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터
손 끝을 밀어 창을 닫는다. 소리가 그녀에게서 한걸음 물러난다. 사방을 흔들어대는 소리에 '소음'이란 이름을 붙이고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조금이라도 열린 틈을 봉인한다. 귀를 찌르는 소리가 얼씬 못하게 이중창 모두 빈틈없이 닫아낸다. 전쟁터 폭격기 같던 공사장 소리가 희미한 흔적처럼 멀찌감치 멀어진다.
소파에 다시 돌아와 이리저리 티브이 리모컨을 돌린다. 집안이 다시 평온한 편안함을 되찾았다 싶은 찰나, 그 소리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녀가 벗어난 그 요란함 속, 누군가 여전히 남아있음이 선명히 보이는 듯하다.
'그 사람들은 괜찮나, 이렇게 귀가 아플 정도인데.. 귀마개라도 하고 일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소리의 무리 속, 허리를 굽혀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을 그가 느껴진다. 매일 무거운 짐을 들고 돈 벌러 갔다 오겠다며 가족의 일상을 만들어내던 그의 일터가 이랬을까? 그 누구도 반갑지 않을 소리 속에 둘러싸여 매일매일을 살아내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걸까?
"아빠! 밭에 가서 일할 때 쪼그려 앉지 마. 무릎에 안 좋대."
"어~ 이제 들어와서 밥 먹으려고."
"아니~ 밭에 가서 쪼그려 앉으면 안 좋다고!!"
"어? 뭐라고? 아빠가 귀가 잘 안 들려서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잘 듣지 못하는 그를 위해 수화기에 바짝 입술을 붙여 소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더욱 크게 소리를 낸다.
여러 번의 귀 수술을 했지만 결국 어느 순간 그는 작은 소리의 울림마저 잃어버렸다.
"너희 아빠가 말귀를 못 알아먹어서 어쩌냐. 뭘 말해도 안 들린다고 하니 답답해 죽겠다."
듣고 싶지 않은 공사장의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멀찍이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소리가 사라지지 않은 일터에 남아있을 그가 쓰게 느껴진다. 부서질 듯 귀를 때리는 고단한 하루 속에 삐죽빼죽 난 못들을 묵묵히 망치질 하며 아빠의 두 귀는 그 시간을 견뎌냈던 건 아닐까.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아빠 왜 보청기 안 껴?" 집에 돌아와 보청기를 빼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이구. 보청기 끼면 소리가 쉭쉭-하고 쇳소리가 들리고 울려서 머리가 아파. 집에 있을 땐 보청기 빼고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좋아." 보청기가 아니면 잘 들리지 않는 그의 늙어버린 귀는 '아빠'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세월 속 수많은 소리를 견뎌내느라 지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창문 넘어 들리는 공사장 소리 속, 젊었을 아빠가 묵묵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내 몸 같이 소중한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소중한 자신의 귀를 잃어버리고 그렇게 그 속에 머물러 묵묵히 망치질을 해낸다. 그녀가 '소음'이라고 정의한 '소리' 속에 그는 그 모든 것을 견디며 어디로도 피하지 않고 그곳에 남아 있다. 그곳은 그의 '일터'였고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한 그의 '헌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