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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Mar 23. 2021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법

그런 건 없다는 게 띵언.

천장을 울리는 소리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반사적으로 짜증이 얼굴로 튀어나온다.

"또야? 도대체 어떻게 하지?"

머릿속 빨간 버튼이 작동하며 긴급! 긴급! 소리를 외친다.

'긴급 비상대책 위원회'가 열린다.

짧은 몇 초 사이에 그동안 축적해 왔던 '층간 소음 대응 방책'들이 고장 난 복사기의 복사물처럼 터져 나온다.

 

1. 포스트잇을 그 집 문 앞에 붙인다.

뭐라고 적지? 막상 적으려니 긴장된다.
감정은 빼고 팩트, 팩트만!!
"오전 시간 00시~00시 사이에 쿵쿵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팩트만 이렇게 적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러면?
"그래서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이렇게 I-메시지를 활용해봐? 그럼 서로 기분이 덜 상하겠지?
그래도 나 몰라라 한다면?
"고3 수험생, 아님 태교 중이라서 부탁드려요" 감정에 호소해 뻥이라도 쳐야 할까?   

이건 너무 개인적이려나?


2. 엘리베이터에 적어 붙인다.

저번에도 해봤는데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 아무래도 그 집만 모르는 것 같아.
차라리 몇 층에 사는 누구라고 나를 밝혀야 되려나? 흠.. 위험 부담은 있지만 비굴할 건 없지.
아님 위층에 있는 엘베 옆에만 몰래 붙이고 올까? "그래, 그게 너야 너"라고 말이야.
주민 의식개선 포스터를 하나 만들까?
"당신은 어떤 주민입니까?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이웃, 나만 편하면 되지 하는 이웃." 이건 좀 있어 보이는데?

등등..


이것저것 구슬 꿰듯 줄줄이 사탕처럼 머릿속에 다양한 대책들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맘 편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타당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마주치는 것마저 피하고 싶은, 불통 시대에 사는 우리. 이웃과의 관계와 반응마저 하나하나 따지려니 그것 또한 피곤하다.


'그래. 남이 던진 상황에 내가 망가지면 안 되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몸을 움직이는 게 감정을 흘려보내는데 좋다는 말이 생각났다. 기분이 나를 사로잡지 않도록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조금만 걸으면 동네 하천이 있기에 걷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햇볕이 쨍하게 피어난다. 하천은 푸릇푸릇 녹음으로 푸르다. 청둥오리와 물오리가 얕은 물속에 머리를 박고 흙속의 무언가를 찾는다. 며칠 전부터 눈에 뜨인 작은 오 새끼가 빠른 발놀림으로 어른 오리들보다 분주히 떠다닌다.


스트레스 탈피하기 위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간소음에 대한 생각 '동시 송출"처럼 머리를 지배하고 있음에 놀다. 모든 사고가 하나에 매여 있는 것처럼.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지배당할 정도로 지금 나에게 중요것들이 없단 말인건가?


뛰기 좋은 자리를 찾아 줄넘기를 꺼냈다. 하나, 둘, 셋.

천 개를 채우겠다는 생각 하나로 줄을 넘는다. 오늘따라 줄에 자꾸 걸려 숫자 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냥 시간을 채우는 게 낫겠다 싶어 시계만 보고 줄을 넘다 보니 땀도 나고 좋은 것 같다. 나오길 잘다.


돌아오는 산책 길, 지원했던 채용공고 발표가 어그러져 이번 달도 그냥 보내야 할 것 같다. 소리라도 지르고 미친 듯이 날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으니 두 팔이라도 힘껏 흔들며 걸어볼까? 크게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전환과 힘이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아줌마표 파워워킹". 전투에 나가는 군사처럼 씩씩하게 걸었다. 움직이는 간격만큼 움츠렸던 마음도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 잘 쉬면서 좀 더 건강해져 새로운 자리로 가자.'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어딘가에 있을 거야.'


집에 도착하자마자 티비를 틀었다.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소심한 몸부림"이랄까.

뜨거운 물에 몸을 씻으니 기분이 좋다. 들리는 티비 소리에 보지도 않는 티비를 틀어 놓은 자신이 웃겼다.

'그 사람도 알았겠어? 그런 소리가 날줄? 그리고 그 사람도 아랫집 너 힘들어봐라 하고 일부러 그렇게 매일 뛰는 거겠어? 그 사람도 사정이 있는 거겠지.'


"다 집어치우고 좋아하는 넷플릭스 영화나 보며 기분 좋게 아점이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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