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oonface Mar 25. 2021

남자친구를 둘러싼 두가지 마음

엄마, 그리고 딸

딸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네요. 주변에서 하나둘 사위를 여의고 시시콜콜 사위 자랑을 할 때면, 우리 딸도 얼른 결혼해서 저런 사위를 두면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는지 몰라요. 매번 남자친구 자랑을 늘어놓고 결혼할 것처럼 사람을 기대하게 만들더니, 결국 헤어지고 몇 번을 속았는지. 그런 딸이 이번에는 정말 남자친구를 데리고 온다니 설 수 밖에요.     


"좋아하는 음식은 뭐니? 이름은 뭐니?"

그래도 준비를 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요.

장남에게 시집가 몇십 년의 결혼생활로 가족과 집안의 대소사까지 맡아했기에 요리 실력은 자신 있거든요. 이웃들까지도 다 제 음식이 맛있다고 한 솜씨지만, 처음 보는 딸의 남자친구를 대하려니 부담을 지울 수가 없네요. 봄이라 쑥이 한창이니 구수한 된장국도 좋겠? 제철인 굴이 들어가기 전에 얼른 사둬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굴을 챙겼어요. 손님상이니까 갈비 정도는 재워놔야겠다 싶어요.


딸에게서 전화가 왔네요.

"엄마! 설마 집에서 먹는 거 내놓는 건 아니지? 오빠가 고기도 좋아하고 생선도 좋아하고 회도 좋아한대."

김치랑 밥만 내놓을까 싶어 전화한 딸의 말에 뭔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고기를 더 사서 수육을 할까? 회는 집 앞에 회 떠주는 데가 있으니까 거기서 사면 되고.."    

 

멀리까지 와 하룻밤 재워 보내야 하는데 어떤 이불을 꺼내야 좋을지 박스를 뒤봐야겠어요. 가장 적당하고 좋은 게 뭘지. 시집올 때 해 온 귀한 이불이 있는데 한쪽이 얼룩이 져있네요. 이불을 빨아 햇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내어 놨어요. 차라리 저번에 산 새 이불을 꺼내 주는 게 좋으려나요? 그래도 새 걸로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베개도 신경이 쓰여요. 홈패션을 배워 그동안 집안 소품들은 모두 제 손으로 만들어 썼거든요. 베개도 그렇고. 그동안 사용을 해서 좀 헤졌을텐데 이걸 내줘도 괜찮으려나 신경이 쓰이네요. 이참에 새 것으로 두 개 장만할까 싶어 시장을 둘러봐야겠어요.


다 큰 딸이 혼자 있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그런 딸이 짝을 데려온다니. 좋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에요.


혹시 엄마가 평소처럼 내놓으면 어떡하지 싶어 급히 전화를 걸었어요. 이것저것 늘어놓다 보니 엄마에게 부담을 주었나 싶은 마음이 뒤늦게 찾아오더라구요. 참 뻔뻔도 하죠? 근데 엄마는 그런 부담마저도 싫 하지 않더라구요. 더 미안하게도, 데리고 갈 사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거예요. 딸의 데려오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딸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었던 것처럼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으신가 봐요.


할 말을 다 쏟아낸 다음에야 집에 별일 없는지 물었죠. 엄마가 최근에 쓰러져 응급실 갔다 입원했단 사실을 어렵게 꺼내시더라구요. 딸이 걱정할까 봐 말은 못 했다면서요. 엄만 매번 그런 식이에요. 일이 있을 땐 말 않고 있다가 다 지나가면, 그것도 물어보면 그제야 힘들었을 이야기를 뒤늦게 하더라구요. 속상하 마음 아프게 말이죠. 그것도 모르고 이것저것 해 놓으라고 엄마에게 부담 줬던 게 미안해지더라구요.


아프다면서 이불 빨래까지 손수하고, 이것저것 새 걸로 챙겨 주고 싶다는 말에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이 이럴까 추측만 해볼 뿐이에요. 꽃같이 키웠던 딸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고 하니 행복한 앞날만을 축복해 주고 싶은 마음이겠죠. 엄마가 지나온 시간 속의 수많은 희생과 책임이 무거웠던 삶보다, 딸은 자신과 달리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이겠죠. 엄마를 꼬옥 닮은 내 딸에게, 꽃길만 걷게 해도 부족하지 않는 엄마의 마음이겠죠.


"엄마 오빠가 집에 간다고 양복까지 챙겨 놨대."

"키가 크다니 양복 입으면 훤칠해서 멋지겠네."

"응 엄마. 키도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지고 다리도 쭉 뻗었어. 아마 딸이 오빠 닮으면 완전 괜찮을 것 같아."


 "그래. 알았으니 그때 보자."     


작가의 이전글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