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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Oct 04. 2021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눈조차 뜨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는 순간, 현실이라는 압박에 매몰되어 부딪힐 용기조차 엄두 나지 않는 그런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질끈 감고 비굴하듯 피하고 싶을 정도로 버겁게 느껴질 뿐이다.


어머니 상을 치르고 서울에 온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다행이다 싶은 게 엄마 약봉지를 다 버렸잖아. 근데 거기에 아빠 혈압약도 있었나 봐. 아빠가 왜 자기 약까지 다 버렸냐고 저녁에 막 화를 내시는데, 다행이다 싶었어. 그래도 살고 싶은 의지는 있으신가 봐."


"오빠는 어떤 것 같아?" 고작 삼일 정도 지났을 뿐이다. 난데없이 찾아온 죽음이란 이별에 그와 그녀 모두 어떻게 이 시간을 지나가야 할지 혼란스럽다. 

"글쎄.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떨어져 있으면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럴 것 같아. 마음을 어디에 어떻게 둬야 할지. 슬픈 일이라 슬퍼해야 할 것 같지만 또 현실은 살아야 하니 또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고. 그렇다고 나 살자고 슬픈 마음을 모른 척하고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도 없고. 참 애매할 것 같아."


“엄마 사진은 없고 조카 사진만 잔뜩 있네.” 어머니가 쓰셨던 핸드폰을 뒤적이던 그가 말했다. 누군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사망 신고보다 핸드폰을 해지해야 할 때 현실이 더 와닿아 지우기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겠지. 이제 없는 번호가 되는 거니까.”

맞다, 넙죽이라는 연극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냉장고도 식탁도 의자도 모두 제자리에 있는데 그 사람만 여기 없는 거라고..


시들은 그의 마음처럼 어두운 집을 나서 밖에라도 나가면 좋을 텐데 하늘은 비가 올 것처럼 오전부터 잔뜩 흐릴 뿐이다. 하루 종일 그에게 뭐하고 싶은지, 뭐가 먹고 싶은지 쉴 틈 없이 물어대는 그녀에게 배도 고프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그의 말이 탐탁지 않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냐는 그의 말에 가만히 방에 누워 주말에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왜 또 이렇게 사진 속 그가 안쓰럽게 나온 건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애써 웃는 듯 남겨진 그의 얼굴을 보니 어쩌면 그는 그럴 여유조차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았던 건 아니었을지.


앞서 걸어가는 그를 따라 걷는다. 일상을 흘려보내듯 평소처럼 견디고 있는 듯하다. 내가 당신이 되어 그의 심정을 이해하려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온전히 그를 헤아릴 수 없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가 이 시간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다.


불 꺼진 거실에 멍청이처럼 돌아가는 텔레비전만 그 누구의 흥미조차 끌지 못한 채 바보처럼 빛을 뿜어낸다. 차라리 비라도 쏟아져 버리지, 그러면 슬픔이 머무를 것 같은 이 집에 그를 남겨둬도 괜찮을 마땅한 이유라도 찾을 거 아닌가. 차라리 비라도 쏟아져 버리지, 그러면 어디에 마음을 둬야 할지 몰라 헤매는 그들의 마음을 쏟아지는 비에 쏟아낼 것 아닌가.


느즈막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더 쏟아졌으면 좋겠다. 이별의 슬픔으로 괜찮지 않은 마음의 자리에 비가 차올랐으면 좋겠다. 흙탕물처럼 혼란스럽게 뒤섞인 감정이, 쏟아지는 빗물에 부유하듯 차올라 언젠가 투명하듯 고요하게 그 마음 빛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찌꺼기들이 올라오면 올라오는 대로,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머무르면 머무는 대로.. 아픔도 슬픔도 그리움도 그렇게 그 시간의 여정을 지나 세월의 흔적이 되어 다시 살아갔으면 좋겠다. 서툴지만 우리 함께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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