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우리 사이, 무슨 사이?!
사고 경위와 현재 상황, 그리고 이전 병원에서의 영상 자료들을 전달하고 나서 조금은 무료한 듯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다음 주 중에는 수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피드백이 와 너무 놀라웠고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우선 코로나 결과 나오기 전까지 선제 병동에 있다가 결과 나오면 바로 일반병동으로 옮길 거예요.” 응급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얼굴조차 보지 못한 담당 교수님께 감사를 표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과 불확실했던 수술마저도 선생님께서 가능하다고 하시다니 이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하는 놀라움과 감사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코로나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며 저녁 무렵 느지막이 선제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환자복은 아내분이 갈아입혀주세요.”
응급실을 벗어나 깨끗한 시트가 준비되어 있는 선제 병동에 들어갔다. 병동 담당 간호사는 입원 서류를 보며 깨끗하고 까슬까슬한 환자복을 그녀에게 건넸다.
「아내」
어제오늘, 24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다. 말로만 듣던 누군가의 보호자라는 말이 실제 그녀의 입장이 되어 공식 문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순간, 그것이 그렇게 가볍게 흘릴만한 무게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메꿔야 하는 '보호자와의 관계'란을 보며, 그동안 이리저리 그녀 자신의 마음을 저울질하며 모호하게 망설였던 그녀의 마음 속 그와의 관계를 매듭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고 적어야 하지?'
고민 끝에 '여자 친구'라고 적었지만 그 말이 꼬마 아이들의 장난말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비밀을 들켜버린 듯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러다 시집가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 주는 그동안 생각해 본 적 없는 입장과 처지였기 때문에.
"여자 친구라고 적었는데 좀 유치한 것 같아. 다음에는 그냥 친구라고 적을래."
대학병원으로 옮기면서 다시 한번 더 진료신청서를 작성해야 했다. 가볍게 '친구'라고 적어서 냈더니 담당자는 그를 책임질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없는지 물었다. "그럼 친구분께서 모든 것에 대해 책임지실 수 있으시겠어요?" 친구라는 신분은 보호자가 되기에 뭔가 개운치 않았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을 요했다. "네! 제가 책임질게요!"
"다음에는 그냥 부인이라고 해야 할까 봐. 자꾸 확인하는데 너무 귀찮아 죽겠어."
몇 번의 보호자와의 관계에 대한 확인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그와의 관계에 대한 입장 규정은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없음을 느낀다.
"아내분이 오셔서 환자분 옷을 갈아입혀 주세요."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에게 아내라니!! 하며 발끈했을지도 모르지만 간호사의 말이 그렇게 싫진 않았다.
'여기서 나는 아내구나! 나보고 아내래! 풋!!' 처음 가져보는 호칭이 낯설었지만 한편으로 드는 묘한 기분과 함께 그 상황이 흥미진진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