 친척 어른이었고 어쩌면 가장 확실한 연관이 있을 사람일지도 몰랐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동아줄이 될 사람에게 이 상황을 오픈해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지만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불편해질 것 같아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연초에 만난 멘토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이런 상황에 있는 그녀에게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그녀와 같은 마음으로 격려와 힘을 주실 거라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창을 열어 그녀가 처한 상황에 대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한줄한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주변 가장 가까운 동생에게도 이 상황에 대해 기도를 요청했다.


그래서였을까 그 사이 그와 그녀는 어떻게 상황이 바뀌었는지 모르게 그들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000 씨 보호자님, 응급실로 들어가실게요."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기적과 같이 느껴졌다.


막막했던 바깥과는 달리 응급실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보호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간호사가 다녀가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찾아와서 그를 데리고 가 하나, 둘 검사를 시작했다. 안정된 환경에서 관리와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불안함을 덜 수 있었다.


멘토 선생님으로부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연락이 왔다.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불안을 놓지 못하는 그녀에게 "의사들이 아무리 환자가 많고 그래도 긴급하고 진료가 필요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혹시라도 그곳에서 진료가 되지 않아도 가능한 곳으로 전원 조치를 취해줄 거니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맞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거야.'


모든 것이 계획과 예상처럼 진행될 거라 생각했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어제, 오늘이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지난 몇 년 동안 지나온 그녀의 혼란스러웠던 삶의 단면을 보는 듯 느껴졌다.


늘 확실하고 가능성이 있는 것,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이래도 저래도 괜찮을 것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당연하듯 학교를 다녔고 공장의 레일을 밟듯이 한 단계 한 단계 '그래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그렇게 통제할 수 없는 도전은 시도하지 않으며 안정적인 시간의 순서를 밟아왔다. 마치 이 레일을 벗어나면 큰일이 날것처럼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안정됨이라는 레일 속을 수년간 머물렀다 몇 년 전 그곳을 나와 처음으로 불확실하지만 새롭고 의미 있음에 시간을 걸었고 지금까지 그녀가 정의하는 '안정된 굴레' 속에 머물지 못한 채 그곳을 바라며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녀는 안정이 보장되지 않은 그 상황을 즐길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늘 그녀를 이끌어 가도록 했고, 그녀는 상황에 이끌려 다녔다. 선택하기보다 선택받기를 원했고, 무언가를 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마주할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며, 늘 눈을 질끈 감고 마주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래서 잃어버린,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이 많았다.


몇 년간 불확실함 속의 시간을 지나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렇게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 스스로 돌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나온 시간을 원망하고 자책만 한다면 그녀에게 주어진 지금이라는 삶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도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쓰라리게 깨달아가는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혼란스럽고 자신조차 단언할 수 없지만 끊임없는 자발적인 주체가 되어야 했다. 선택을 하고 책임을 지고 주장을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도 알아야 했다. 남들보다 더디더라도, 시간이 지난 언젠가 조금은 성장하고 나아진 삶을 찾아가는 그녀가 되길 바랐다.  


"아까 나 병원 담당자랑 통화할 때 엄청 떨었던 거 알아? 무서웠어. 근데 나 말 잘했지?"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자랑하듯 말했다. 속으로 얼마나 떨었던지, 하지만 피하지 않고 부딪혔다. 작은 힘이지만, 힘을 내어 두드렸다. 버벅댔을지 몰라도 씩씩하게 소리 내 말했다. 참 잘했다.


'그렇게 너 연약한 사람 아니야.'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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